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감옥에서 나오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탈옥이나 사망, 근로보국대 차출과 같은 방법을 제외하면 합법적이고 완전하게 다시 세상밖으로 나오는 것은 만기출소와 가출옥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출옥 후에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범죄자’라는 낙인과 그들에 대한 일경의 감시였다. 감옥에서 출옥한 사람은 이미 범죄인명부에 이름이 등록되어 소재지의 면사무소나 경찰서에서 특별관리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사상범의 경우 더욱 두드러졌다.
사상범은 1920년대부터 급증했는데 일본에서는 주로 공산주의자만을 다루고 있었지만, 조선에서는 ‘국체를 변혁할 목적’, 즉 독립운동과 연관된 모든 개인을 사상범으로 처벌 할 수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이런 사상범들의 감시와 처벌을 위해 1936년 「조선사상범임시보호관찰령」을 , 1941년에는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을 제정하였다.
「조선사상범임시보호관찰령」에 의해 사상범은 출옥과 함께 보호관찰 심의회의 심의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보호관찰 대상이 되면, 사상교육, 직업교육 등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사상교육을 명분으로 보호관찰 대상자들에게 황국신민 서약이나 국방헌금 강요, 일본군의 출정환송식 참여, 황국신민화 선전발언 등과 같은 전향작업을 집요하게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일부 사상범들은 친일파로 변질되기도 하였다.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은 출옥하는 사상범 중에서 감옥내에서 집단행동을 하거나 소요를 일으키는 등 완고한 비전향자를 다시 예방구치소에 입감시켜 생활과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령이었다. 즉, 「보호관찰령」 만으로는 제어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인물들을 자의적으로 감옥에 가둬두기 위한 제도였다. 이 법령과 관련한 주요 기록물로는 「예방구금집행원부」, 「예방구금조사서류」 등이 있었다.
일제는 이러한 폭압제도를 통해 사상범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그들의 입을 통해 ‘황국신민화’를 선전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인 전체를 천황에 충성하는 순종적이고 끈기있는 노동자로 전락시켜, 제국주의 전쟁의 소모품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이러한 광기는 1945년의 광복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