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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헤어짐의 슬픔이 사라져가는 ‘졸업식’

‘졸업’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콧잔등이 시큰해오던 때가 있었다. 선생님, 친구들, 정든 교정 모두를 떠나는 이별의 아픔과 더불어 진학률이 높지 않았던 때는 학교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더욱 슬픈 졸업식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졸업시즌이 다가왔지만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졸업식도 비대면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e-기록 속으로 2월호는 옛 졸업식의 모습을 재조명한다.

01 제중원 졸업식에서 시작된 대학의 학위복

우리나라는 미국의 영향을 받아 졸업식에서 학위복을 입게 되었는데, 최초의 현대식 고등교육기관이자 의학교인 제중원의 제1회 졸업식(1908년) 때 처음으로 학위복을 입었다. 당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유학생들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학위복은 흰 바지와 저고리에 흰 두루마기를 입어 정장차림을 하고 그 위에 검은 가운을 입은 형태였다. 머리에는 검은색 술이 달린 검은 사각모도 썼는데, 검정색의 단정한 학위복과 네모진 학사모는 중세 수도사들의 예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후 1914년 이화학당 제1회 졸업식에도 학위복을 입었으며, 1945년 광복 후에도 기존에 착용해 온 학위복을 모방하여 사용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대학에서 졸업식 때 학위복을 입고 있다.라고 썼다.

02 졸업식과 교복, 그리고 밀가루

중고등학교 졸업식에는 밀가루가 등장하기도 했다. 졸업생들은 이날을 기다렸다는 듯 밀가루를 검은 교복에 뒤집어썼는데, 일종의 교복 화형식이었다. 자유분방하고 혈기왕성한 나이에 통제와 억압의 대명사였던 교복을 훼손함으로써 그동안 억눌렸던 마음을 해소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983년 교복 자율화 조치로 학생들이 사복을 입으면서 졸업식에서의 ‘밀가루 세례’는 잠깐 사라졌다가, 1986년 교복이 부활하면서 다시 등장하였다. 이후 밀가루와 달걀을 던지고 괴성까지 질러대는 학생들의 졸업 뒤풀이 풍속은 점점 과격하게 변질되어 교사와 경찰이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최근에는 졸업식에서 교복을 찢는 대신 후배들에게 ‘교복 물려주기’를 하는 학교도 있으며, 담임교사와 졸업생이 서로 편지를 읽어주거나 연주회를 여는 등 건전한 졸업식을 내세우며 학교마다 개성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 경기초등학교 제6회 졸업식(1970)

  • 방송통신대학 제1회 졸업식(1974)

03 시대를 대변하는 졸업 선물 변천사

선물은 그 시대의 경제, 사회 상황을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하는데, 우리의 졸업 선물 역시 그 시대를 잘 반영하고 있다. 1950년대는 6.25전쟁의 비극적인 상황과 전후 어려웠던 경제 사정으로 졸업식에 부모님과 함께 짜장면이나 먹을 수 있으면 다행으로 여겼다. 1960년대 역시 먹고살기에 바빴지만 그럴수록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졸업·입학 선물을 주고받기 시작했는데 졸업 선물로는 졸업장을 소중히 보관할 수 있는 졸업장 보관통이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에는 경제개발계획과 중동건설 붐으로 국민소득이 오르고 국민들의 교육열이 높아갔다. 이때 졸업 선물 1위는 만년필이었는데, 잉크만 갈면 평생 간직할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 사회로 진출하는 졸업생들에게는 구두도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1980년대에는 본고사가 없어지고 학력고사 세대가 등장했는데, 최고 선물은 손목시계와 통기타였다. 외국의 고가 스포츠 브랜드들이 들어오면서 학생들 사이에 인기 선물로 떠올랐다. 1990년대 전자산업이 발전하면서 휴대용 미니 카세트, CD플레이어, 삐삐 등이 인기 있는 선물로 등장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휴대전화, 노트북, 스마트폰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