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록소식
2020년 10월 국내 기록소식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추가 민사 재판이 소송 시작 1년 5개월 만에 광주지법에서 열렸다.
9월 10일 광주지법 203호 법정에서 민사14부(부장판사 이기리) 심리로 스미세키 홀딩스(전 스미토모 석탄광업) 강제동원 피해자 8명이 낸 손해배상 소송 변론기일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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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소송이 시작된 후 피고들이 매번 재판에 불참하는 등 지지부진했으나 재판부가 궐석재판을 예고하면서 피고가 뒤늦게 변호인을 선임해 재판이 이뤄졌다.
재판부는 지난해 소송 제기 직후 국제송달로 보낸 소송 서류가 최근 송달됐음을 확인했다.
또 원고 측 대리인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광주·전남지부 김수지 변호사가 신청한 국가기록원 피 징용자 명부 사실조회를 채택했다.
스미세키 측이 보유한 후생 연금 기록 등 문서 제출 명령에 대해서는 추후 피고 측 의견을 듣고 채택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스미세키 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광장 박재현 변호사 등은 불법행위의 증거가 없고 1965년 한·일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도 소멸했으며 청구권 소멸 시효 역시 지났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단체인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민변 광주·전남지부는 지난해 4월과 올해 1월 추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지법에서 진행 중인 재판은 미쓰비시중공업(16명)과 스미토모광업(8명)을 상대로 한 소송이다.
일본 탄광에 강제 동원됐던 92세 생존자 1명과 사망자 7명의 유족이 원고로 나섰다.
재판부는 앞서 소송 서류가 장기간 일본 기업에 송달됐는지 확인되지 않자 두 달여간 관보 등에 소송서류를 게재하는 공시송달 절차를 거친 뒤 궐석재판을 진행하겠다고 예고했다.
궐석재판을 하면 원고가 제출한 근거 자료를 입증해 재판부가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여부를 판단하게 되므로 아무 대응을 하지 않는 피고가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
미쓰비시와 스미세키 측은 지난 7월 뒤늦게 각각 법률대리인을 선임했으며 미쓰비시 측 대리인은 7월 재판에 출석했고 스미세키 측은 서류 검토 등을 이유로 이날로 재판을 미뤘다.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다음 재판은 오는 11월 12일 오후 2시, 스미세키를 상대로 한 재판은 오는 11월 19일 오후 3시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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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록물 수집 자료
우리나라 현대사 최대 비극인 ‘제주4·3’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하기 위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오는 10월 30일까지 4·3기록물 수집 캠페인을 벌인다고 31일 밝혔다.
두 기관은 4·3당시와 이후 진상규명운동을 증언하는 기록물을 수집해 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할 계획이다.
수집 대상은 해방 이후 1947년 3.1사건부터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기까지 4·3시기의 상황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증언할 수 있는 문서, 편지 및 엽서, 사진, 영상, 유물 등이다.
또한 4·3 이후 진상규명 과정에서 4·3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을 담은 각종 자료도 수집한다.
수집된 유물은 선별을 거쳐 올 연말에 예정되어 있는 4·3아카이브 특별전에 전시되며, 제주 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주요한 자료로써 향후 전시·교육·연구 등 폭넓게 활용할 방침이다.
두 기관 관계자는 “4·3을 증언하고 기억하고자 했던 4·3의 역사를 ‘기록’으로 미래세대에 남기기 위한 이번 캠페인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 15일은 인천상륙작전 7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인천상륙작전 70주년을 맞아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가 뜻깊은 전시도 준비하고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 당시 9.28 서울수복의 기틀을 마련했다.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연합군이 전황을 일거에 뒤집기 위해 북한군 후방인 인천에서 펼친 작전으로 세계사를 바꾼 전투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작전 당시 미국 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인해 월미도 민간인이 다수 희생된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지난 2008년 8월 27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을 조사해 발표하면서 당시 참상이 처음 입증됐다.
당시 위원회는 보고서에 “월미도 주민들은 전쟁의 참혹한 피해를 입었으며, 그 이후에도 월미도가 군사기지로 되면서 유족과 거주민은 50년 넘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결론을 냈다.
그리고, 70주년이 된 올해 미군이 민간인에 대한 보호조치나 대피 경고 없이 포격과 폭격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전갑생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8월 20일,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등에서 찾아낸 인천상륙작전 관련 문건을 공개하며 작전 당시 민간인의 다수 희생을 다시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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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5일 만석동 일대의 공장지대가 폭격으로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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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5일 미 해병1사단의 상륙작전 계획서 No.2-50엔 월미도와 인천 시내에 산재한 북한군의 방어시설과 각종 무기를 공격 목표로 삼았지만, 민간인 구역에 대한 주의 또는 경고는 없다.
1950년 9월 2일 극동해군사령부의 작전계획 108-50에도 민간인 거주지를 공격하지 말라는 지침이 빠져있다.
1950년 9월 3일 미 7함대 사령부 작전계획 9-50 역시 월미도, 강화도, 인천 시내, 서울, 수원 등에 대한 항공기 폭격을 계획했지만, 민간인 보호 또는 대피 명령은 찾아볼 수 없다.
민간인도 전쟁포로 취급한 정황도 드러난다. 미 해병1사단 상륙작전계획서는 전쟁포로 처리에 대해 ‘통상적 전쟁포로의 정의에 속하지 않을 수 있는 민간인이라고 하더라도 억류된 모든 적은 전쟁포로로 취급될 것’이라는 원칙 정하고 시행했다.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와 제물포구락부는 공동 주최·주관으로 인천역사문화사진전시회 “평범하지 않은 시대를 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인천 사람들이 겪은 6.25전쟁”을 기획하고 있다.
문화유산센터 관계자는 “오는 10월 13일부터 10월 31일까지 사진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 뒤 “코로나19 확산 관계로 온라인 전시를 병행한다. 온라인 전시는 전시 개막 이후 VR촬영으로 제작할 예정이며, 10월 19일 전후로 공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전갑생 연구원이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10월 중 센터의총서 제5집 “인천과 한국전쟁 이야기-한국전쟁 70년, 평화를 묻다”를 발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