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1960
강래식
공보실 선전국 영화과
CEN0002282
9분 15초
(00:18)언제나 새벽같이 일어나서 일하는 것이 농촌의 생활이지만은 장날은 더욱이나 그렇습니다. 먼동이 채 트기도 전에 마을에는 조반 짓는 연기가 가득차고 집집에서는 그날 장으로 내갈 물건을 챙기느라고 또한 법석입니다.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농업을 근본으로 삼아 논밭을 갈아서 양식을 삼고 길쌈을 짜서 입을 것을 마련해 자급자족을 해왔지만은 집집마다 부족한 것이 있는 것은 당연해서 있는 것 없는 것을 이웃과 물물교환하며 유무상통해온 것이 우리나라 장의 시초인 것입니다. (01:48)이와 같은 장은 해를 거듭하면서 고장에 따라 보름이나 열흘 또는 닷새만큼씩 정기적으로 한 장소에 모여 매매를 하게 됐습니다. 시골에서 제일 먼저 서는 것이 쇠전 즉 우시장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여러 마을에서 모여든 크고 작은 소들, 농촌에서 소라면 제일 큰 재산의 하나이며 일하는데 있어서의 능률로 봐서도 여간 소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를 사는 사람들의 신중한 모습도 당연한 일입니다. 힘세고 살찐 놈은 물론이지만은 다리뼈나 등뼈도 만져보고 소의 나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빨까지 헤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마음에 들면 흥정이 벌어집니다. 비싸게 받자는 것이 파는 사람의 심정이라면 싸게 사자는 것이 사는 사람의 인정이니 타협이 잘 안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여기에서 거간이 등장합니다. 예부터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하는데 흥정을 붙이는 것이 거간의 직업이라 교묘한 수단으로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을 다 같이 만족시키면서 흥정을 붙이고 양쪽에서 구전을 받게 됩니다. 쇠전이 흥성거릴 무렵에는 다른 장에도 손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03:30)농사만을 짓고 사는 농민들에게 가장 구미를 돋우고 흥정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은 역시 어물 시장인가 봅니다. 그러나 거래하는 물건에 따라 장소를 나누어 자리를 잡고 있으니 양곡장, 채소장, 과물장, 포목장 등이 그것입니다. 이 밖에 특수시장으로서 약령시장과 수산시장도 곳에 따라서는 번창하고 있지만은 대부분에 시골장에서 거래되는 물품은 농민들이 손수 가꾼 농산물이 으뜸이고 외계에서 산출되는 해산물이라든가 도회지나 공장지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여러 가지 물건도 이 장을 통해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갓을 써야만 행세를 한다던 옛 풍속도 세태의 변화에 따라서 도심지에서는 보기 힘든 유물처럼 버림을 받고 있지만은 아직껏 시골장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니 예부터 내려오는 풍속은 그리 쉽게는 고쳐질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04:54)이와 같은 우리나라 고유의 장은 물물교환이 필요하게 된 옛날부터 존재해 왔었는데 문헌에 나타난 장의 기원을 살펴보면은 멀리 삼한시대부터라고 해서 이때도 역시 우리 조상들은 쌀, 보리, 조 등 오곡을 가꾸어서 장에 갖다 팔았다고 합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가로시(街路市)라는 것이 있어서 물건의 매매를 이곳에서 했다니 지금도 동네 어귀나 장터에 이르는 길가에서 계란꾸러미나 고추, 잡곡같은 사소한 물건을 거래하는 것을 보면은 이러한 옛 풍속의 흔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장이 며칠만큼씩 정기적으로 고을마다 서게 되니 장을 따라 이동해 다니는 전문 상인이 생겼는데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소위 장돌뱅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일정한 장소를 갖지 않고 항상 오늘은 이 마을 내일은 저 마을로 떠다니는 만큼 교통이 불편한 고장에서는 자연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는 전파자로서의 구실도 하게 된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이 장날도 근대 문명의 혜택을 받아 그들이 취급하는 물건도 근대적인 상품으로부터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수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다채로운 물건을 교류하게 됐습니다. (06:54)물건 거래로 흥성거리던 장터도 파장에 가까워질 무렵부터 점점 한산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장꾼들의 발걸음은 장터에 자리 잡고 있는 주막으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파장과 더불어 활기를 가지게 되는 주막에는 텁텁한 막걸리로 목을 축여가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장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고가는 술잔과 더불어 궁금하던 얘기도 오고가며 사돈에 팔촌 친지들의 안부, 길흉, 혼사 등의 여담도 벌어지게 되니 주막은 자연 농민들의 사교장으로서 커다란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상설 점포의 발달을 보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장날을 통해서만 손수 가꾼 농산물을 팔아서 생활필수품이나 농사철에 필요한 기구 등을 사게 됨은 물론이려니와 장터에를 나와야 새로운 문물이나 소식도 듣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니 장날은 농촌의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문에 걸친 교역장으로서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