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물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푸터바로가기

내용바로가기

국가기록원 여성기록 전시콘텐츠 Women’ s History Exhibit content

35208 대전광역시 서구 청사로 189 , 2동
Copyright (c) National Archives of Korea. All rights reserves.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 - 탈무드

개구쟁이 소년을 위대한 겨레의 지도자로 성장시킨 이는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아들의 삶을 대신해 가시밭길 같은 노동운동에 평생을 바치신 어머니가 있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피아노를 짊어지고 피난길에 오른 어머니는 세계적인 음악가를 키워냈다.
선천성 무형성 장애를 가지고 다리도, 손가락도 부족하게 태어나 버림받은 아이는
로봇다리를 달고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수영선수가 되었다.
그 뒤에는 가슴으로 낳아 사랑으로 키운 어머니가 있었다.

이 시대 어머니들의 이야기 속에는 항상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며 자식을 키워낸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시간이 함께 한다.

시대별 대표 어머니의 모습들

  • 로봇다리 세진이의 어머니 양정숙 (1969 ~)
    로봇다리 세진이의 어머니 양정숙

    엄마는 하늘이 제게 주신 선물이에요. 이 세상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해요. 저에게 살아갈 희망과 꿈을 주신 분이니까요. - 로봇다리 김세진

    선천성 장애로 두 다리와 오른쪽 세 손가락이 없는 김세진 군(16세)은 8세에 의족으로 테리폭스 국제마라톤 5km을 완주하고 9세 때 미국 로키산맥 3,870m를 등정했다. 12세 때 세계 장애인 수영선수권 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했으며, 현재는 성균관대 역대 최연소 일반 수시합격자라는 기록을 세우며 스포츠학부에 재학 중이다.

    세진 군의 도전과 성공 뒤에는 그를 가슴으로 낳아준 어머니 양정숙씨가 있었다. 양정숙씨는 5살 때부터 한의사였던 아버지의 손을 잡고 봉사활동을 다니며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함께하는 삶을 배웠다. 1998년 보호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장애로 버려졌던 생후 6개월된 세진이를 만났고 이듬해 공개 입양하였다.

    “걷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걷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게 중요하다”며 사회적 편견에 맞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힘과 의지가 되었던 ‘어머니의 사랑’ 이는 바로 로봇다리 세진이의 기적같은 이야기의 시작이다. 사진기록물 보기

  • 노동자들의 대모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1929~2011)
    노동자들의 대모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이소선 여사는 가난한 삶 속에서도 자식들에게 늘 “괜찮아, 잘 할 수 있을거야”, “걱정하지 말고 해라”는 격려와 믿음을 아끼지 않았다.

    1970년 장남인 전태일이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숨진 후 아들의 뒤를 이어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평생을 받쳤다.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꼭 이루어 주세요”라는 아들의 유언에 “아무 걱정 마라.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기어코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 라며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십 평생 노동자의 어머니로 여성 노동운동가로 “어머니의 길”을 걸었던 이소선 여사는 2011년 82세로 생을 마쳤다. 사진기록물 보기

  • 세계적인 음악가 정트리오의 어머니 이원숙 (1918~2011)
    세계적인 음악가 정트리오의 어머니 이원숙

    “한 알의 밀알이 썩을 때 많은 열매를 거둔다는 말씀을 믿습니다. 자식을 위해 거름이
    된 생애에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 이원숙

    배화여고와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하였다. 해방 직후 시장에서 국밥장사를 하면서 자녀들의 음악교육을 위해 빚을 내어 피아노를 샀고 6.25전쟁 때 피난을 가면서도 피아노를 싣고 갔을 만큼 자녀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자녀들의 음악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식당을 운영하며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 세 남매를 세계적인 음악가 ‘정트리오’로 키워냈다.

    정트리오가 기억하는 이원숙 여사는 자녀에게 맞는 것을 찾아주고, 자녀가 그것을 좋아하고 스스로 하겠다고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며, 결정을 하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지원해 주는 어머니였다.

    1990년 세화음악장학재단을 세워 장학금 지원 등 음악계 후진을 양성하다 93세로 생을 마쳤다. 사진기록물 보기

  • 겨레의 스승을 만든 위대한 어머니 곽낙원 (1859~1939)
    겨레의 스승을 만든 위대한 어머니 곽낙원

    독립운동가인 백범 김구의 어머니이자 반평생을 임시정부와 함께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백범 선생이 감옥에 수감 중일 때 삯바느질과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옥바라지를 했던 곽낙원 여사는 아들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