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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관저
일설로는 1912년 하세가와 총독이 건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하세가와 총독은 1916-19년에 조선 총독으로 재직하였으며, 이 건물은 그 이전 1910년까지 조선군사령관으로 재직당시에 건립한 건물로 보인다. 기록원 소장 도면 중에도 연도가 1907년으로 기록되어 있는 도면이 있다. 마지막은 경복궁 북쪽(현재의 청와대 부지)에 1938년 완공된 경무대 총독관저이다. 이 경무대 관저는 1939년 제7대 미나미 지로(南次郞, 재임1936-41) 총독이 왜성대 총독관저를 시정기념관(始政記念館)으로 개편하면서, 본격적으로 주 총독관저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중, 1939년 9월 총독관저 이전 전까지는 왜성대 총독관저가 주된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이후로는 경무대 총독관저가 주된 총독관저로 사용되었다. 용산 총독관저는 그 호화로움에도 불구하고 도심과 거리가 멀고, 전기료 등의 유지비의 과다, 경비의 어려움 등의 제반 문제로 인하여, 공식 연회 등의 행사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 중간에 용산 총독관저로 관저를 이동하려는 계획이 수립되었으나,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엿다. 이후 왜성대 총독관저는 시정기념관, 해방 이후 국립민족박물관으로 바뀌어 사용되었으며, 용산 총독관저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멸실되었다. 경복궁 뒤쪽의 경무대 총독관저는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 군정장관저로 사용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고, 1990년 새로운 대통령 관저(현 청와대 본관)를 신축한 이후, 1993년 철거되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1908년 건립되었던 용산 총독관저 관련 도면 48매, 1938년 준공되었던 경무대 총독관저 관련 도면 7매, 총독관저 관련도면 23매가 소장되어 있다. 이중 용산 총독관저 신축 도면들은 평면도, 입면도 등 상세한 도면이 남아 있어 그 자세한 모습을 살필 수 있으나, 경무대 총독관저 관련 도면은 배치도 몇 매를 제외하면, 모두 부속 시설 도면 및 상세도만이 남아 있어, 도면을 통해 그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건물의 모습은 일부 당시 엽서와 사진을 통해서 확인 가능하다. 이 외에 ‘총독관저’ 관련 도면 은 23매가 더 소장되어 있으나, 그 도면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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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시설명 | 도면수 | 비고 |
1 | 용산 총독관저 | 48 | 1908년 건립, 한국전쟁으로 멸실 |
2 | 경무대 총독관저 | 7 | 1938년 건립, 해방 후 청와대 본관으로 사용, 1993년 철거 |
3 | 총독관저 | 23 | |
총계 | 78 | ||
[도판1]은 ‘용산총독관저서측면자도’로 도면 구석에 ‘明治40年10月(製圖)’라 기재되어 있어, 1907년에 작성된 도면임을 알 수 있다. 이 도면은 건물이 1908년경 건립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며, 도면명에 ‘총독관저’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 당시 이 건물을 총독관저로 사용할 계획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은 2층으로 지붕은 박공창을 가진 높은 박공지붕으로 구성하였다. 입면은 네오바로크풍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음으로, 1938년 준공된 경무대 총독관저의 위치와 주변 상황, 관저의 대략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도판이 [도판8]이다. 도판의 가장 남쪽에 그려져 있는 담장이 경북궁의 북쪽 담장이며, 담장에 설치되어 있는 문이 신무문(神武門)이다. 신무문 바로 바깥쪽으로 북악산 기슭을 올라가면서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그 초입에는 조선총독부의 각종 관사들이 자리 잡고 있고, 더 올라가 총독관저가 자리 잡고 있다. 동북쪽을 향하다 북쪽으로 완만하게 구부러지는 진입로의 끝에 총독관저가 있는데, 그 현관과 포치가 서쪽을 향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관청 및 관사 건물들이 대부분 남면하는 것에 비하면 특이하다 할 수 있다. 건물의 남쪽에는 연못을 포함한 정원이 꾸며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관저를 지나 산을 더 올라가면서 각종 부속시설들이 자리해 있다. 관저 건물은 2층 건물로 중앙에 중정을 둔 서양식 건축물이었으며, 남쪽의 정원을 향해서 넓은 베란다가 설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기타 총독관저 관련 도면에는 문헌 기록에 의해 확인되지 않는 총독관저 설계도 또한 포함되어 있는데, 그 평면도 등의 도면은 실제로 다른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모양이어서, 1935년경 왜성대에서 경무대로 관저를 옮기려는 계획이 있었을 때, 계획된 미실행 설계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도판9]와 [도판10]에서 그 평면을 볼 수 있는데, 전체 지하1층, 지상2층의 건물로 양익이 전면으로 길게 튀어나온 ㄷ자 형태의 건물이다. 1층부의 현관의 전면에는 양익과 열을 맞추어 문위소가 설치되었으며, 중앙의 포치와 현관을 들어서면, 좌우에 2층으로의 계단이 있다. 1층은 편복도, 2층은 중복도로 구성되었으며, 1층은 주로 응접실과 회의실, 식당, 사무실로, 2층은 침실과 각종 생활공간으로 계획되어 있다. 건물의 후면으로는 계단이 딸린 광대한 베란다가 시설되어 있어 이 건물이 경사지에 계획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