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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의 뱃길

영상소개

  • 분야

    교육

  • 생산연도

    1963

  • 감독

    양종해

  • 생산기관

    공보부 국립영화제작소

  • 관리번호

    CEN0002626

  • 재생시간

    19분 36초

영상해설

  • 교육열이 높은 여수의 장한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영상기록이다. 전라남도 여수의 섬, 가장도에서 여수까지 6년간 3만여리를 배를 저어 딸을 여수남국민학교에 통학시킨 어머니의 높은 교육열과 모성애를 담고 있다.

영상자막

  • (01:05)안개처럼 자욱이 서린 남빛 새벽이 걷혀지면 섬 아이들을 실은 나룻배들이 학교가 있는 육지를 향해서 아침 햇살을 헤치며 이곳저곳에서 바쁜 노를 젓기 시작한다. 바다의 길은 육지와는 다르다. 호수와도 같이 잔잔한가 하면 파도가 일고 또 어떤 때는 성난 폭풍우가 친다. 이 길을 어머니 뱃사공은 6년간을 오고 갔다. 어머니 뱃사공이란 여수남국민학교에 다니는 숙현이의 어머니, 박순이 씨를 말한다. 숙현이가 사는 곳은 여수에서 10리가 좀 못 되는 곳에 있는 가정도라는 외로운 섬이다. 그 섬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숙현이 밖에는 없다. 그래서 숙현이는 다른 큰 섬의 아이들처럼 나룻배를 타지 못하고 외롭게 자기 집 적은 배를 타고 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그것도 아버지가 병환이라서 어머니가 노를 젓는 것이다. 
    
    (03:00)넓고 넓은 바다 위를 외로이 돌아가는 어머니의 뱃길은 조용하고 햇빛은 따사로우나 되돌아보는 세월은 아득하고 괴로운 것이었다. 가슴을 설레이면서 반대하는 남편 몰래 딸을 국민학교에 입학시키던 일도 어제만 같다. 또한 배편도 없는 외딴 섬에서 어떻게 아이를 학교에 보내겠느냐고 남편과 싸운 일도 어제만 같다. 1년, 2년, 3년 그리고 5년. 세월은 숫한 괴로움과 즐거움 속에 비바람과 함께 흘러갔다.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섬에 돌아오면 벌써 한나절이 넘는다. 가까운 10리라고 하나 여자의 힘으로 오고 가고 십오리 바닷길을 노를 젓고 나면 몹시 피로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시도 쉴 사이가 없다. 어머니가 이 섬에 시집 올 때에는 남편의 건강도 좋았고 집안 살림살이도 적은 섬이나마 제일 나은 편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병으로 오래 전부터 눕게 되면서부터 살림살이도 차차 어려워져 가고 또한 어머니가 모든 살림을 혼자 도맡고 계신 것이다. 
    
    (05:23)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어머니의 유일한 낙은 무엇보다도 딸 숙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는 것이었다. 다른 마을처럼 학교에 다니는 나룻배가 없다. 다른 아이들처럼 아버지가 돈을 벌지 못한다. 그런 것은 아무런 이유도 되지를 않았다. 다만 어떠한 일이 있드래두 딸 숙현이만은 자기처럼 까막눈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딸을 말없이 반긴다. 라디오도 시계도 없는 외따른 섬이라 때로는 어머니가 먼저 와 나루터에서 숙현이를 기다리고 때로는 숙현이가 어머니를 기다린다. 저녁노을이 함박 깔린 바다 위에 어두움이 스며들면은 이곳 적은 섬에도 밤이 찾아온다. 밤은 깊고 고요하나 어머니의 마음은 지금도 내일의 뱃길을 염려하는 것이다. 지난 밤 썰물에 배가 모래밭에 얹히고 말았다. 밀물이 되어 배가 뜰라며는 아직 멀었다. 어머니는 학교시간이 늦을까봐 걱정이다. 병든 아버지도 이런 날은 보고 있을 수만 없었다. 악을 쓰며 배를 밀어내는 모녀의 얼굴이라든지 먼 바다 위로 사라져가는 모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아버지의 마음도 족히 안타까웠다. 
    
    (07:38)오늘은 숙현이를 보내는 길에 밭에서 가꾼 채소를 장터로 팔러가는 날이다. 이런 날이면, 숙현이는 무엇인지도 모르게 즐거웠다. 어머니 혼자 먼 바다 위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렇게 같이 고개를 넘는 것이 한없이 즐거웠다. 어머니는 장터로 갔다. 장터는 언제나 풍성하고 사람들도 많았다. 뿐만 아니라 이곳 여수 항구는 남해바다의 고기잡이배들이 모여들어 많은 생선이 언제나 풍성한 곳이다. 이곳저곳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극성스러운 흥정소리가 장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어머니의 마음을 초조케 했다.
    
