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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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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일본의 각종 박람회에 출품된 조선관
배경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始政五年記念朝鮮物産共進會)는 1907년 조선 최초로 개최된 경성박람회(京城博覽會)의 뒤를 이어, 1915년 개최된 본격적인 대규모 박람회였다. 회기는 1915년 9월 11일부터 같은 해 10월 31일까지로 50일간이었으며, 장소는 경성부의 경복궁이었다.
회장의 건축물들은 경복궁의 일부 전각들을 허물고 신축되었으며, 근정전 주위의 회랑을 포함하여 일부 경복궁의 건축물들도 전시장으로 이용되었다. 그 전시장의 총 규모는 5,226평으로 경성박람회(1907년)에 비하면 10배 가까이 커진 것이었다. 한편, 회장 전체 부지의 면적은 72,800평이었으며, 출품된 진열품의 수는 48,760여점이었다.
전시 내용은 총 13개 부문으로 나뉘어 조직되었다. 분류는 상품별이 아닌 산업이나 행정 부문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이는 상품의 선전뿐만 아니라, 식민통치의 성과를 전시하는 목적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물산공진회의 전체 배치에 대해서는 선행 연구들에서 이미 분석을 해 놓은 바 있다. 조선물산공진회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정문으로 사용하였으며, 광화문의 안쪽인 흥례문 권역에 제1호관을 신축하고, 그 동쪽의 동궁 부지를 신축 전시 건물을 위한 영역으로 사용하였다. 제1호관 후면의 근정전과 부속회랑, 사정전, 강령전, 교태전 등은 전시 및 지원, 접대 시설로 개조하여 사용하였으며, 공진회 사무소는 자경전 영역에 자경전과 부속회랑을 수리하여 설치하였다. 제1호관과 서쪽의 영추문 사이에는 각종 사무소와 매점, 위락시설 등의 부대시설이 설치되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물산공진회 배치 관련 도면 중 전체 배치를 보여주는 도면은 없지만, 관련된 여러 배치도면들을 통해 공진회 배치 계획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공진회의 배치가 기재되어 있는 도면 중 가장 초기의 계획으로 보이는 것은 [도판1]이다. ‘시정오년물산공진회미술관위치변경도’라는 제목의 이 도면에는 신축 전시 건물로 제1호관(第1號館, 근정전 영역 남쪽 흥례문 권역), 제2호관(第2號館, 동십자각 북서쪽 동궁 권역), 미술관(美術館)만이 그려져 있으며, 제1호관과 제2호관 앞쪽에는 방사형으로 계획된 프랑스식 정원이 계획되어 있다. 또한 미술관의 위치 변경 현황이 기재되어 있는데, 제2호관 앞 정원의 북쪽에 계획하였던 미술관을 건춘문보다 북쪽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 이 도면에 그려진 신축 건물 3동 외에도 도면에 표시된 경복궁의 동남쪽 구역에는 참고관, 기계관, 영림창특설관, 심세관 등의 전시 건물이 더 지어졌는데, 이 건물들은 아직 기재되어 있지 않아, 조선물산공진회가 처음부터 대규모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계획 단계부터 점차 규모가 늘어나게 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후의 계획 현황을 보여주고 있는 도면이 [도판2]이다. 이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일호관신축설계도’에 부속되어 있는 배치도에는 범례가 표시되어 있어, 이후의 계획 변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먼저 신축 전시관을 보면 [도판1]에 비해 참고관(參考館)과 기계관(機械館)이 추가로 계획되어 있어 전시 규모가 늘어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도판1]과 비교해 보면, 제1호관과 제2호관의 형태도 바뀌었음을 볼 수 있다. 제1호관은 종래의 凹자 형태에서 뒷부분이 추가로 계획되어 뒷부분 중앙만 열린 ㅁ자 형태로 바뀌었으며, 제2호관은 종래의 ㄷ자 형태에서 중앙부다 돌출되어 E자 형태로 변경되었다. 또한, 근정전과 그 부속회랑은 먹색으로 채색이 되어 ‘기존가옥(旣存家屋)’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각각에 ‘진열관(陳列館)’, ‘관외진열(館外陳列)’이라고 기재하고 있어, 이들 건물을 전시장으로 활용할 계획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원래 방사형 정원이 계획되었다가 폐지된 제1호관과 광화문 사이의 광장에는 분수탑이 계획되었다. 또한, [도판1]에서 볼 수 있었던 제2호관 앞쪽의 정원 계획도 보이지 않으며, 대신 그 자리에 음악당(音樂堂)이 계획되었다. 또한, 그 북쪽으로 참고관 앞쪽의 부지에는 ‘석탑진열장(石塔陳列場)’이라 기재되어 있다. 이외에도 제2호관 남쪽으로는 경복궁 남쪽 담을 등에 지고, 동척특별관(東拓特別館)과 철도특별관(鐵道特別館)이 예정되어 있는데, 이 건물들의 위치는 이후 계획과정에서 변경되었다.
