본문컨텐츠 바로가기

MENU CLOSE


뉴스3

제7호 기록사랑마을 「진해 군항마을」,
근대 역사여행 명소로 인기

진해는 일제 강점기 건설된 군항도시다. 이곳에는 1912년부터 군 병력을 따라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시가지가 형성됐다.

이런 이유로 진해 구도심인 군항마을에는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근대식 건축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세 개의 로터리 주변으로 근대식 관공서와 다양한 상업 건물들이 들어섰다. 일부는 현재까지 남아 아픈 생채기를 그대로 보듬은 채 100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아픈 서린 군항마을

경남 창원시 진해구 중앙동에 자리잡은 군항마을은 근대 역사의 중심지로 일제 강점기의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다. 1912년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은 진해 중앙동에 계획도시를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중평한들(현재 중원광장)을 중심으로 모여 살던 11개 마을 390가구 2000여 명이 터전을 잃고 지금의 경화동으로 강제 이주되고, 원도심은 일본인들만을 위한 도시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일제는 진해시가지를 중원로터리 중심으로 8거리로 조성했다. 중원로터리, 북원로터리, 남원로터리 등 3곳의 광장을 설치한 뒤 북원로터리는 군부대 중심거리로, 남원로터리는 어시장 등 바다로 이어지는 거리로, 중원로터리는 공공기관과 상점 등 핵심 시설 거리로 가꿨다.

진해에는 현재도 일제 강점기 계획도시의 건축물이 30% 이상 남아 있다고 한다. 원형을 온전하게 보존한 건물도 있고, 리모델링을 통해 변형되기도 했다. 뼈대를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일본식 가옥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할 정도인 건물도 있다.

기록사랑마을로 재탄생

록사랑마을은 마을단위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기록물을 보존하고, 이를 전시·활용하여 국민들에게 기록관리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기록문화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자 국가기록원이 지정한 마을이다.

2008년 11월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8리 함백역 지정을 시작으로 2016년 10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신흥마을 지정에 이르기까지 현재 전국에 10개의 기록사랑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대천동 군항마을(제7호 기록사랑마을)

군항마을은 2014년 전국 7번째로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됐다. 2012년 군항마을역사관 운영과 더불어 기록사랑마을로 지정, 군항마을 역사길 조성 등으로 이곳은 아픈 역사를 동반한 채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근대로 떠나는 여행명소로 새로운 변화를 시작했다.

중원로터리 방향으로 걷다 보면 전형적인 일본식 건물인 붉은 지붕의 3층짜리 육각집이 보인다. 당시 상류층이 드나드는 고급 요정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한식당으로 변모했다.

맞은쪽에 자리한 원해루는 1991년 상영된 영화 ‘장군의 아들2’ 촬영지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사진관 겸 시계점으로 쓰이다 광복 후 중국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이 회담을 마치고 식사를 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남원로터리에는 광복 이듬해 백범 김구 선생이 진해를 방문해 남긴 친필시비(창원시 근대건조물 제2호)가 있다. 이 인근에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일제강점기 고급주택과 서민주택이 공존한다.

대표적인 고급주택은 당시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이 살던 기와집을 곰탕집으로 바꿔 영업 중인 선학곰탕(국가지정 등록문화재 제193호)이다.

또 북원로터리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호)은 전국 최초로 건립된 충무공 동상으로 1952년 세워졌다. 6.25전쟁 당시 국난 극복을 위해 국민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제작됐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진해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제황산 정상에는 일본의 러일전쟁 전승기념탑이 있었다. 하지만 해방 후 헐고 해군 군함을 상징하는 진해탑(창원시 근대건조물 제3호)을 세웠다. 이 같은 근대문화를 오롯이 간직한 군항마을을 탐방하는 데는 2시간가량 걸린다. 이번 가을, 진해 군항마을 산책을 통해 근대의 정취를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