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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불국사는 조선 시대 임진왜란으로 큰 피해를 입어 대부분의 건물이 전소되었으며, 선조 37년(1604)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순조 5년(1805)까지 40여 차례에 거쳐 지속적인 중수가 이루어졌다. 이후, 나라가 어려워지면서 불국사의 중수는 중단되었으며, 일제시기에는 수리공사가 크게 2기에 걸쳐 나누어 시행되었다. 1918~19년에 1차 수리 공사가 있었으며, 그 후 1922~25년 사이에 2차로 수리 공사가 시행되었다. 해방이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설립되어 1969년 불국사 복원 공사가 시작되고 1973년 6월 준공되었다. 이 때 주춧돌과 빈터로 남아 있었던 무설전, 관음전, 비로전, 경루, 회랑 등이 복원되었고, 기존의 대웅전, 극락전, 범영루, 자하문, 안양문 등도 새롭게 단장되었다. 이 대규모 복원 공사 당시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새롭게 복원해야할 무설전, 각 행랑, 관음전과 비로전의 복원의 시점을 초창인 8세기 형식으로 하느냐, 중기인 17세기 형식으로 하느냐의 문제였다. 결국 고증의 문제로 인하여 조선중기의 형식으로 복원하기로 하였는데, 특이하게도 비로전만은 고려중기의 건물형식으로 복원되기도 하였다. 또한, 기단과 초석의 하부구조는 신라 때의 것인데, 현존하는 대웅전이나 극락전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중기 건물로 하부와 상부의 구조체계가 달라 건물에 무리가 생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불국사 관련 일제시기 건축도면은 36매이다. 이중 1918년의 건축도면이 18매이며, 1923년의 도면이 2매, 1924년의 도면이 16매이다. 도면의 내용을 보면, 1918년의 도면은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 연화교(蓮花橋)와 칠보교(七寶橋), 그 주위의 석축기단(石垣), 대웅전(大雄殿)과 극락전(極樂殿)의 기단을 수선하는 내용이며, 1923년의 도면은 연화교와 칠보교의 보수도면이 1매, 범영루(泛影樓)의 기단부를 수선하는 도면이 1매이다. 1924년의 도면은 다보탑(多寶塔)을 수선하는 도면이 6매 있으며, 나머지는 10매는 대웅전과 극락전, 그 사이의 석축기단(石垣)을 수선하는 도면이다. [도판1]은 1918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군불국사경내실측도’이다. 당시 불국사의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데, 굉장히 장대한 가람이었다고 하는 불국사는 이 시기에 와서는 대웅전 영역과 본전(극락전) 영역의 두 부분만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웅전 영역부터 살펴보면, 백운교와 청운교, 그 위의 석축들이 실측되어 있으며, 대웅전 영역의 목조 건물과 석조물로는 자하문과 범영루, 다보탑과 석가탑, 대웅전과 그 서쪽의 하나의 문(門)과 당(堂)이 기재되어 있다. 이전 시기의 기록들을 참조하면, 대웅전의 서쪽에는 다른 건물이 없는데, 어느 시기에 사찰의 사용을 위해서 대웅전 서쪽의 기단에 기대어 담을 두르고 작은 건물을 지어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하문의 좌우에는 각각 5개씩의 연석(蓮石)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없어진 회랑의 초석이다. 극락전 영역은 대웅전 영역보다 더 변형이 심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를 오르면, 통용문(通用門, 현재의 안양문)이 있으며, 통용문과 본전(本殿, 현재의 극락전) 사이에 응접실(應接室)과 주지실(住持室)의 두 건물이 더 있었음이 기재되어 있다. 본전 기단의 동쪽에도 바로 잇대어 하나의 건물이 더 기재되어 있다. 