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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바친 젊음

영상소개

  • 분야

    경제

  • 생산연도

    1970

  • 감독

    이광수

  • 생산기관

    국립영화 제작소

  • 관리번호

    CEN0003461

  • 재생시간

    10분 27초

영상해설

  • 충남 예산군 삽교면 신가리 김동관씨는 자립으로 대학을 나오고 고향으로 돌아와 임야를 개간하여 옥토로 바꿔 사과를 재배하고 농사를 지어, 이웃에 기술을 전수하고 고향 발전에 헌신함

영상자막

  • (00:00:25)여기는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면 신가리. 결실의 계절을 맞아 벼 타작이 한창이다. 정종관 씨, 그는 가난한 농가의 독자로 태어나 편모슬하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자력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00:01:06)고향에 돌아온 그는 어머니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대로 물려온 문전옥답을 팔아 사과나무가 있는 임야 6,000평을 샀다. 그러나 그가 산 땅은 거칠고 황폐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 딸린 과수원도 이름뿐이지 쓸모없는 것이었다. 황폐했던 임야는 차츰 옥토로 변해갔다. 거기에 씨앗을 뿌려 하나의 생명을 심어나갔다.
    
    (00:02:18)
    아버지 : 대학을 나온 놈이 할 짓이 없어서 땅을 파고 있느냐, 응?
    어머니 : 이 어미는 너만 믿고 살아왔는데 문전옥답까지 팔아서 거지꼴이 되다니.
    
    그러나 한번 붙인 그의 결심은 더욱 밀고 나갈 뿐이었다. 그로부터 삼 년,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부화 70만 환(?)의 수익을 올렸다. 이때부터 주위의 관심도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으며, 어머님도 아들의 뜻을 알게 됐다.
    
    (00:03:07)그해 겨울 농업협동조합에서 마련한 영농강좌에 참석했다. 그는 여기서 실제로 체험한 여러 가지 어려움이 하나하나 풀려나갔다. 그래서 전년도의 실패를 참고한 완전한 영농계획서를 짜고 거기에 따라 농사를 지어갔다. 농협에 토양검정(土壤檢定)을 의뢰해서 그 분석결과에 따라 적당한 양의 석회와 비료를 뿌렸다.
    
    (00:04:04)결실의 계절이 오니 땀의 대가는 여실히 찾아왔다. 그해 가을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아내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좋은 협조자가 돼줬다.
    
    (00:04:23)금년에는 3,000개나 더 많은 사과가 매달렸다.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금방 달라지기 시작했고 마을 근방에 버려졌던 임야는 차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과수농가의 수가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따라 그는 능금조합을 조직했다. 틈 있는 대로 함께 모여 자기가 체험한 영농기술을 발표하고 생산품의 출하기를 결정하고 가격 통제를 실시했다.
    
    (00:05:26)그는 수입이 생기는 대로 농업협동조합에 이미 영농자금으로 대여 받은 원금을 갚고 나머지는 저축을 했다. 또한, 조합을 통해 현물을 저축해서 자계(가계)자금을 확보하고 비료나 농약을 필요로 할 때에는 언제든지 공제의 편의를 받았다. 수입이 얼마큼 생김에 따라 수동으로 하던 모든 작업을 동력으로 대체했다.
    
    (00:06:14)배합탱크에서 혼합된 농약은 농장 어디서나 쓸 수 있게 지하 파이프를 여러 곳에 연결했다. 이 시설은 인근 과수농가에서도 적기에 이용할 수 있으며 급수시설로 바꿀 수도 있게 했다. 그는 돼지, 닭 등도 사육하고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퇴비는 농작물의 좋은 밑거름이 될 뿐 아니라 수입만도 연간 30만 원에 달한다. 이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우량종 30두를 계속 키워 여기서 나오는 새끼는 이웃에 반액으로 분양해주고 있다.
    
    (00:07:09)요즈음에 와서 연간 200여만 원의 순수입을 올리고 있는 정 씨. 그는 가난한 이웃에 대해 무엇을 만들어서 그냥 주기보다는 그 만드는 방법을 이웃 사람들에게 가르켜(가르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돈을 많이 들여서 농사를 잘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짓. 그러나 그의 영농 방법은 돈을 가급적 적게 들이고 많은 수확을 올리자는 것이다.
    
    (00:07:44)그는 마을의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사비를 들여 4미터(m) 폭으로 국도로 통하게 넓혔다. 그 길을 경운기가 힘차게 달린다. 이 마을에는 얼마 전부터 전기와 전화가 가설됐다. 정 씨가 노력한 보람은 차츰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금년에는 부근 야산 일대에 밤나무와 은행나무 묘목 3,000주(株)를 심었다. 머지않은 장래에 여기서 나올 소득이 무엇보다 클 것이 확실하다.
    
    (00:08:30)가난은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고 정 씨는 말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에만 그치지 말고 자기 스스로가 연구하고 노력만 한다면은 틀림없이 그 대가가 온다고 그는 굳게 믿고 살아간다. 그는 일찍이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이제 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농군이 된 것이다. 그것은 흙을 보람 있게 이용할 줄 아는 인간이 됐기 때문이다.
    
    (00:09:01)정 씨는 농업협동조합 중앙회가 주최한 1969년도 제4회 새농민상 선발에서 종합상을 탔다. 흙과 함께 그의 젊음을 바친 10년. 정 씨는 이 영광을 흙에 바치겠다고 말했다. 흙에서 그의 생애가 싹텄고 흙에서 열매를 맺었기 때문인 것이다.
    
    정 씨 : 가난에서 벗어나고 웃음의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00:09:35)정 씨는 여느 때와 같이 오늘도 아침에는 경운기에 분뇨탱크를 달았다. 인근 장터로 인분을 실어 가는 것이다. 정 씨 아내가 오늘은 쉬라고 말린다. 오늘이 그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이라도 흙과 비료 냄새를 맡지 않으면 통 밥맛이 나지 않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린 그다. 10여 년을 두고 젖어온 습관이라기보다는 흙을 더 사랑하고 있는 그의 굳은 의지에서 그러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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