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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첩이었다

영상소개

  • 분야

    정치

  • 생산연도

    1961

  • 감독

    임학송

  • 생산기관

    공보부 국립영화제작소

  • 관리번호

    CEN0002485

  • 재생시간

    38분 58초

영상해설

  • 자수 간첩 김○의 수기내용을 담은 영상기록이다. 북한군 대좌 출신 간첩으로서 남파한 경로와 주변 인물 포섭방법, 부산에서 간첩활동과 자수의 과정을 통해 간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상자막

  • (00:07)
    김혁 : 수고 하십니다.
    사회자 : 어서 오십시오. 요즘 어떻게 사업이 대단히 바쁘시죠?
    김혁 : 별일 없습니다.
    사회자 : 자 말씀하세요.
    김혁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북한에서 김일성이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아가지고 대한민국에 간첩으로 남파되었던 김혁이올시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의 간단한 경력을 말씀드리자면 6.25사변 당시 괴뢰인민군 대좌로서 군사동원무장을 역임해왔습니다. 남파되기 직전에는 평양방직공장 정치부장의 위치에서 공작을 하다가 공산당원으로서 공산당과 김일성이로부터 가장 두터운 신임을 받는 한 사람으로서 김일성이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아가지고 대한민국에 나가서 대한민국 도처에 다시 말씀드리면 공장, 농촌, 어촌, 학원, 또는 군대 내부에 공산당 지하당을 조직하고 대한민국의 국가와 민족을 분열시키고, 와해시키라는 중요한 임무를 지니고 나왔습니다. 제가 나와 가지고 짧은 기간이나마 활동하던 얘기를 지금부터 하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제가 직접 나오지 못한 것은 상황이 복잡한 관계상 본 영화에 직접 출연하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시에 제가 나올 당시에는 4.19의거 이후 대한민국이 가장 혼란한 시기에 남파되었습니다.
    
    (02:22)나는 호송을 담당한 괴뢰군과 밤을 이용하여 국군 장교 복장으로 가장 휴전선을 넘어 이남 땅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100명의 간첩이 월남하다가 90명이 잡혀 죽는다는 말을 들은 나의 심장은 걷잡을 길 없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약 일주일간 모든 난관을 돌파해가며 미리 지정된 루트를 따라 드디어 동두천 뒷산에 도착했습니다. 동두천 뒷산에 도착한 나는 휘황찬란한 시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매일같이 북한선전당원의 말이 생각난 것입니다. “남반부는 전기가 아주 모자라 암흑세계와 같소. 그 대신 양초 공장과 남폿불이 발달해 있는 것이오.”
     
    김혁 : 여보, 대한민국 촛불과 남폿불은 굉장히도 밝군요. 우리 이북 전기같이 밝지 않소. 그거 참 신기한데요. 
    북한군인 : 아니 그게 무슨 말이요. 이양반이 일주일동안 고생하더니만 아주 돌아버리셨네. 저건 멀쩡한 전깃불입니다.
    
    (03:42)우리는 그날 밤을 숲속에서 새우고 이튿날 오후 3시쯤 되어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미리 준비해왔던 신사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이 옷은 나의 몸에 맞춰 일부러 남한에서 맞춘 것인데 일본을 통해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입고 있던 군복 또한 구멍을 파서 숨겨두었습니다. 이들 괴뢰군은 참말 대단했습니다. 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나를 끝까지 송별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나는 큰 실수를 했습니다.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묻지도 않고 타버린 것입니다.
    
    김혁 : 차장. 이 차 어디까지 가나?
    차장 : 동두천이에요.
    
    북한간부 : 서울로 직진하시오. 만일 동두천에서 머물게 되면 미군이나 국군부대가 많아 틀림없이 잡혀 죽구 마오.
    
    김혁 : 그럼 서울 가는 버스는 없나?
    차장 : 마지막 버스가 벌써 떠났는데요.
    
