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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체포와 수형,그리고 기록물

우리나라의 사법근대화는 1894년 갑오개혁기의 권설재판소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1909년 기유각서에 의해 사법제도는 일제에 완전히 장악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적 특수성을 갖는 왜곡된 형태로 변질되었다. 일제의 식민통치는 우리민족 대다수가 이를 반대하였다는 점에서 강압적 치안 유지와 일상적 감시체제를 통해 유지되었으며, 경찰과 재판소, 감옥은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작동하였다.

총독부의 법정에 서다 - 재판의 특수성과 그 기록물

가. 일제강점기 공판의 특수성

일제강점기 형사소송절차는 1912년 공포된 「조선형사령」에 의해 식민지적 특수성을 갖게 되었다. 「조선형사령」은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판주의를 통한 공정한 판결이라는 현대 형사소송법의 취지를 부정하고 ‘효율적이고 간소한 처분’에 중심이 맞춰져 있었다. 일제강점기 공판제도의 큰 변화는 1912년 「조선형사령」 공포시기와 24년의 「형사령」 개정 그리고 40년대의 제2차세계대전 말기 등 3시기로 구분된다.

1) 조선형사령 공포이후(1912~1924)

1912년 「조선형사령」의 공포로 일본의 「형사소송법」과 「형법」이 조선에서도 적용되었는데, 「형사령」은 여기에 식민지적 특수성을 부여하여 식민체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특수성의 근간은 앞에서 언급한 검사, 사법경찰의 강제처분권한과 검사의 예심청구권 등을 들 수 있다. 당시 일본의 「형사소송법」에서는 중요사건에 대해 예심판결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여 경찰과 검사에게 강제처분권을 제한하고 피의자를 보호하고자 했는데, 조선에서는 검사가 구류 20일, 사법경찰이 유치 14일 이내의 기간 동안 강제처분을 할 수 있었으며, 압수, 수색 등도 가능하였다. 이는 피고인과 검사가 법정에서 대등한 관계로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며, 법관에 의한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 방지도 어렵게 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3백원 이하의 벌금형을 언도한 1심판결에 대해서는 증거에 관한 이유를 생략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는 변호인이 피고인을 대리하여 상고를 할 수도 없었다.

2) 조선형사령 개정이후(1924~1944)

일본의 「형사소송법」이 개정됨에 따라 1924년 조선형사령도 일부 개정되었다. 개정된 형사령은 1912년 법령의 체계를 유지하면서 일부 변경이 있었다. 우선 검사와 경찰의 강제처분권은 모두 10일 이내로 기간이 단축되어, 강제처분권이 제약을 받는 듯 했다. 그러나 당시 검사에게는 재량에 의한 예심청구권이 있었다. 예심이 시작되면, 예심판사는 갱신요청만으로 강제처분을 무기한 연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피의자를 원하는 만큼 잡아 놓을 수 있었다. 따라서 검사는 예심청구권을 악용하여 조선의 사상범 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대표적인 악용사례는 1940년대에 발생한 조선어학회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1942년 10월부터 체포가 시작되었는데 공판은 1944년 9월에 가서야 진행되으며, 그 기간 동안 갖은 고문과 강압적 조사가 이루어 졌다. 변호권과 관련해서는 사형,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이외에는 관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도록 하였으며, 피고인, 증인, 감정인, 통역인, 번역인에 대한 신문은 재판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여 직접신문을 제약하였다. 특히 직접신문의 제약은 공판에서 변호인의 변론을 상당부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밖에도 검사, 사법경찰의 신문조서를 증거능력이 있는 것으로 규정하여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 유죄판결의 근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변동이 있었다.

