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크리스마스실의 기원

결핵은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는데 19세기 산업혁명 이후에는 결핵환자가 급증하여 ‘백색 페스트’라고 불릴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무서운 감염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결핵은 무서운 병이었다. 결핵은 20세기 중반 산업화·도시화와 함께 도시에 사람들이 집약적으로 모여 살면서 비위생적인 주거환경과 영양부족 등으로 인해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국가적인 차원에서 시행한 결핵퇴치운동으로 결핵 환자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 중심에 ‘크리스마스실’이 있었다.

원래 크리스마스실은 덴마크의 한 우체국장이었던 아이날 홀벨(Einal Holboell)에 의해 1904년에 12월 10일 세계 최초로 발행되었다. 그는 연말에 오고 가는 연하장 등 다량의 크리스마스 우편물과 소포를 보고 이 우편물을 이용해서 기금을 마련할 방법을 착안하였다. 즉, 크리스마스 시즌에 오고 가는 우편물에 붙이는 “실”을 판매하여 그 수익으로 결핵 치료 등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덴마크 국왕을 비롯한 많은 덴마크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국가적인 “실” 모금운동이 이루어졌다. 이후 미국, 스웨덴, 독일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크리스마스실 운동이 자리를 잡았고, 동양에서는 1910년 필리핀이 처음으로 실을 발행하였으며, 일본은 1925년에 실을 발행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제 강점기인 1932년에 캐나다의 선교의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실 운동을 시작하였다. 1932년부터 1940년까지 9차례에 걸쳐 실이 발행되어 그 기금으로 결핵 퇴치운동이 펼쳐졌지만,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 홀이 일제로부터 서구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강제로 추방되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해방 후에는 과거 셔우드 홀을 도왔던 문창모 박사를 중심으로 1949년부터 한국복십자회에서 실을 발행하였고 1952년 한국기독의사회에서 실을 발행하였다.

02 대한결핵협회와 크리스마스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실 운동이 범국민적인 성금 운동으로 착수된 것은 6·25전쟁이 끝난 1953년 11월 6일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 부터였다. 6·25전쟁으로 결핵이 크게 만연하자 기독교의사회, 한국복십자회 및 조선결핵예방회 등 몇 개의 항결핵조직이 협력하여 강력한 단일기구로 통합, 대한결핵협회가 창립하게 된 것이었다.

대한결핵협회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실을 발행하였는데 대통령을 비롯한 삼부요인은 물론 사회 각계각층 인사와 학생 등 온 국민이 이 운동에 참여함으로 점차 결핵퇴치 재원모금운동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실 판매를 통한 기금모금 운동은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아 실시되었다. ‘실을 사자’는 문화영화가 만들어지고 각 기관과 단체, 학교에서 실판매가 이루어졌다.

실 판매로 만들어진 기금으로 대한결핵협회는 결핵환자의 조기 발견과 치료, 결핵예방백신 생산과 접종 실시, 결핵에 대한 보건교육과 계몽 지도, 결핵의 예방과 발견 및 진료, 보건소 결핵관리요원의 기술 지원, 이동X선 검진 등의 다양한 일을 행했다.

중장년층이 어렸을 때 신체검사를 통해 이동X선 검진을 받고 학교에서 무상으로 맞은 BCG 접종(결핵예방주사)이 바로 대한결핵협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였다. 요즘은 이 결핵예방접종이 신생아기에 맞아야 할 필수 접종이 되었지만, 중장년층들만 하여도 신생아기에 예방접종을 꼬박꼬박 맞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결핵예방주사를 접종하였다.

결핵은 국가적 차원의 노력에 힘입어 197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 발병률이 급감하여 한때는 크리스마스실의 모금 허가액이 감액되고 “우표첨가 모금”이 체신부 주관으로 실시되었으나 한번으로 끝났다. 1980년부터는 다시 실 모금 허가액이 증가되었는데 이로 인해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실 모금운동 홍보가 강화되기도 하였다.

한때 결핵은 전 세계인의 철두철미한 예방과 퇴치로 천연두처럼 곧 사라질 병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결핵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결핵은 에이즈, 말라리아와 함께 WHO가 지정한 3대 집중 관리 질환 중 하나인데, 세계보건기구(WHO)가 2022년 발간한 ‘Global Tuberculosis Report 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결핵 발생률은 OECD 38개 회원국 중 1위, 사망률은 3위로 보고되었다.

크리스마스실에 관심을 다시 한번 가져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