    (05:06)나는 하는 수 없이 불안한 마음을 안고 죽는다는 동두천으로 향했습니다. 여관방에 도착한 나의 심정은 무척 복잡하고 괴로웠습니다. 틀림없이 잡혀 죽는다는 동두천 이 낯선 여관방에서 나는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이모저모로 생각하고 있을 때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손님1 : 아주머니 저 방 있나요?
    아주머니 : 아유 모처럼 오셨는데 참 안됐습니다. 아 웬일인지 오늘은 손님이 만원돼서요.
    손님1 : 그래요? 딴 곳도 가봤는데 역시 만원이던데.
    아주머니 : 아이구. 모처럼 오셨는데 어떡하나.
    
    (05:51)나는 이 말을 듣고 이제 살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잘 방이 없는 저 사람을 이용해서 행동을 같이 하면 혼자서 있는 것보다 의심을 덜 받게 될게 아닌가 나는 이런 결심을 하고 나서 상대방을 본 순간 나는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간첩인 나로서는 상대 못할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김혁 : 아주머니 냉수 한 그릇 주시오 
    아주머니 : 네. 
    손님1 : 여보세요? 실례합니다만 이북서 왔죠?
    이 순간 나는 모든 것을 포기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고.
    김혁 : 예 그렇습니다. 근데 왜 그러십니까?
    손님1: 네 나도 고향이 위입니다.
    김혁 : 아하 반갑습니다.
     
    (06:44)정말 뜻밖이었습니다. 같은 이북이라고 말을 걸어온 이 군인은 몹시 외로워 보였습니다. 또한 이 장교의 거동은 나의 정체를 아직 발각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나는 이 외로워 보이는 소령을 술집으로 꼬여냈습니다. 목적은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먹여 나와 같이 유숙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육군소령과 같이 자는 나를 누가 감히 간첩으로 생각하겠습니까. 나는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김혁 : 술이 싱거워서 어디 마시겠어. 우리 사발치기로 하지.
    여급 : 그렇게 합시다요. 자요. 그럼 이번에도 제 차례로 할까요? 받으세요.
    
    (07:52)이렇게 하여 나는 이 군인이 의식을 잃도록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나는 부러 소령의 군복을 벗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임검할 때 쉬 눈에 띄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 한구석엔 불안과 공포가 가시지 않고 점점 높아만 갔습니다. 내일 서울까지 무사히 가려면 어떠한 방법을 취할까 어느 시간에 무슨 편을 이용하는 게 나을까 헝클어진 생각을 바로 잡으면서 나는 어느덧 내가 교육을 받던 평양의 밀봉교육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1년 8개월 동안 나의 가족은 물론 지도원 외에는 아무도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나는 여기서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만 특히 20년간이나 서울시 중구 오장동에서 살아온 사람으로 가장하기 위해 서울시의 지도와 사진을 놓고 치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극장이 있으며 무슨 영화를 했는가 영화 내용은 무엇이며 인기배우는 누구누구인가 또한 시발이라는 자동차는 어떻게 생겼으며 동대문은 어떻게 생겼는가 심지어 목욕탕의 위치와 이발소 직공의 이름까지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앞으로 몇 년간 계속해서 쓸 수 있는 암호문을 배웠으며 10분 동안에 무전기를 조립하는 기술도 습득했습니다. 또한 감시를 받을 때는 우선 장소를 빨리 옮겨야 하고 감시원의 긴장이 늦춰지는 공휴일이나 일요일에 가장 복잡한 차를 이용해서 아침 일찍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심리가 아침부터 남에게 딱딱하게 대하는 것을 귀찮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첫 버스를 타기로 결심했습니다. 
    
    (10:28)서울에 도착한 나는 화려한 이 도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자들의 몸단장과 자유스러움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배우 외에는 모두가 무명옷이나 광목옷을 입고 강제노동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활기 있는 모습은 구경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울 시가는 폐허와 같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으며 거지 떼가 우글우글하고 시민들은 먹을 것을 못 먹어 모두 비틀거림을 친다는 공산당의 거짓선전에 놀랐습니다. 공산당의 고급간부인 나까지도 거짓선전에 속아 살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사명을 띠고 월남한 이상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한시라도 발각되지 않고 내 목숨을 유지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경찰이나 특무대원들이 내 뒤를 미행하지는 않을까 해서 4시간이나 돌아다닌 끝에 여관을 찾아들어갔습니다.
     