[도판3]은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도세관신축설계도’로, [도판2] 이후에 변경된 배치 계획을 보여준다. [도판2]에서 동척특별관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부지에 제2호관 앞 정원과 중심선(이 중심선은 북쪽으로 연장되어 ‘미술관중심선(美術館中心線)’이라고 기재되어 있다.)을 맞추어 도세관(道勢館)이 계획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도세관은 추후 심세관(審勢館)으로 관명이 바뀌게 되는데, 이 도면에는 바뀌기 이전의 관명이 기재되어 있어 초기의 계획 도면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제1호관과 광화문 사이의 부지의 사용에 대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도판1]에서는 프랑스식 방사형 정원이 계획되어 있었으며, [도판2]에서는 분수탑이 계획되어 있었다. 또한 심세관 서쪽으로는 철도특별관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 도면에는 아무 계획도 표시되어 있지 않아 아직 이 부분의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로도 동쪽 전시 구역에는 전시관이 추가로 계획되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도면이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영림창특설관신축배치도’이다.([도판4] 참조) 이 배치 도면에는 기계관 남쪽으로 근정전 회랑을 등지고 영림창특설관(營林廠特設館)을 건립할 계획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제2호관 앞쪽에 방사형 프랑스식 정원을 계획했던 것처럼, 참고관과 미술관 앞쪽에도 각각 정원이 계획되어 남북중심축선을 따라 총 3개의 방사형 정원이 위치하게 되었다. 정원의 곳곳에는 석탑 등의 석물(石物)이 진열될 위치를 표시해 놓고 있다. 전시를 위해 각지에서 옮겨온 석물들에 대한 내용은 [도판5]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도판2]에서 제2호관 앞쪽에 계획되었던 음악당은 그 자리가 참고관 앞 정원의 중앙으로 옮겨져, 전체 전시 구역의 중심이 이동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음악당은 팔각 평면의 정자 형태로 계획되었고, 외관은 전체적으로 르네상스 풍으로 설계되었으며, 지붕부에는 돔을 올려 매우 이국적인 풍모를 자랑하였다. ([도판6] 참조)
이외에도 관련된 배치도는 없지만, 미술관 북쪽의 자경전 영역을 공진회사무소로 사용하였으며, 근정전 뒤쪽으로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구역을 전시 및 접대 시설로 사용하였다. 경복궁 남서쪽 구역에는 매점, 연예관 등 각종 위락시설이 설치되었다. 이와 더불어 공진회장으로 사용되지는 않은 경복궁의 북쪽 영역에도 대규모 토공공사가 시행되었음을 ‘시정오년조선공진회구역외토공공사평면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도판7] 참조) 이 도면에는 공진회 구역의 북쪽 경계가 표시되어 있는데, 경회루와 북쪽의 아미산 영역, 교태전, 강녕전, 자경전 영역까지가 공진회 구역으로 표시되어 있다.

조선물산공진회를 위하여 신축된 전시관들은 추후 총독부미술관으로 전용되었던 미술관 건물을 제외하면, 모두 임시 건물로 계획되었다. 더불어 전시관이라는 특성상 복잡한 내부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건물은 그 구조가 단순하게 계획되었다. 하지만 그 입면은 매우 장식적으로 계획되었다.
신축된 건물 중 철도관과 연예관을 제외한 건물들은 모두 상당한 통일성을 유지하였다. 즉, 이들 모두는 르네상스 양식이거나 르네상스 양식에 제세션(Secession) 양식을 가미한 것이었으며, 외벽은 모두 백담(白淡)색으로 칠해졌다.
