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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은 과거와 현재가 대화를 이루는 문화적 장치이다. 다만, 경복궁 내에서 운영된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같은 전시시설은, 조선문화의 ‘대표’ 격 유물들을 공개적으로 전시함으로써 식민지시대의 세계관으로 조선을 재현했다는 큰 차이가 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일제시기 건축도면 중 박물관에 관련된 도면은 125매가 소장되어 있으며, 그 상세한 내역은 다음의 표와 같다.
번호 시설명 도면수 비고
1 조선물산공진회 미술관 2 박물관으로 전용
2 조선총독부 박물관 2 미술관 건물 계승
3 조선총독부 시정25년기념박물관 13
미실행
4 조선총독부 종합박물관 8
임시 시설 도면
5 조선총독부 종합박물관 과학관 100
미실행
총계 125

 조선총독부 박물관은 1915년의 조선물산공진회 기간 동안 사용된 미술관을 공진회 폐막 후에 박물관으로 용도를 변경한 것이다. 박물관은 건춘문 부근의 계조전(繼照殿)을 철거하고 건립된 서양식의 2층 건물로 건물 정면에 넓은 석조계단과 기둥을 만들었다.
 1915년 11월에 미술관을 인수한 총독부박물관은 같은해 12월에 박물관을 개관하였고 인접한 자경전(慈慶殿)을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1910년부터 실시된 대대적인 고적조사와 발굴사업의 성과가 1915년의 조선물산공진회에서 전시되었고, 이들을 보존·전시하기 위한 목적에서 총독부박물관이 개관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적절한 수장고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개관시에는 박물관을 위한 독립된 직제조차 구성되지 못했으며 관장직도 없었다.
박물관 내에 전시된 유물의 구성을 보면 중국 유물이 19%, 조선시대의 유물이 4.5%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석기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유물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문화의 자주적인 형성보다는 중국과 불교의 영향을 두드러지게 하면서 고대와 삼국시대에서 일본과의 교류를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동시에 낙후한 조선을 인정하고 일본을 받아들이도록 ‘교화’하려는 취지를 읽을 수 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 시정25주년(1935년)을 기념하여 1934년에 박물관 계획을 시작하였다.박물관을 식민지 사회교화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려는 취지로서 구총독부청사를 사용하는 남산의 은사박물관과 기존의 총독부박물관 등을 병합하여 미술, 과학, 자원의 세부분을 통합한 종합박물관으로 건립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3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심사위원을 내정하여 설계 공모를 통한 설계를 진행하였다. 1935년 12월 20일에 발표된 결과에서 ‘경성부 용산 이태원 官吏 矢野 要’가 1등에 당선되었다. 1937년에는 최종 설계안 확정을 위해 일본 본토에서 佐野利器가 입국하여 총독부와 협의를 갖고 같은해 7월에 착공할 예정이었으나 시행되지 못한 채 보류되었다.
 후에 다시 진행된 종합박물관 신축계획은 과학관, 미술관, 박물관의 세 건물로 나누어 각각 계획이 수립되었다. 조선총독부 과학관은 남산에서 운영되었던 은사박물관(恩賜博物館)을 흡수하여 크게 확장하도록 계획되었다. 은사박물관은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내에 청사를 새로 짓고 이전함으로써 비워진 구총독부 청사를 인계받은 것이었다. 이 때에는 고고물을 제외하고 광학, 역학 등의 근대과학이나 기구를 진열하였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하여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을 묶어서 당시 동양 최대의 종합박물관을 세우려던 노력은 1939년 4월에 미술관만을 준공하였고 나머지는 계획으로 그쳤다. 미술관은 1909년에 철거된 건청궁의 우편, 향원정의 북쪽에 건립되었는데, 해방때까지 조선총독부 미술관으로 운영되었다. 해방후에는 국립미술관으로 사용하다가 1998년에 철거하였고, 현재에는 건청궁을 비롯한 경복궁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기록원에는 경복궁 내에 건립되고 계획된 박물관, 과학관, 미술관의 도면이 소장되어 있다.
[도판1]은 ‘시정오년물산공진회미술관위치변경도’로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전신인 ‘조선물산공진회 미술관’의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흥례문 동쪽의 원위치에서 건춘문 위쪽으로 설계변경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내용을 [도판2]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건춘문 북쪽으로 미술관이 위치하고, 그 서편으로 연생전(延生殿) 전각과 주변행랑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술관 동쪽으로는 전국적인 유적조사를 통해 발견된 석탑2기를 야외전시하도록 계획하였다. 공진회 미술관을 인계받아 운영된 조선총독부 박물관 건물에 대한 도면은 남아있지 않다. (박물관 건물에 대한 도면은 ‘조선물산공진회’ 관련 도면을 참조할 것)
다만, 전시물로 진열된 해태상과 석등보주의 도면이 남아있어, 진열품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엿볼 수 있다.([도판3],[도판4] 참조)
 1935년의 조선총독부 시정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계획된 ‘조선총독부 시정25년기념박물관’의 건립예정위치는 확인 할 수는 없으나, 이 때에 진행된 미술 박물관과 과학 박물관에 대한 계획도면들을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도판5]는 ‘조선총독부(미술)박물관평면도’로 연면적 약 1,268평 규모의 미술관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실은 2개층인데 지하1층에는 창고가 계획되었다. 중앙부에는 2개층을 관통하는 중앙 전시실을 두고 좌우편으로 전시실을 펼쳐 놓았으며, 꺾여진 전시실 끝부분에 원형계단을 두어 오르내리도록 하였다. [도판6]은 ‘조선총독부(과학)박물관평면도’로 약 1,375평의 연면적을 가지며, 3개층의 진열실과 지하1층의 창고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분야 박물관과 달리 일자형의 평면에 중앙홀이 강조되도록 구성되었으며, 중앙과 양끝단의 총3개의 계단이 계획되었다. 미술 박물관과 과학 박물관은 각각 3~4개씩의 대안 계획이 동시에 검토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정25년기념박물관은 당장 진행되지 못하고 1939년에 대대적인 설계가 진행된다.[도판7]은 ‘조선총독부박물관신영공사 과학관배치도’로서 경복궁 선원전 남쪽 영역에 과학관 건물이 계획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학관의 서북쪽으로는 박물관 본관이 건립예정으로 배치되어 있고, 박물관의 남쪽으로는 원위치에서 옮겨진 광화문을 통해 박물관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다.
 과학관은 철근콘크리트구조의 지하1층, 지상3층으로 계획되었다. 日자형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였고, 전면부의 돌음식 계단을 주계단으로 삼고, 후면부 양편에 보조계단을 계획하였다. 지하1층은 기관실 및 축전지실, 저장실 등이 있으며 중정진열장을 양쪽에 계획하여 지하층에서 외부와 통하도록 구성하였다([도판8]참조). 다만, 진열실 전체규모에 비하면 저장실은 규모가 상당히 작은 것을 볼 수 있다. 지상1층에의 현관으로 진입하면 2개층이 연결된 진열실로 바로 진입할 수 있으며, 좌우로 총 7개의 진열실을 계획하였다. 후면에는 사무실, 연구실 등을 배치하였다([도판9]참조). [도판10]은 계획 과정상의 2층 평면도로 보이는 도면으로, 후면에 회의실과 물치를 배치하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진열실로 구성하였다. 최상층 3층에서는, 중앙부에 영사실을 갖춘 441석의 대강당을 계획하였고, 전면부로는 특별전시실을 마련하였다.([도판11]참조)
 [도판12]는 ‘조선총독부박물관신영공사/ 과학관단면도’로서 과학관의 내부구성을 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지를 1개층 깊이로 굴착함으로써 지하층이 땅 속에 바로 묻히는 것을 피하였고 양편으로 너비 약 18m가량의 중정진열장을 볼 수 있다. 중앙부에는 2개층이 관통하는 전시실이 있고, 그 위로는 약간 경사진 바닥을 구성하고 대강당을 조성함으로써, 당시의 구조설계 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단면도에서 일부 보이는 입면을 살펴보면, 벽면은 저층부는 판석재로 마감하고 상층부는 타일로 추정되는 재료를 사용하여, 층수에 따라 입면을 변화있게 구성하였다. 지붕은 철근콘크리트 구조 위에 기와로 마감하고 용마루와 치미까지도 설치하고자 하였다.
국가기록원 소장자료 중에는 ‘조선총독부박물관신영공사/박물관채광시험실일반도([도판13]참조)가 있다. 박물관내 진열품의 최적의 조명을 찾기 위한 시험실의 일종으로 추정되는데, 약 7m의 천장고를 가지며 고창과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실험실 내부의 진열장에 도입되는 최적의 채광을 선별하였을 것이다.
 [도판14]는 종합박물관 중에서 유일하게 건립된 조선총독부 미술관의 계획도면이다. 도면은 해방 이후에 설비수선공사를 위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종합박물관 미술관을 보여주는 주요한 도면이다. 과학관과 마찬가지로 日자형 평면으로 구성하였고, 앞뒤에 계획된 출입문을 통해 입장하면 중앙 홀에서 만나도록 하였다. 좌우의 나머지 부분들은 진열실로 추측된다.