    김혁 :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무도 없나?
    
    (11:40)여관에 도착한 나는 이곳이 과연 서울에서 나의 아지트가 될 수 있는가를 시험해봤습니다.
    
    남자 종업원 : 아주머니. 아주머니. 손님 오셨어요.
    마담 : 어서 오세요.
    김혁 : 내 보니 아주머니 인상이 좋아서 이집에서 한 달쯤 있다 가려고 하는데 어디 조용한 방이라도 있소?
    마담 : 아유 어쩐지 이런 점잖으신 손님 오시려고 간밤에 꿈자리가 좋더라. 돈은 나중에 치르시고 저 안방으로 들어가세요. 얘, 뭘 꾸물대고 있어 오래 계시려면 좋은 방이 있습니다. 경찰 임검도 없어요.
    김혁 : 아주머니 내가 뭐 죄 지은 사람이오? 임검없는 방을 주게.
    마담 : 그래도 귀찮으실 게 아니에요.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김혁 : 얘 담배하나 사다 줘.
    
    (13:06)나는 이들이 하는 짓을 보고 안심했습니다. 앞으로 나의 임무를 위해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고 돈만주면 마음대로 심부름 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서울에서 나의 임무란 내가 본격적으로 활약을 할 부산으로 내려가기 전에 서울의 지리를 익히고 또 대한민국의 생활양식을 몸에 익히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또한 불온 군대에 입대한다는 여관집 대학생을 포섭했습니다. 그것은 대학생들의 생활감정과 사상의 조류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잘만하면 군에 입대한 후에 군의 기밀을 알아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는 용돈도 주고 갖고 싶다는 것을 모두 사주면서 이 학생을 앞장세워 서울 시내를 샅샅이 살피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북한 평양의 쓸쓸한 밤거리와는 달리 서울은 활기찬 차이의 입김이 어디를 가나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는 한 달 동안 이 학생을 앞장세워 다녔습니다.
    
    라디오 : 이런 난동사건으로 말미암아 기물 파손이 있었는데 자세한 보도는 없었습니다. 다음 어젯밤 기어이 사회대중당에서는 남북협상을 의제로 군중대회를 열고 오늘 오전 열한시...
    
    (14:51)사회가 소란하거나 예감이 이상하면 나는 학생 방에서 같이 자기도 하여 일주일에 두 서 너번 나오는 임검에 한 번도 걸린 일이 없습니다. 이러는 동안 서울에서 나의 임무는 끝나 완전한 아지트를 서울 복판에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렇듯 서울에서의 임무가 끝난 나는 목적 근거지인 부산으로 가기 위해 통일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물론 복잡한 선두 칸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갑자기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모두 저렇게 즐겁게 웃으며 여행을 하는데 나 혼자만이 어떤 고아가 길 떠나듯이 홀로서서 가는 것이 퍽 불안하고 외로웠습니다. 더욱이 서울에서의 한 달 동안 여관생활을 통하여 북한에서 맛보지 못한 인정은 나로 하여금 더욱 공허하게 하고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같은 민족으로 태어나 이렇게 자유스럽고 즐거운 세계에 있으면서 나는 나의 동포와 형제를 두려워하고 불안 속에서 떨고 있어야만 하는가 그러나 잡히면 죽는다는 이북에서의 말을 생각할 때 나는 살아야 하겠다는 인간의 본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였습니다.
     
    경찰관 : 여보, 당신 어디까지 가시오?
    김 혁 : 네. 부산까지 갑니다. 저, 선생님은 어디까지 가십니까? 
    경찰관 : 나 밀양까지 갑니다. 여기 좀 앉으시죠.
    김 혁 : 이거 감사합니다.
    
    (16:35)나는 또 슬그머니 겁이 났습니다. 그것은 이 경찰관이 나의 일상생활을 차근차근 캐묻는다던가 국내형편이나 세계 정세같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답변할까 생각하니 가슴이 조마조마해 갔습니다. 
    
