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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금산사
 금산사(金山寺)는 김제와 완주 주변의 넓은 평야를 앞에 두고 우뚝솟은 모악산(母岳山)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금산사의 초창 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늦어도 7세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금산사가 미륵신앙의 본산으로서 일대의 중심 사찰이 된 것은 8세기경 진표율사의 중흥 때였다. 이후, 후백제 견훤의 원찰이 되어 10세기초 중흥을 맞이하게 되었다. 고려시대 중기인 11세기에는 혜덕왕사(惠德 1038-1095)가 주지로 부임하면서 크게 확장되었다. 그러나 금산사는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 없어지게 되었으며, 전란 직후인 1601년부터 중창불사가 시작되었다. 이때 이전의 여러 불전들을 하나의 불전으로 통합하여 신축하였는데, 바로 대적광전이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국보 제476호)은 기존의 대웅대광명전과 약사전, 극락전의 세 불전을 하나로 통합한 불전이었다. 이로써 미륵전(彌勒殿, 보물 제62호) 중심이었던 가람 구성이 미륵전과 대적광전이라는 두 개의 중심을 갖는 구성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금산사는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게 되었는데, 조선시대에는 1748년과 1897년에, 일제시기에는 1919-22년과 1926-27년, 1939-40년에, 해방 이후에는 1962년, 1975년, 1982년에 중수가 이루어졌다.

 현재 금산사의 가람구성은 보제루 안쪽의 가람 내원에 남면하는 대적광전과 서면하는 미륵전이 두 개의 축을 형성하고 직각으로 놓여 있으며, 대적광전의 서쪽으로는 대장전(大藏殿, 보물 제827호)과 명부전(冥府殿)이 위치한다. 이들 건물로 둘러싸인 내원의 마당에는 각종 석조물들이 놓여 있는데, 노주(露柱, 보물 제22호), 석련대(石蓮臺, 보물 제23호), 육각다층석탑(六角多層石塔, 보물 제27호), 석등(石燈, 보물 제828호)이 있으며, 대적광전의 서쪽이자 미륵전의 북쪽에는 송대(松臺)라고 불리는 일군의 장소가 조성되어, 여기에 방등계단(方等戒壇, 보물 제26호)과 오층석탑(五層石塔, 보물 제25호)이 위치해 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금산사의 도면은 모두 8매이다. 이 도면들에는 작성년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 정확히 어느 시기에 작성된 도면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관련 연구를 참조하면, 미륵전과 대장전의 수선 공사는 1919-22년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대적광전의 수선공사는 1926-27년에 이루어졌으므로, 각각 그 해당 시기에 작성된 도면으로 추정된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대적광전 관련 도면이 4매, 미륵전 도면이 1매, 대장전 도면이 1매, 방등계단 관련 도면이 2매 소장되어 있다.
 대적광전 관련 도면은 앙시도 2매, 평면도 1매, 입면도 1매가 있는데, [도판1]은 ‘대적광전평면’이라는 제목의 도면으로 당시 대적광전의 평면의 모습을 기재하고 있는 도면이다. 대적광전은 전면 7칸, 측면 4칸의 건물로 내부에는 가장 후열의 기둥만 남기고, 그 앞쪽 두 열의 기둥은 감주(減柱)하여 예불 공간을 마련하였다. 보방향으로는 중앙의 5칸이 주 예불 공간이 되며, 좌우의 가장 마지막 칸은 보조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가장 후열의 기둥 앞쪽 한칸에는 대를 설치하여 5위의 부처를 모셨으며, 그 사이사이에 6위의 보살상이 모셔졌는데, 그 위치 또한 도면에 기재되어 있다. 5위의 부처는 ‘아미타 - 석가 - 비로자나 - 노사나 - 약사여래’이며, 6위의 보살상은 ‘대세지 - 관음 - 문수 - 보현 - 일광 - 월광보살’이다. [도판2]는 ‘대적광전정면’이라는 제목의 도면으로 대적광전 전면 중앙 바로 좌측의 기둥을 중심으로 창호와 공포를 상세히 기록한 도면이다. 대적광전의 공포는 다포 양식으로 중앙의 1칸에만 주간포 둘이 설치되고, 나머지 칸에는 모두 하나씩 설치되었는데, 그 모습을 기재한 도면으로 현재의 모습과 같은 상태가 표현되어 있다.
 [도판3]은 ‘대옥전평면급상세도’라는 제목의 도면이다. 이 수선 공사 당시 대장전은 원래의 위치에서 지금의 위치로 이축하였는데, 도면에 기재된 평면도와 천정앙시도, 전면의 출입문과 전면 좌우칸, 측면 중앙칸의 단면 상세도는 이축 이전의 실측도로 생각된다. 보통의 일반적인 불전이 장방형의 평면으로 이루어짐에 비해 대장전은 4면이 모두 3칸인 정방형에 가까운 평면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대장전이 원래 목탑이었는데, 이후 변형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으며, 그에 대한 반론이 주장되기도 하였다. 대장전은 정방형에 가까운 평면을 불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내부 전열의 고주 2개를 감주하여 예불 공간을 형성하였는데, 1987년에 문화재관리국에서 실측한 도면과 비교하여 살펴보면, 내부 공간의 사용 방식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도판3]에는 후열의 기둥 앞쪽으로 불단이 기재되어 있는데, 1987년의 실측도면에는 후열의 내주와 후면벽 사이에 불단이 기재되어 있다. 아마 이 이축 공사 시나 이후의 어느 시기에 보다 넓은 예불 공간에 대한 요구로 인하여 불단이 뒤로 후퇴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현재 대장전의 전면 좌우칸의 벽에는 이중의 머름 위쪽으로 심벽이 있고, 심벽 전체에 불화가 그려져 있는데, [도판3]의 'B斷面‘을 보면, 하부의 이중 머름은 같지만 중앙 위쪽에 하나의 인방재가 더 있고, 그 상하로 각각 판재로 벽을 만들고 있어, 이 또한 이축 당시나 이후의 시기에 변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도판4]는 ‘미륵전평면급석단단도’로 미륵전의 평면과 그 전면의 이중 석단의 단면을 기록해놓은 도면이다. 미륵전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세 겹의 지붕으로 이루어진 삼층 불전인데, 이 도면에는 1층의 평면만이 기재되어 있다. 미륵전의 1층은 전면5칸, 측면4칸으로 되어 있다. 내부 공간 구성을 위해서 중앙의 두 고주를 감주하고, 전열과 후열의 기둥은 그대로 존치하였는데 일반적인 불전에서 예불공간의 확보를 위해서 전열의 내고주를 모두 감주하는 것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이는 삼중의 높은 지붕을 갖는 미륵전에서는 그 지붕 구조를 지지하기 위해 두 열의 내고주가 구조적으로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참고도판>
도판1. 대적광전평면, 1926-27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2. 대적광전정면, 1926-27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3. 대옥전평면급상세도, 1919-22년 추정 상세보기
도판4. 미륵전평면급석단단도, 1919-22년 추정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