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76
이용민
국립영화 제작소
CEN0004173
20분 19초
(00:00:43)경주에는 우리나라 역사상 미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던 옛 신라 문화의 유적과 유물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특히 신라 고유의 풍토미를 살려 격조 높은 미의 세계를 창조한 신라 문화 가운데는 불교 의식을 위해 만들어진 불교 예술 문화의 소산이 많습니다. (00:01:10)지금으로부터 1,400여 년 전, 멀리 인도에서 전해진 불교는 신라 국민들의 뜨거운 신앙으로 마침내 신라의 국교로 공인됐습니다. 그 당시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80여 개의 절이 세워졌다고 하나, 지금은 흙 속에 파묻혔던 절터의 초석으로, 그 우람했던 규모를 상상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한 일은 옛 절터에서 돌에 조각한 아름다운 불상을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00:02:31)여기는 신라의 화랑들과 삼국통일의 영웅 김유신 장군이 수련했다고 전해지는 단석산입니다. 김유신 장군이 공부하던 방이라고 전해오는 이 자연의 석실에는 신라시대에 새겨진 명문과 함께 높이 6미터가 넘는 미륵불 등 대소 10구의 불상이 매우 소박한 솜씨로 조각돼 있습니다. (00:03:16)신라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이 불상들은 삼국통일을 향한 그 시대 신라 국민의 힘찬 기풍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두(2) 구의 공양상은 신라 시대의 의상을 엿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습니다. (00:03:56)여기 골굴암의 불상에서도 신라 조각의 부드러운 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조용한 마음으로 이 불상을 대하면 차가운 돌의 감각을 떠나 훈훈한 체온을 느끼게 합니다. (00:04:27)경주시 교외의 남산은 이런 훌륭한 신라 불상의 야외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높이 468미터, 동서 12킬로미터, 남북 8킬로미터의 황홀한 자연미를 지닌 이 남산은 정상에서 우측을 동남산, 좌측을 서남산으로 구분합니다. 신라 사람들은 이 산을 미륵정토라고 생각하고 신성시했습니다. 그리고 30개가 넘는 크고 작은 계곡을 따라 50군데가 넘는 절을 세웠습니다. (00:05:11)그러나 지금 겨우 몇 군데 초석의 일부가 남아있을 뿐입니다. 이런 절터 주변에서 우리는 천태만변(千態萬變)의 신라 불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서남산의 선방곡, 윤을곡, 삼릉계, 약수계, 용장계, 백운계에 있는 불상들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00:05:50)멀리 경주시가 보이는 삼릉계의 정상 부근입니다. 높이 5미터 20센티미터에 달하는 이 석가여래 좌상은 남산 석불 중 굴지의 거상입니다. 1미터 30센티미터 크기의 얼굴은 입체로 조각돼 있으며, 몸과 의복은 굵은 선으로 음각돼있습니다. (00:06:24)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흰 화강암으로 된 석가여래 좌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불상은 저 유명한 석굴암의 본존불의 형태를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이 불상의 형태야말로 원숙기에 이루어진 신라 석불 조각의 한 중요한 흐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00:06:51)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9미터 높이의 바위에 3센티미터 정도의 선으로 음각한 석가여래 좌상을 볼 수 있습니다. 부각된 코와 입이 얼굴에 비해서 너무 크고 솜씨는 그리 원숙하지 못하나 소박한 솜씨 속에 신라 사람들의 향수 어린 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00:07:20)바로 이 근처에서 우리는 다시 선각으로 된 불상을 볼 수 있습니다. 불법(佛法)을 가르치는 이 불상은 석가세존에게 꽃을 공양하는 모습을 훌륭한 솜씨로 조각한 것입니다. 이 조각들은 많이 마멸돼서 태양광선이 어느 각도에 왔을 때만 조각의 선이 그 그림자를 나타내서 전체모습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00:07:46)불상 위의 바위에는 도랑을 파서 빗물이 불상으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천년이 넘은 오늘까지 이런 우수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00:08:02)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훌륭한 조각이 있습니다. 1미터 50센티미터의 자그마한 몸매에 손에 보병을 든 것으로 보아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불상을 조용히 대하고 있으면 저 온화한 얼굴 속에서 불교의 근본정신인 “자비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줍니다. (00:08:32)험준한 계곡을 더듬으며 불상을 찾아 우리는 윤을곡에 도착했습니다. 여기 보이는 세 구의 불상을 학자들은 어떻게 해독하는지 소개해 드리죠. (00:08:48)이 불상은 많이 마멸됐습니다만, 부드럽게 미소 짓는 표정이며 소위 부처님의 큰 귀도 잘 보입니다. 왼손에 약합 같은 것을 받쳐 든 것을 보아 약사여래로 판단합니다. 2중의 음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나타냈으며 불상이 앉은 연대(蓮臺)는 상하 2중의 연꽃잎으로 조각했습니다. (00:09:14)이 석가여래 좌상은 양편 어깨에 옷을 걸치고 양쪽 발도 옷 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말굽 모양의 굵은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나타냈으며 옆의 약사여래와 같은 이중의 연꽃잎으로 연대(蓮臺)를 조각했습니다. (00:09:37)배리(拜里)의 삼체석불은 그 조각의 솜씨가 소박하면서도 작품이 웅대해 보이고 무게가 있어 신라 석불 중에서도 높이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가운데 중존불은 설법은 하는 석가세존입니다. 