    경찰관 : 여보, 우리 먼 길 가는데 어디 재밌게 가봅시다.
    김혁 : 좋은 말씀입니다. 이거 다 인연 아닙니까? 이거 날씨도 무덥고 한데 우리 맥주나 한잔 하십시다.
    경찰관 : 네 좋습니다.
    
    그는 두말없이 빙그레 웃으면서 따라 나섰습니다.
    
    경찰관 : 으음 아니 이놈의 모자가 왜 자꾸 말썽이야.
    김혁 : 어디 나도 좀 만져봅시다. 주임님 이거 어찌 나도 어울립니까?
    경찰관 : 근사한데요.
    
    (17:49)이 순간 나의 공작은 성공한 것입니다. 간첩의 머리위에 대한민국 경찰간부의 금테두리 모자가 씌워졌으니 제아무리 신경이 칼끝 같은 형사라도 나의 정체를 간파할 수는 없을게 아닙니까? 나는 이렇게 하여 부산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마침 방첩주간인데다가 경계가 삼엄했습니다. 어떻게 이 난관을 빠져 나갈까 하는데 한쪽을 보니 어느 아주머니가 보따리와 어린애 때문에 몹시 힘들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친절을 베푸는체하여 이 아주머니를 이용했습니다. 즉 정다운 부부로 가장하기 위해 되도록 가까이 걸었으며 쓸데없는 이야기도 주고받았습니다. 나는 그 후 세탁소를 경영했습니다. 전기를 많이 쓰게 되므로 무전 연락할 때 편리하고 찾아오는 손님 가운데 이용할만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나는 이 직공들을 포섭했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은 내가 간첩이라는 것을 추호도 모르고 있었으며 서울서 큰 사업을 하다 온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여급 : 드세요.
    직공1 : 그만. 그만.
    
    (19:46)나는 개업 축하를 한답시고 한자리에 모이게 한 후 과연 내가 이용할만한 인물이 있는가를 재검토 해봤습니다.
    
    직공2 : 네, 드세요 드십시다. 자 드세요. 
    직공3 : 뭘 그렇게 빼 한잔 더 하슈. 그 자식들 또 시작이구나.
    직공1 : 큰일 났어 큰일 밤낮 저 모양이니.
    직공2 : 아닌 게 아니라 으씩하면 데모다 하고 날뛰니 아 저 사람들은 아 데모로 먹고 사나?
    직공3 : 또 요즘은 민족통일당이니 혁신당이니 해서 공산주의까지 노골적으로 선전하니 이제 우리나라도 말로입니다. 말로에요.
    직공2 : 정말 이러다간 우리나라도 왠통 빨갱이 소굴이 되겠어.
    직공3 : 누가 아니래.
    직공2 : 빌어먹을 자식들 아니 6.25사변 때 고생하던 생각도 벌써 잊었나.
    여급 : 틀림없이 간첩이 저속에 끼어 있을 거예요.
    