 조선총독부에서 계획하고 운영한 박물관은 식민지 박물관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일본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암묵적인 정치적 선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에 걸맞는 권위를 표현하기 위해 경복궁 내에 석조건물로 조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최초의 조선총독부 박물관은 조선공진회 미술관을 인계받아 급조한 것이었고, 야심차게 계획한 종합박물관은 결국 전쟁으로 인해 미술관만을 건립하고 실현되지 못하였다.

<참고도판>
도판1. 시정오년물산공진회미술관위치변경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2. 경복궁구내석탑주위수접급각체문비수선배치도, 1915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3. 박물관구내석물이설설계도, 1930년 상세보기
도판4. 나차석등보수현촌도, 1930년 상세보기
도판5. 조선총독부(미술)박물관평면도 / 각계평면도, 1935년 상세보기
도판6. 조선총독부(과학)박물관평면도 / 각계평면도, 1935년 상세보기
도판7. 조선총독부박물관신축공사 / 과학관배치도, 1939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8. 조선총독부박물관신축공사 / 과학관 지계평면도, 1939년 상세보기
도판9. 조선총독부박물관신축공사 / 과학관 일계평면도, 1939년 상세보기
도판10. (무제), 1939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11. 조선총독부박물관신축공사 / 과학관 삼계평면도, 1939년 상세보기
도판12. 조선총독부박물관신축공사 / 과학관 단면도, 1939년 상세보기
도판13. 조선총독부박물관신영공사 / 박물관채광시험실일반도, 1937년 상세보기
도판14. 국립미술관내부수리추가공사설계도 / 급배수장치, 해방이후 추정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