3) 제2차세계대전 말기(1944~ )

제2차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이후 공판절차는 다시 한번 변질되었다. ‘조선총독부재판소령전시특례’, ‘조선전시형사특별령’, ‘조선에서의재판절차간소화를위한국방보안법및치안유지법의전시특례에관한건’ 등이 이 해에 제정되어 전시 총동원체제하에서 신속한 사건처리와 기밀보안에 주력하였다. 우선 단독심을 확대하여 사형, 무기징역, 금고에 한해서만 합의부 판결을 하도록 하였고, 모든 사건을 2심제로 처리하였다. 또한 국방보안법과 치안유지법에만 적용된 변호인 수와 선임기간 제한을 모든 사건으로 확대하였으며, 약식명령으로 1년 이하의 징역까지 특별범죄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까지 허용하였다. 법원의 증인, 감정인 신문도 서면으로 대체 되었으며 판결문을 간략히 작성하였다. 변호인의 서류열람은 지정된 장소에서 재판장의 허가를 얻어야만 가능했으며이해 당사자조차도 재판소 또는 재판조서 등을 교부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사실상의 공정성을 포기한 형태상의 사법부만이 존재하였다.

식민지시기 형사소송법은 근대 사법제도의 도입이라는 외피를 쓰고 조선 땅에 들어왔지만 그 내용은 식민통치체제의 유지를 위한 폭압이었으며, 그 마저도 대부분 경찰에게 사법권을 넘겨주어 허울 뿐인 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나. 공판절차와 기록물

공판절차는 형사사건에 대한 검사의 조사와 공소 제기, 예심, 공판준비와 공판진행, 공판결과와 후속처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1) 공소 제기와 기록물

공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검사의 공소제기가 필요했다. 검사는 사법경찰관의 사건 송치 등의 사유로 사건이 접수되면 우선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에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사건을 조사한다. 사건 조사는 참고인 진술 및 피의자 등에 대한 신문, 압수, 수색과 같은 조치가 취해질 수 있었으며 기타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진술조서, 신문조서, 압수조서 등의 각종 조서가 작성되었는데, 이러한 기록물들은 향후 조사가 끝나면 형사소송기록으로 묶여 관리되었다. 사건의 조사가 완료되면 검사는 그 결과에 따라 공소제기, 불기소, 기소중지, 공소보류 등과 같은 처분을 할 수 있었다. 검사는 조사결과가 완료된 시점에서 상당한 혐의점을 발견하여 죄가 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공소제기 즉 공판을 청구했는데, 이때 필요에 따라 예심을 청구 할 수도 있었다.

예심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건을 공판에 붙일 것인지의 여부를 법원이 판단하여 검사의 무리한 수사권 남용을 막는 제도였으나 조선에서는 그 권한이 상당부분 검사와 사법경찰에게 이양되어 있었다. 예심판사는 조사를 진행하여, 그 결과를 ‘예심종결결정’을 통해 고지하는데 여기에는 담당관할이 맞는지, 공판을 개시해야 하는지 등에 관해 결정의견을 제시한다.

2) 공판과정과 기록물

공판이 개시되면 재판소는 공판기일을 정해 관련자를 소환하고 피고인, 증인 등을 신문하며, 압수, 수색 검증을 행하고 증거물의 제출을 명한다. 검사, 피고인, 변호인 등도 증거물을 제출하거나 제출명령을 요청하고, 증인 감정인 등의 소환을 청구할 수 있었다.

공판정은 판사, 검사 및 재판소 서기가 출석하는 것만으로 성립가능하나 원칙적으로 피고인의 출두가 필요하다. 공판정은 합의재판소에서는 재판장, 단독재판소에서는 단독판사가 소송의 지휘권을 갖는다.

