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보통문의 수리공사는 석굴암 공사와 더불어 일제 시대에 가장 먼저 시행된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수리공사였다.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실측도와 수리도면, 관련 문서와 함께 실측야장, 수리전후 사진이 ‘대정2년평양보통문수리기요(大正2年平壤普通門修理紀要)’로 남아 있다. 당시 수리감독관을 역임한 木子智隆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매우 이른 시기에 작성된 보고서로 일본에서도 1930년대 법륭사 수리공사 때부터서야 본격적으로 수리공사보고서가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가치가 높은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도판1]과 [도판2]는 당시 보통문의 현황을 보여주는 배치도이다. 보통문 주위의 성곽은 이미 모두 헐려서 흔적만이 남아 있으며, 동쪽으로는 신의주로 항하는 경의선(京義線)이 기재되어 있다. 보통문의 서북쪽으로는 보통강이 있으며, [도판1]과 [도판2]를 비교해 보면, 보통문 주위로 원형 광장을 조성하는 계획을 확인할 수 있다.
[도판3]과 [도판4]는 보통문의 평면과 입면, 단면을 실측해 놓은 실측도로, 당시 보통문의 현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판3]의 평면도에서는 보통문 주위의 자연석 기단이 조금 훼손되어 있는 모습과 아래의 축대 여러 부분들이 붕괴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도판4]의 횡단면도에서도 축대 주위의 성곽이 허물어져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수리를 위해서 개별 기둥이나 공포 등에 대해서까지 매우 자세한 실측을 시행하고, 이를 기재해 놓았는데, [도판5], [도판6], [도판7]이 그 대표적인 도면이다. [도판5]는 ‘양상건주/요옥근주/본가주’로 상층 기둥과 하층의 외첨주, 내진고주를 각각 실측해 놓은 도면이며, [도판6]은 ‘요옥근량행계량단도’로, 하층의 퇴보와 공포, 도리 부분과 퇴보 위에 올라가는 상층기둥의 연결부를 실측한 도면이다. [도판7]은 ‘요옥근주상조물단도’로 하층의 기둥 상부 공포를 실측한 도면이다.
이러한 실측도 외에도 각종 기록물을 도면에 옮겨 적어 놓았는데, [도판8]은 ‘보통문 중건기’로 총 3매의 도면 중 첫 장이다. 이 문서는 1775년에 작성된 문서를 옮겨 놓은 것이다. [도판9]는 ‘보통문 소사’의 문서로 당시 보통문 수리내역을 기록한 문서 총 5매 중 그 첫장이다. [도판10]은 ‘동목하단기재’라는 제목의 문서로 보통문의 도리 아래에 기재된 내용을 옮겨 적은 것인데, 이는 1614년의 것이다.
<참고도판>
도판1. 보통문배치도/4, 1913년 추정
도판2. 배치도/13, 1913년 추정
도판3. 보통문실측도/1, 1913년 추정
도판4. 보통문실측도/5, 1913년 추정
도판5. 량상건주/요옥근주/본가주/26, 1913년 추정
도판6. 요옥근량행계량단도/11, 1913년 추정
도판7. 요옥근주상조물단도/22, 1913년 추정
도판8. 보통문 중건기/1775년/3, 1913년 추정
도판9. 보통문 소사/1914년/8, 1913년 추정
도판10. 동목하단기재/1614년/13, 1913년 추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