둥근 얼굴에 자비의 빛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이 오른쪽 협시(夾侍)는 온화한 속에서도 위품 있는 얼굴에 보병을 든 것으로 보아 관음보살로 여겨집니다. 풍만한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이 왼쪽 협시는 여성적인 맛을 풍깁니다. (00:01:18)일부 학설에 의하면 그 시대의 실존 인물을 모델로 불상을 조각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조각에서 신라 여성의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00:10:51)약수계의 깊은 골짜기에 높이 8미터 60센티미터의 거대한 불상이 있습니다. 얼굴은 이미 오랜 옛날에 파괴되어 흔적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위에 비단옷을 맵시 있게 입혀놓은 듯한 이 뛰어난 조각 솜씨에는 참으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용장계의 높은 암벽 위에 신라의 삼층 석탑이 주위의 대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00:11:42)유명한 남산의 불탑입니다. 삼층의 둥근 연대(蓮臺) 위에 불상을 안치한 기발한 착상은 그 시대의 예술가들의 뛰어난 창의성을 말해주는 것이며 사실적인 조각의 솜씨는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불탑 바로 근처에 석가여래 좌상이 있습니다. 단정한 몸을 감싸고 있는 흐르는 듯한 의복의 곡선이 그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합니다. (00:12:18)백운계는 경주시에서 14킬로미터 떨어진 남산의 최 남쪽에 있습니다. 넓은 암석은 삼존불을 조각하기에 아주 적합합니다. 그런데 불상 하나의 얼굴과 왼손만을 완성시켰을 뿐입니다. 왜 완성을 보지 못했는지, 천년이라는 세월의 흐름 속에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돼버렸습니다. (00:12:54)다음은 동남산의 불상을 보겠습니다. 동남산에는 불곡, 미륵곡, 탑곡, 남산리계에 중요한 불상이 있습니다. 여기 불곡은 조그마한 석굴암이 있어 유명한 곳입니다. 토함산의 석굴암과 경북 군위의 제2 석굴암 등 단 세 군데밖에 없는 신라 석굴암의 하나로 귀중한 것입니다. 어딘가 여성적인 얼굴을 한 이 불상은 예전에 곱게 채색했던 흔적이 보입니다. (00:13:46)미륵곡의 옛 보리사 절터에는 신라 예술을 대표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 있습니다. 자비에 가득한 눈은 아침 햇빛에 반짝이는 듯하고 부드러운 입에서는 조용한 말소리라도 흘러나올 것만 같습니다. 이 불상은 불상이 지녀야 할 외면의 아름다움과 내적인 정신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00:14:28)여기는 탑곡의 옥룡암입니다. 절 뒤 송림 속에 거암이 솟아있는데 이 바위의 4면에 20체가 넘는 불상의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조각은 기록상으로만 볼 수 있는 신라의 9층 목탑의 형태를 연상시켜 줍니다. 탑의 높이에 대한 원근감도 정확하고 처마 끝의 풍경의 조각도 재미있습니다. (00:15:23)좌우 탑 사이에는 불상을 조각했으며, 그 아래에는 사자가 앞발을 들고 활동적인 자세를 한 조각을 했습니다. 동쪽의 바위에는 극락세계의 한 장면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조각했습니다. 위에는 여섯 천인이 옷자락을 하늘 높이 날리며 부처님을 찬양하고, 그 아래에는 승려가 부처님에게 향로를 바치고 있습니다. (00:16:06)또 한편에는 보리수나무 밑에서 수도하는 사람의 모습도 보입니다. 서쪽 바위는 면적이 좁아서 단 한 구의 불상이 조각돼 있으나 그 솜씨는 가장 훌륭합니다. 남쪽 바위에는 삼존불의 조각이 있는데 그 솜씨는 소잡합니다. 배에 손을 대고 있는 이 특이한 불상은 아기를 낳게 해주는 산신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00:16:52)남산리 부락의 삼층석탑을 보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칠불암에 도달합니다. 이 석가 삼존불은 신라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예부터 불상을 조각한 이유는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며 엎드려 절하는 대상으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00:17:18)그런 뜻에서 불상이란 바다와 같이 넓은 자비심과 하늘과 같이 높은 덕망을 가지며 거기에 또 누구라도 감히 범할 수 없는 위엄이 나타나도록 조각되어야 했습니다. 여기 세 불상은 그 모든 것이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다듬어진 걸작이라 하겠습니다. 삼존불 앞의 4면 돌기둥에 1미터 내외의 보살상이 조각돼 있습니다. 많이 마멸됐으나 조각의 솜씨가 치밀하고 불상의 얼굴에는 생기가 발랄해 보이는 우수한 작품들입니다. (00:18:22)칠불암 뒷산의 기암절벽을 따라 올라가면 멀리 토함산과 불국사가 보이는 절벽 바위에 유명한 반가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른발로 살짝 연꽃을 딛고 오른손에 꽃을 받쳐 든 변화가 많은 자세를 유창한 솜씨로 표현했습니다. (00:18:54)남산의 골짜기마다 메아리치던 남녀노소의 열렬한 염불 소리와 목탁 소리는 신라의 흥망과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작품들이 무심한 세월 속에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00:19:16)신라는 비록 중국 대륙을 통해서 불교와 예술을 받아들였으나 모방한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토대로 신라의 독특한 예술을 창조한 데 그 위대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훌륭한 작품들을 후세에 남기고도 자기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사라진 순박하고 거룩한 신라 예술가들의 영원한 명복을 그들이 남겨놓은 불상 앞에서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