    (노래)
     
    채소를 팔고 난 어머니는 먼저 남편의 약을 사야했고 또한 오래도록 벼르던 숙현이의 신발을 오늘은 꼭 사야했다. 아무리 없어도 떨어진 신발을 신길 수는 없었다. 학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는 오늘도 어머니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어머니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했다. 
    
    (10:28)어머니의 할 일은 많았다. 외따른 섬이라 농사철이 되면 뭍에서 소를 빌려가는 일도 어머니의 일이다. 이 섬에는 벼를 심는 논은 없고 얼마 되지 않는 밭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농사는 고구마와 보리를 심는 한편 당근을 가꾸어 장터에 가서 파는 것뿐이다. 비가 올 것 같다. 어머니는 비옷도 없이 학교로 간 숙현이가 걱정이 된다. 어머니의 일기예보는 틀림이 없다. 아이들은 제각기 집으로 가기 바빴으나 숙현이는 어머니가 걱정이 되었다. 이런 날이면 담임선생은 으레 숙현이를 나루터까지 바라다 준다. 비는 점점 더 심해 갔다. 거기에다 바람까지 불기 시작했다. 담임선생은 오늘은 파도가 심한 것 같으니 자기 집에 하루 저녁 자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으나 어머니는 듣지를 않았다. 기나긴 풍상 속에서 오늘 같은 바다를 한두 번 만난 것이 아니다. 오직 내 딸을 내 손으로 내 집에 데리고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제는 안심이다. 조금만 더 가면 섬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큰 바람만 불지 말아주었으면, 큰 물결만 일지 말아 주었으면 하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노를 저었다. 아득히 어두움 속에 아버지의 모녀를 기다리며 안타까이 흔드는 등불이 희미하게 보인다. 어머니는 한없이 반가웠다.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비바람에 지쳐 아무런 말도 없다. 다만 몇 해 전 오늘 저녁과 같은 밤에 조난을 당해서 어느 섬에서 두 모녀가 밤을 밝힌 쓰라린 생각이 아직도 마음속에 생생할 뿐이다. 
    
    (14:50)날은 다시 밝았다. 바람은 잔잔하고 하늘도 맑았다. 그러나 간밤 태풍에 어머니의 생명과도 같은 배가 없어지고 말았다. 두 모녀는 미친 듯이 섬을 헤매어 보았으나 잔잔한 바다 위에는 부서진 몇 조각의 나무토막밖에는 없었다. 숙현이는 학교를 가지 못했다. 숙현이는 언제 학교를 갈 수 있을지도 알 수가 없었다. 태풍이 가신 뒤에 섬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담임선생과 옆 섬의 선장의 호의로 숙현이는 배를 구할 때까지 이 배를 타고 학교를 가게 되었으나 이 배가 이 섬까지 올라면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다른 아이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므로 숙현이와 어머니는 물 건너 적은 섬에서 이 배를 기다리기로 했다. 물 건너 적은 섬이란 숙현이의 섬의 옆 섬인데 물때가 좋은 썰물이라야 건너갈 수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썰물의 시기는 밤중일 때도 있다. 이럴 때이면 어머니와 딸은 밤중에라도 그 물을 건너야 했고 학교가 끝나면 또한 밤늦게라도 물 건너 마중을 가야했다. 
    
    (17:14)눈물과 고난의 세월 속에서 숙현이는 자라고 숙현이는 배운다. 어떠한 고난이 와도 어머니의 사랑이 지켜주는 한 숙현이는 행복하게 남과 같이 배울 수 있다. 오늘은 어머니가 새 배를 구하는 날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어머니와 같이 배를 타고 다닐 수가 있다. 숙현이는 학교에서 한 숨도 쉬지 않고 나루터까지 뛰어왔다. 어느 때보다도 노을이 짙은 나루터에는 벌써 어머니가 숙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는 잔잔히 말이 없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은 한없이 기쁘다. 노를 젓는 손에도 힘이 생긴다. 남 몰래 밤에 나와 노 젓는 연습을 하던 일은 벌써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지나가는 남자들의 뱃사공도 두려울 것이 없다. 어머니는 맑고 높은 먼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그 맑고 높은 하늘 위에 멀지않은 날에 보람 있고 눈물겨운 영광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는 다시금 노 젓는 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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