    (20:54)나는 내심 두렵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습니다. 간첩인 나를 옆에 두고 또 자기네들이 나의 꼬임새에 넘어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저렇게 떠들어대고 있다니 정말 우습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직공2 : 이건 다 정치가들 잘못이야 백성은 굶주리고 있는데 신파니 구파니 싸우기만 하고 있으니 아니 글쎄 그것들이...
    직공1 : 요사이 정치가들은 다 썩었어 썩었어.
    나는 이때 겁이 왈칵 났습니다. 북한에서 같으면 김일성이나 공산당에 대해서 한마디라도 비판을 하다간 귀신도 모르게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불안해서 일어섰습니다.
    김혁 : 저 내 그만 바쁜 일을 깜빡 잊었수다. 곧 다녀오리다. 선생님 곧 다녀오겠습니다.
    직공1 : 아니 사장님 이리오슈. 아니..
    (21:58)이러한 불은 모두 무질서한 사회와 이 과도기를 이용해 어떤 간첩이 멋지게 지휘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데모 뒤에 서서 회심의 미소를 띠고 있을 간첩을 눈앞에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이지 요즘 사회질서는 극도로 혼란에 빠져 있었으며 2대 악법 반대니 뭐니 하여 데모를 하고 군중대회를 하는데 간첩인 내가 보기에도 뻔한 공산주의의 선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열성공산당원 이상 가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얼마안가 대한민국은 공산당의 발길에 짓밟힐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러는 동안 나는 내가 무사히 목적지인 부산에 도착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이북에서 지정해준 날 지정된 장소인 송도 바닷가로부터 두 번째인 바위에 지정된 숫자를 적었습니다. 이때부터 나를 감시하는 또 하나의 간첩의 눈초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자 : 아,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김혁 : 여~ 홍 기자. 신문사 일은 잘되오?
    기자 : 네, 그런데 저 만 환만 어떻게 돌려주실 수 없을까요?
    김혁 : 만 환? 그래 주지.
    직공2 : 우리 사장 기마이야.
    직공3 : 최고야 최고 나도 오만 환 꿨어.
    직공2 : 그래?
    기자 : 감사합니다.
    
    (24:11)나는 돈을 주어 닥치는대로 포섭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가짜 도민증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김혁 : 박형.
    직공1 : 네.
    김혁 : 저, 나 오늘 저녁차로 서울 좀 갔다 와야겠는데.
    직공1 : 아니, 서울은 갑자기 왜요?
    김혁 : 여기 장사도 잘되니 아예 부산서 살기 위해 도민증도 떼고 또 기록에도 아주 이 기회에 옮기려고 하는데.
    직공2 : 아니 사장님 돈 삼천 환만 있으면 여기 앉아서도 만들 수 있는 도민증을 뭐 때문에 서울까지 고생하시면서 올라가시렵니까?
    김혁 : 그게 무슨 소리야?
    직공2 : 사장님 구청 호적계 직원과 도민증 해주는 형사와는 나와 아주 친한 사이입니다. 더욱이 사장님 일이신데 돈 삼천 환만 있으면 문제없습니다. 틀림없습니다.
    김혁 : 어..
    
    (25:15)나는 이날 삼천 환의 십 배인 삼만 환을 줘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며칠 후 나는 진짜 도민증을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무엇인가 꼭 일어나고야 말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적중했습니다. 오고야 말 것이 온 것입니다. 사실 나 자신은 간첩으로서 이러한 혁명을 은근히 바랬지만 이 군사혁명만은 간첩인 나에게도 절대로 불리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혁명 정부가 내세운 혁명공약 전부가 기회만을 노리는 공산당에게 불리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잠시 나의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이 혁명을 이용해서 애국자로 가장하자는 것입니다. 나는 그 후 교묘히 애국자로 가장하여 반장이 되었으며 40세 가까운 사람이 홀몸으로 있다는 것도 정부기관에서 이상하게 뵈일 것 같아서 결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늑하고 다정스러운 가정과 그 분위기는 나로 하여금 심각한 구렁에 헤매게 했습니다. 간첩생활 6개월을 통하여 이북에서는 결코 맛보지 못한 자유의 존귀함 누구의 감시와 위협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 이것을 보호하고 보장해주는 대한민국의 제도 속에 숭고한 인간애와 인간성이 따뜻하게 자라나는 이 사회제도 인간의 고귀한 권리와 자유를 말살당하고 항상 불안스런 생활을 하는 불쌍한 북한 동포들 지난날 북한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던 노동당 간부인 나의 생활보다도 오히려 항상 공포에 떨며 사는 지금의 간첩생활이 훨씬 더 자유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불현듯 이 자유스러운 세상에서 단 하룻밤이라도 두 다리 쭉 뻗고 살아보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가슴복판에 메아리 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다. 나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받자. 자수를 하자. 아 그러나 “동무 죽고 싶소? 자수하면 모두 죽인다는 것을 모르오?” 나는, 나는 그만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28:27)그 뒤부터의 나의 생활은 불안과 공포 그리고 고민의 계속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월은 흘러 이제는 북한 김일성과 약속한 무전 연락할 날이 바싹 바싹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7월 23일 드디어 김일성에게 무전을 쳐야 할 날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나는 뱀에 홀린 개구리 마냥 숙명적인 손을 올려 무전기를 준비했습니다. 무전은 새벽 3시 30분에 치기로 약속이 돼있었습니다. 무서운 침묵은 나의 멸망적인 운명을 실험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 무서운 침묵의 흐름..
    
