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 주제별 해제 > 박물관 > 각종진열관   
배경
배경 총설
배경 경복궁내 박물관
배경 지방 박물관
배경 각종진열관
배경 각종진열관
 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일제시기 건축도면 중에는 경성상품진열관 등의 일제시기 각종 진열관에 대한 도면 39매가 있다. 경성상품진열관 도면이 11매, 조선총독부상품진열관(상공장려관) 도면이 23매, 대례기념물산진열관 도면이 5매이며, 상세한 내용은 다음의 표와 같다.
 소장도면 중 조선총독부상품진열관 도면 22매와 조선총독부상공장려관 도면 1매는 모두 상품장려관 신축을 위한 도면이다. 이외에 해방 이후 상공장려관을 개보수하기 위해 작성된 도면이 26매 더 소장되어 있다.
경성상품진열관을 계승한 조선총독부상품진열관은 1928년부터 그 계획이 시작되었으나, 1929년 개관 두 달 전에 그 명칭이 상공장려관으로 바뀌게 되어 도면의 명칭은 ‘조선총독부상품진열관’이나 실제로는 상공장려관 신축을 위한 도면인 셈이다.
번호 시설명 도면수 제작년도 소재지
1 경성상품진열관 11 1918년경 중구 저동
2 조선총독부상품진열관 22 1928-29년 남대문로
3 조선총독부상공장려관 1 1932년 남대문로
4 대례기념물산진열관 5 1910-30년 추정 불명
총계 39 -

  일본은 자국의 우월한 상품을 조선 땅에서 판매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일례가 경성상품진열관으로서, 1912년 10월에 영락정(永樂町), 지금의 남대문세무서(중구 저동)에 있었던 대한제국 농공상부 청사로 이전하고 11월에 개관하였다.
  이후 상품수요의 증가로 인하여 당시의 건물이 협소해지자 독자적인 건물을 건립하고자 하였다. 1927년에 남대문소학교의 운동장 앞쪽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1929년 12월 11일에 개관하였다. 이때에는 상품을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상공업을 장려한다는 의미를 세우기 위해 개관 두 달 전에 상공장려관으로 개명하였다. 이전하고 남겨진 舊 대한제국 농상공부 청사는 조선총독부 전매국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에는 충무로2가에 임시로 중앙상공장려관을 설치하고 운영해오다가 한국전쟁 후에는 대통령령으로 원래 상공장려관을 복구하고 1956년 12월 27일에 개관하였다.
 이 후, 1970년대에는 대한무역진흥공사의 전시관으로 사용되었다가 남대문 부근 재개발 계획에 의해 철거되고, 현재는 대한상공회의소 청사가 건립되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경성상품진열관과 관련된 도면 11장이 소장되어 있다. 이 도면은 대한제국 농상공부 청사를 인계받아 사용하던 중에 보수하고 부속시설을 신축하는 내용으로써, 상품진열관 뿐만 아니라 농상공부 청사 건물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사료로 판단된다.
  [도판1]은 ‘상품진열관부속온실신축설계도’로서 상품진열관 부지의 배치를 살펴볼 수 있다. 위쪽의 도로를 향하여 상품진열관이 살짝 물러나 배치되었고, 진열관 주변으로는 화단이 조성되어 있다. 화단 오른편으로는 매점, 온실 등이 계획되어 있다.
  경성상품진열관으로 사용된 농상공부 청사는 영국 르네상스 양식으로 디자인되었고, 백연와(白煉瓦)로 장식된 정면 가로줄 무늬 등으로 인해 같은 양식으로 건립된 세종로 舊 경기도청보다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다. [도판2]에서는 지붕 중앙부에 종탑모양의 옥탑장식이 올려져 있어 상징성을 드러내고 있다.
  [도판3]은 ‘경성상품진열관모양체지도‘로서 1918년(추정)에 진행된 건물 증개축을 위한 도면을 통해 청사의 평면구성을 살펴볼 수 있다. 청사는 H자형의 평면으로 지상2층으로 구성되었고, 좌측 전후면과 우측 후면에 총 3개의 계단을 설치하였다. 현관에는 계단과 함께 경사로를 두었고, 건물의 좌우측에 보조 출입구를 두었다. 1918년 공사 시에는 후면에 단층의 부속실을 만들고 복도로 연결하였다. 1,2층 모두 내부 벽체 구성없이 기둥만 노출된 것으로 보아 내부 구성은 전시내용에 따라 가변적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벽체는 조적으로 구성하였고, 층별 바닥과 지붕은 목재로 프레임을 구성하였다.([도판4]참조) 실내의 천정과 계단을 받치는 기둥은 도리아양식을 간소화하여 표현하였다.([도판5]참조)