건물은 단순하고 기능적인 목조 건물이다. 실내 채광을 위해 고측창이 삽입된 솟을지붕이 사용되었으며, 벽면에도 고측창이 부가되었다. 이러한 단순 목조 건물의 정면부(파사드, facade)에만 르네상스 양식 혹은 제세션 양식이 사용되었다. 모든 입면이 장식적 벽체로 처리된 것은 아니며, 전면을 제외한 측면과 후면은 단순히 평활한 백색 벽면으로 처리되었다.
[도판8]은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일호관신축설계도’로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도면이다. 전면부의 르네상스 풍의 화려한 입면 뒤쪽으로는 구조적으로 단순한 경사지붕과 위로 솟아오른 고측창이 보이고 있다. 제1호관의 전면은 건물 중앙의 탑과 아치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정문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구성되었다. 좌우단부에도 중앙 부분보다는 규모는 작지만, 여전히 화려하게 탑과 아치 등으로 장식된 보조 출입구가 계획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도판9]의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이호관신축설계도’에서도 볼 수 있다. 기재된 평면과 골조는 매우 단순함에도, 전면부에만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의 입면을 계획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당시 신축된 전시관들에 관련한 각종 도면들이 소장되어 있어, 전시관의 계획과 구조법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도판10]은 신축된 전시 건물들 중 유일하게 영구 시설로 계획된 미술관의 설계도이다. ‘시정오년조선물산공진회미술관신축공사설계도’란 제목의 이 도면에는 미술관의 평면과 입면 계획이 기재되어 있다. 미술관 역시 다른 전시관과 마찬가지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전면부가 구성되어 있지만, 전체건물을 조적조로 구성하여 통일된 계획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의 중앙홀은 상층이 2층까지 열려 있고, 후면의 벽면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중앙의 좌우는 양 층 모두 평활한 전시공간으로 계획되어 있다. 특기할만한 점은 건물 내부에 화장실, 사무실 등의 부대시설은 전혀 계획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신축 전시관으로 부족한 전시 공간 및 각종 접대 공간, 사무 공간은 모두 기존 경복궁 내의 건물을 수선하여 활용하였다. [도판11][도판12]는 그러한 수선 전과 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판11]은 ‘자경전재래평면도’이며, [도판12]는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 자경전수선공사지도’이다. 자경전은 원래 조선왕조 대비의 침전으로 건립된 건물이었는데, 조선물산공진회 당시 이와 부속회랑을 개조하여 공진회사무소로 활용하였다.
[도판11]의 재래평면을 보면, 전형적인 궁궐의 침전의 평면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공진회사무소로 쓰기 위하여, 내부의 간살이(문과 벽체)를 대부분 철거하고, 일부 기둥 또한 철거하여 큰 공간의 사무실로 개조하였다. 또한, 자경전의 후면과 측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던 쪽마루 또한 모두 철거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전후의 도면은 일제강점기 당시 왕조시대의 궁궐이 얼마나 쉽게 훼손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실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시와 진행을 위한 주요 건물과 시설 이외에도 조선물산공진회 당시 관람을 위한 각종 편의 시설이 많이 설치되었는데, 도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편의시설로 전화기, 음수대 등이 있다. [도판13]은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장내공중자동전화신축설계도’이다. 이 도면은 공진회 구내에 설치된 공중전화부스에 대한 도면으로, 공중전화부스의 입면을 보면, 서구의 르네상스 양식에 이슬람 양식, 일본의 전통 장식 등이 더해져 매우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도판>
도판1. 시정오년물산공진회미술관위치변경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2.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일호관신축설계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3.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도세관신축설계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4.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영림창특설관신축배치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5. 시정5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정원배치석탑불상조건부호략도, 1915년경 상세보기
도판6. 조선총독부시정오년기념공진회음악당설계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7. 시정오년조선공진회구역외토공공사평면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8.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일호관신축설계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9.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이호관신축설계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10. 시정오년조선물산공진회미술관신축공사설계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11. 자경전재래평면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12.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자경전수선공사지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13.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장내공중자동전화신축설계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