    무전 : 동무의 사업의 성공을 축하한다. 지령 제1호. 학생들과 불평분자들을 선동 민심과 사회질서를 교란시켜 그리고 반동분자를 암살하라. 당 연락은 8월 30일 끝.
    
    정보부원1 : 음, 전혀 새로운 암호인데? 이걸 모두 복사해서 정보부로 보내시오.
    정보부원2 : 네.
    정보부원3 : 전파감시소로부터 보고입니다.
    정보부원1 : 주파 파장으로 볼 때 바로 여긴데 여기서 어떤 간첩이 무전을 쳤군. 이 지점을 철저히 감시하고 수사를 하시오.
    정보부원4 : 네, 알겠습니다.
    정보부원2 : 그런데 이 지점에는 칠성다방과 제일사라는 세탁소가 있는데요.
    정보부원1 : 아 그래요?
    
    (33:05)그 후부터 나의 공포증은 더해갔습니다. 길을 걸어 갈 때도 꼭 경찰에게 미행을 당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또한 누가 나의 얼굴을 두 번만 쳐다봐도 나를 주목하고 감시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부인 : 웬일이세요?
    김혁 : 아니오. 아무것도 아니오. 
    김혁 : 박형 나의 말을 꼭 하나만 들어줄 수 없소? 이건 내가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정이오.
    직공1 : 아니 사장님 새삼스럽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서 속 시원히 이야기나 하십시오.
    
    (35:00)나는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나의 행동이 양심의 가책을 받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대한민국으로 와서 내 눈으로 보니 모두 공산당 놈들에게 속아 왔다는 것을 깨닫고서 하루바삐 불안한 생활을 청산하려고 했으나 마음이 약해서 오늘날까지 혼자 고민해왔다고 낱낱이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나대신 경찰에 가서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직공1 : 알았습니다. 정말 말씀 잘해주셨습니다. 제가 가서 말씀 잘 드리겠습니다. 사장님은 댁에 가 계십시오.
    김혁 : 고맙소. 정말 고맙소.
    
    나는 박 씨라는 직공의 도움으로 자수했습니다. 정말 경찰에서는 상상외로 친절했습니다. 나는 나의 죄를 용서받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서 경찰당국과 협조해서 이북과 무전연락을 80여회나 했으며 간첩체포에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경찰당국은 수사를 강화하여 나를 항상 감시하던 여간첩도 체포했습니다.
    
    (37:47)
    김혁 : 여러분 보신 바와 마찬가지로 간첩이란 표식이 없습니다. 저의 활동을 보십시오. 동두천에서 국군소령을 이용하던 방법, 또한 서울에 와가지고 모 대학생을 이용하던 방법, 부산에 내려갈 때에 경찰관을 이용하던 방법, 또한 역전에서 모부인을 이용하던 방법, 등등을 보면 여러분들이 앉은 그 좌석에도 누가 간첩이 없다고 단언하겠습니까? 간첩들은 지금 여러분들 뒤에 앞에 있습니다. 오늘날 북한 공산당은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기 위해서 남한출신으로서 약 20만 명을 간첩의 교육 훈련 중에 있습니다. 이들은 휴전선으로 동서해로 일본으로 홍콩을 통해서 매일매일 침입해옵니다. 간첩의 색출은 어떤 수사기관에 있는 사람들만이 색출한다는 이러한 관념을 버리고 간첩이란 여러분들이 사는 국민 방에서 같이 삽니다. 오직 간첩의 색출은 전 국민이 군, 경, 민 할 것 없이 합동하여 색출하지 않으면 색출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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