공판의 심리는 피고인 확인 및 검사의 피고사건 진술, 피고인 신문 및 증거조사, 검사의 변론(논고), 피고인 및 변호인 변론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은 공판정에서 ‘공판조서(公判調書)’를 반드시 작성해야 했다. 공판조서란 공판기일에 소송수속의 시말을 기재한 서류로, 소송절차상의 법적증거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으며 공판 전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했다. 공판조서는 재판소 서기가 작성했는데, 공판을 위한 재판소 및 연월일 판사, 검사 및 재판소 서기의 이름, 피고인, 대리인, 변호인, 보좌인, 통역인의 이름, 피고인이 출두하지 않았을 때의 이유, 공개를 금할 때의 이유, 피고사건의 진술요지, 변론의 요지, 피고인, 증인 등의 신문 및 공술과 증인, 감정인 등이 선서를 하지 않았을 때의 사유의 기재, 낭독하거나 요지를 고한 서류, 피고인에게 보인 서류 및 증거물, 공판정에서 한 검증 및 압수, 재판장이 기재를 명한 사항 및 소송관계인의 청구로 인해 기재를 허락한 사항, 피고인 혹은 변호인이 최종으로 진술한 것 또는 피고인 혹은 변호인에게 최종적으로 진술할 기회를 준 것 등을 반드시 기재하도록 규정하였다. 또한 공판조서는 반드시 재판장과 서기가 함께 서명날인 하도록 규정하였다.

3) 공판결과와 기록물

공판이 끝나면 판사는 그 결과를 발표하는데, 여기에는 사건담당 관할권이 있는지에 대한 판결, 유죄, 무죄를 언도하는 판결, 면소를 언도하는 판결, 공소기각을 언도하는 판결 등이 있다.

판결은 판사가 작성한 판결서(判決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판결서가 완성되면 재판장은 공판정에서 주문 및 이유를 낭독하고, 때에 따라 훈시를 하기도 하였다. 판결결과가 유죄인 경우는 피고인에게 상소기간 및 상소신청서를 주고 재판소를 고지하며 공판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공판은 끝난다.

공판 결과 작성된 판결서는 판결일 순으로 묶여 판결문철 등으로 관리되었는데, 판결문은 모두(冒頭), 주문, 이유의 3부분으로 구분하여 작성하였다. 모두에는 피고인에 관한 사항(본적, 주거, 직업, 이름, 연령 등) 및 피고사건에 관해 기재하였다. 주문에서는 피고사건에 대한 재판소의 판결결과를 기재하고, 이유에서는 사건의 전말과 증거설명, 적용 법령 등을 기재하였는데, 말미에 판결 연월일과 공판에 관여했던 판사의 서명날인이 있었다.

판결이 끝나면 그 결과는 집행원부(執行原簿)와 형사사건부에 기록하였다. 집행원부는 공판의 결과에 따라 형벌을 집행한 날짜를 기입한 장부로 주임검사명, 죄명, 집행지휘 일자, 처분결과 판결일, 피고명 등을 작성하였다. 형사사건부에도 처분결과 및 판결일 등을 기입하였다.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에는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를 작성하였는데, 수형인명부에는 이름과 별명(다른이름), 생년월일, 신분, 주소, 본적 및 전과(處刑度數), 죄명, 형벌명과 기간, 판결일 등을 기입하였다.

이 외에도 색인부(索引簿), 보존부(保存簿) 등의 기록물이 있었다. 색인부는 형사사건색인부, 수형인색인부 등이 있었는데, 이는 형사사건부, 수형인명부 등을 이름순으로 정리하여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 장부였다. 보존부는 사건번호별로 해당 사건에 관한 일체의 기록물을 보존하거나 폐기한 내역을 기록한 사건기록 관리대장이었다. 재판소의 서기과에는 위와 같은 기록 외에도 재판소의 구성에 관한 기록, 예규에 관한 기록, 검찰사무, 감옥의 감독 사무, 직원이력, 기밀사항에 관한 기록 등도 있었는데, 이는 ‘사건기록’과 구분하여 ‘서무기록’이라고 하였다.

한편, 형이 완전히 확정되면 재판소는 확정판결을 받은 피고의 주소지 면장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였는데, 면장은 이 사실을 취합,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를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