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 사무분장규정」에 의하여 면화에 관한 사항을 담당하는 목포지장은 1917년에 목포면작지장으로 개칭되었고, 1920년경에 청사를 이전하였다. [도판1]은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도면이다.
[도판2]에서는 대한제국의 농사시험장을 원예모범장으로 개편하여 운영하였던 둑도원예지장의 배치를 볼 수 있다. 북쪽에는 청사가 있으며, 그 아래로 관사와 부속시설들이 배치되어있다. 북쪽으로 향하면 서울 중심가에 닿는다. 청사는 단층으로서 사무실, 응접실 등을 계획하였고, 복도를 통하여 옆 건물로 연결되도록 하였다.([도판3] 참조)
둑도원예지장과 함께 원예연구를 담당한 덕원원예지장의 모습은 [도판4]를 통해 살필 수 있다. 넓은 모범장 단지를 직교형으로 구분하였고, 중앙에 청사를 비롯한 건물들을 집중 배치하였다.
1920년에 황해도 황주에 개장한 서선지장의 모습은 [도판5]에 기록되어 있다. 반달형의 호수를 중심으로 아래쪽에는 관사와 용원숙사가, 위쪽으로는 청사사무실을 비롯하여 연구실및 창고가 배치되어 있었다.([도판6]참조)
[도판7]에서는 대한제국기 용산지역에 설립된 잠업강습소를 계승한 권업모범장 용산지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남쪽 제일 큰 청사를 중심으로 건물들이 군집해 있고, 북쪽에 판임관사와 주임관사가 뒤이어 계획되었다. 1914년에 폐지되기까지 운영된 청사는 [도판8]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12년에는 원잠종의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서 경기도 과천군 잠실리에 원잠종제조소를 추가로 개설하였다.([도판9] 참조)
권업모범장에서는 목양(牧羊)과 목마(牧馬)에 대한 사업도 진행하였다. [도판10]에서는 1917년에 개장한 난곡목마지장(蘭谷牧馬支場)의 가장 이른 배치 계획을 볼 수 있다. 이 도면은 1919년의 신축공사 내용을 담은 도면으로 초기에는 2개의 구사(廐舍)와 사무실 및 숙소만을 개설하였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사업규모를 확장하여 1919년에는 구사를 비롯한 부속 건물들을 확대하고 사업부지도 크게 확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도판11] 참조) 또한, 1924년 폐지될 때의 상황을 보면, 건물군 주변으로 초지와 마장(馬場)이 훨씬 더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세포목양지장(현 강원도 세포군)은 [도판12], [도판13], [도판14]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단 우측에 양사와 사무실 한 동씩으로 초기 중심구역을 형성하였고, 좌측의 양사(羊舍)와 위편의 건초사(乾草舍)를 추가하였다.([도판15] 참조)
<참고도판>
도판1. 권업모범장목포지장청사이전증축기타공사설계도, 1920년 추정
도판2. 둑도권업모범지장입구전용신설도로평면도, 1910년대 추정
도판3. 둑도권업모범장지장청사수선급개축공사설계도, 1910년대 추정
도판4. 덕원권업모범지장철조책신설공사설계도, 1910년대 추정
도판5. 사리원권업모범장서선지장첨엽저장고신설배치도/ 서선지장첨엽저장고배치도, 1927년
도판6. 수원모범장간척출장소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청사상세 평면급상세, 1929년
도판7. 조선총독부권업모범장용산지장건물기타배치도, 1910~1914년 추정
도판8. 권업모범장용산지장청사모양세공사지도, 1910~1914년 추정
도판9. 잠실리행원농부사급문기타신설도, 1912년 추정
도판10. 회양군난곡면목마장부지지균공사평면도, 1916~1918년 추정
도판11. 난곡면목마지장, 1919년
도판12. 세포목양장사무소기타신축공사부지변경도, 1917~1924년 추정
도판13. 세포목양장배수토관급목은판병변경도, 1917~1924년 추정
도판14. 세포목양장신축공사부지급도로지도/건초사급양사간A도로단면도, 1917~24년 추정
도판15. 세포목양장양사신축설계도, 1917~1924년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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