 1929년에 개관한 조선총독부 상공장려관은 남대문 옆 남대문 소학교의 도로쪽 부지를 취하여 계획되었다. 부지의 서쪽 끝이 살짝 굽어지는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건물 역시 도로선을 따라 왼편 끝을 구부러지게 계획하였다.([도판6]참조) 지하1층, 지상4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지의 뒤편으로 경사가 있기 때문에 지상1층은 뒤편이 땅에 묻혀버렸다.([도판7]참조) 한편, [도판6]의 배치도는 상공장려관 일대의 당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남대문과 그 주위의 광장, 원형의 로타리를 확인할 수 있으며, 상공장려관에서 남대문소학교로 이어지는 작은 길-남대문에서 성벽이 서소문 쪽으로 이어지던 위치-에는 경사 옹벽이 표시되어 있어 철거된 한양 성벽의 흔적이 당시까지 남아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공장려관은 경성상품진열관과 달리 한국 내에서는 전위적이라고 할 만큼 일본 현지에서의 건축 디자인 경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도판8]을 보면, 스틸프레임으로 계획된 넓은 창과 캔틸레버로 만들어진 전면 각층의 발코니가 긴 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것은 구부러진 건물 형상과 함께 비대칭의 입면을 구성하여 완전히 근대주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장식을 배제하여 당대 유럽 합리주의 건축의 면모를 풍기고 있다.
건물은 1층에서 4층까지 전시실로 구성하였고, 1층에는 쇼윈도, 2층에는 사무실 그리고 4층에는 강연실을 추가로 계획하였다.([도판9]참조)
 1932년에는 상공장려관의 증축계획이 수립되었다. [도판10]에는 4층의 왼쪽 계단실의 왼편을 3층과 같이 증축하는 것이었는데, 해방 후의 모습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계획으로 그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외에도 ‘대례기념물산진열관(大禮紀念物産陳列館)’ 신축공사에 관한 5매의 도면이 소장되어 있다. 대례기념이라는 것은 일본천황의 즉위를 기념하는 것으로, 1912년에 즉위한 다이쇼(大正)천황이나 1926년에 즉위한 쇼와(昭和)천황과 관련된 행사이다. 이 도면들은 천황의 즉위를 기념하게 위해 계획된 진열관으로 2층의 목조 트러스로 구조체를 계획하고 판석을 외부에 붙여 석조건물의 분위기를 표현하였다.([도판11]참조) 입면은 중앙의 현관부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구성하였다. 직사각형의 창을 규칙적으로 배열하고 층간은 코니스(cornice)의 긴 띠로 장식하였다. 그러나 계획대지, 시기 등을 전혀 알 수 없어 추후 연구가 필요하다.

<참고도판>
도판1. 상품진열관부속온실신축설계도, 1918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2. 상품진열관옥근상세도, 1918년, 상세보기
도판3. 경성상품진열장모양체지도, 1918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4. 상품진열관평면급일부단계지도, 1918년 상세보기
도판5. 경성상품진열장모양체도, 1918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6. 조선총독부상품진열관배치도, 1928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7. 조선총독부상품진열관신축공사설계도/ 각측면단면배면도, 1928년 상세보기
도판8. 조선총독부상품진열관신축공사설계도/ 정면옥상급지하실평면도, 1928년 상세보기
도판9. 조선총독부상품진열관신축공사설계도/ 이삼계평면도, 1928년 상세보기
도판10. 조선총독부상공장려관증축공사설계도/정면급측면각부평면철근각단면기타도,1932년 상세보기
도판11. 대례기념물산진열관신축공사설계도, 1910-20년 추정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