대웅전 영역과 극락전 영역 사이의 석축은 무너진 상태이며, 범영루의 뒤쪽과 극락전의 서쪽으로 각각 경사로와 계단이 설치되어 통행로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1918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판2], [도판3], [도판4]를 비교해 보면 당시 불국사 전면의 석축기단(石垣)과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의 현황과 수선공사 내용을 알 수 있다. [도판2]는 당시의 현황을 보여주는 실측도이고, [도판3]은 수선공사를 위한 설계도이며, [도판4]는 수선공사 계획이 변경된 이후의 변경설계도이다. 현황 실측도와 비교하여 다른 2장의 도면을 보면, 당시 일본인들이 어떠한 수선 공사를 계획하였는지 알 수 있는데, 현황 실측도에 기재된 하단 석축의 돌난간 기둥과 난간이 [도판3]에서는 모두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으며, 청운교 등의 돌계단에 있던 난간도 모두 제거하는 계획을 볼 수 있다. 또한 범영루와 안양문 사이의 상층 석축의 돌기둥이 수선공사도에서는 제거되어 있으며, 자하문 주의의 상층 석축은 기존에 흙으로 쌓여 있던 부분을 다시 돌로 쌓아, 석축의 높이를 자하문과 맞추려는 계획을 보여주고 있다. [도판6]은 자하문 앞의 청운교와 백운교를 수선하는 공사 설계도이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당시 수선은 각 석축기단 위쪽의 석축난간과 계단의 비탈진 석축난간에 대한 수선 공사였으며, 이를 위해 각 부분의 평면, 측면, 단면도가 작성되었다. 이 도면은 내용으로 볼 때, 설계변경 이전의 도면이다. [도판7]은 1924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불국사배치도’로 도면에는 불전(佛殿, 현 극락전)과 대웅전의 기단, 다보탑의 기단에 짙은 색으로 표시를 하고, 범례에 당해연도에 공사할 것임을 표시하고 있다.(十三年度施工分) 1918년에 작성된 [도판1]과 비교해 보면, 이미 대웅전 서쪽에 있었던 문(門)과 당(堂)은 철거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1925년에는 대웅전과 극락전 사이의 비탈진 경사면을 석축기단으로 수선하는 공사도 시행되었는데, 이를 위해 1924년 작성된 배치도면이 [도판9]이다. 이 도면에는 [도판7]의 배치도에서는 비탈진 경사로 되어 있었던 해당 부분을 석축기단을 쌓아 복원하고 계단을 설치하려는 계획이 보인다. 도면에는 1925년 공사(大正十四年度工事)라고 기재하고 있다. 또한, 이 도면을 이전 시기의 배치도인 [도판1] 및 [도판7]과 비교해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대웅전 서쪽 회랑지의 초석 위치가 기재되어 있으며, 대웅전의 좌우에도 각각 전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의 초석이 기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기록원에 소장된 1924년의 건축도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수선 공사는 다보탑 수선 공사이다.
[도판11]은 ‘다보탑실측평면도’로 탑의 기단과 사방의 석계가 상당히 붕괴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 수선하기 위한 설계도가 1924년 12월 작성된 [도판12]이다. 도판의 작성 시기로 볼 때, 다보탑 수선공사 역시 대웅전 서쪽 석축기단처럼 1925년에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몸체에 대해서는 실측도가 남아있지 않아, 수선 내역을 비교해 볼 수 없지만, 탑의 지면을 보강하기 위해서 지표면 속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계획이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탑 전체에 대한 해체 수리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초의 콘크리트 보강 계획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도판13]에서 볼 수 있는데, 도판의 범례를 참조하여 보면, 현재 탑외면(現在塔外面) 바깥쪽으로 확장하여, 동상콘크리트외면(仝上コンクリ-ト外面) 표시부분까지 하부에 콘크리트 기초를 만들고, 그 콘크리트 기초 아래쪽으로는 더 바깥쪽으로 확장하여 기초할표석외면(基礎割票石外面)이라 표시된 부분까지 잡석을 깔아 지면을 보강하려는 계획이었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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