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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종교

영상소개

  • 분야

    문화

  • 생산연도

    1977

  • 감독

    김기풍

  • 생산기관

    국립영화 제작소

  • 관리번호

    CEN0006968

  • 재생시간

    19분 11초

영상해설

  • 우리나라의 각종 종교활동과 이를 신봉하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수록(불교, 천주교, 기독교, 유교, 이슬람교, 천도교)

영상자막

  • (00:00:39)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단일 민족으로서 반만년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 온 한국인들은 대자연의 불가사의하고 신묘한 현상에 경탄해서 해와 달 그리고, 산천을 숭배했다. 그러한 것에 모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은 이 땅의 선조들은 그 앞에 경건히 제사를 지냈다. 이때 제사를 맡아보는 일을 무(巫)라 불렀고, 여기서 무속신앙이 발생했다.
    
    (00:01:38)그 후 4세기경부터 여러 외래 종교가 전파되어 왔으며, 신앙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오늘날에 있어 이들 외래 종교와 토착 신앙은 마찰 없이 공존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은 외래 종교를 받아들임에 있어 내세보다는 현세를 더 중히 여기는 전통적인 바탕 위에서 이를 흡수 소화하고 있다.
    
    (00:02:12)현재, 한국에는 200여 개의 종교단체에 7만여 명의 교직자들과 전체 국민의 74퍼센트에 해당하는 2,600만 명의 종교 인구가 자유로이 종교 활동을 하고 있다.
    
    (00:02:48)불교가 처음으로 한국에 전래된 것은 4세기 후반 중국대륙에서 승려가 불경과 불상을 가지고 고구려에 들어와 이불란사란 사찰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그 뒤 백제와 신라가 차례로 불교를 받아들였다. 백제의 불교는 일본에까지 전해졌고 신라는 불교를 호국의 신앙으로 삼아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이룩하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해서 고대 삼국을 통일했다.
    
    (00:03:29)뒤를 이은 고려왕조는 불교의 전성기였으며 이때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몽고(몽골)의 침략을 막으려는 기원으로 불교의 경전을 목판에 새긴 고려왕조의 자랑이다.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와 같은 고승들이 나와서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을 섬으로써 호국불교로서의 전통을 이어 왔다.
    
    (00:04:51)한국 불교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교리를 중요시하는 교종(敎宗)과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禪宗), 이 두 종파가 서로 화합한 통합적 정신에 있다. 신라 시대부터 많은 고승들의 이상이었던 이 두 종파 간의 화합은 1941년에 마침내 이루어져서 새 종명을 조계종이라 했다. 한국인의 정신에 불교만큼 오랜 기간에 걸쳐 깊은 영향을 준 종교는 없다.
    
    (00:05:43)특히 건축, 조각, 회화 등 국보라고 할 만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것은 거의가 불교문화의 소산인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크고 작은 7,000여 개의 사찰에 2만여 명의 승려 그리고, 전 한국민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200만 명의 신도를 가지고 민족 종교로서 발전하고 있다.
    
    (00:06:21)특히, 근래에 와서 많은 사찰이 도시로 나왔고, 일반 가정에까지 불상을 모시고 깊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 불교의 자랑은 호국불교라는 데 있다. 일선에서 국토방위의 사명을 띠고 있는 장병들은 부대 안에서 열리는 법회를 통해 오늘도 호국의 결의를 다진다.
    
    (00:07:13)해마다 음력 4월 초파일은 부처님 오신 날. 불교도들에겐 1년 중 가장 경사스러운 날이다. 전국 각 사찰을 비롯해서 많은 불교 단체들이 마련하는 갖가지 경축 행사에는 신도가 아닌 일반인들도 참석해서 뜻깊은 이날을 함께 기린다.
    
    (00:07:55)국가 공휴일이기도 한 이 날, 대광장에서는 수백만 명의 신도들이 모여 연합 봉축식을 갖는다. 한국의 불교도들은 신도 자신의 영달보다는 가정의 행복을, 그리고 가정의 행복보다는 나라의 번영과 평화를 더욱 간절히 염원하는 데 큰 특징이 있다.
    
    (00:08:36)한국의 유교는 삼국시대의 불교 전래와 거의 같은 때에 들어와서 고려 중엽부터 그 사상적 위치를 굳혔다. 14세기 말 유학파 혁명 세력에 의해 창건된 근세조선은 불교를 억제하고 유학을 장려하는 정책을 폄으로써 유교의 융성을 가져왔다.
    
    (00:08:59)이 당시 나라 안 전체에는 학문을 숭상하고 청빈(淸貧) 고결(高潔)하게 생활하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어 오늘날까지도 좋은 전통을 이루고 있다.
    
    (00:09:17)한국인의 예절과 가정의례는 모두 이때의 유교의 방식으로 정착됐으며, 오늘날 충효 사상의 근본도 이때에 확립된 것이다.
    
    (00:09:41)해마다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에는 문묘에서 공자를 제사 지내는 석전대제가 베풀어지며, 5월 첫째 일요일에는 종묘에서 근세조선 역대 임금들의 신주를 모시고 봉행하는 종묘대제가 열린다. 현재 한국의 유교 신도는 470만 명에 이른다.
    
    (00:10:27)한국의 고유 종교인 천도교는 기독교와 더불어 밀물처럼 들어오는 서학에 대응해서 유교와 불교, 선교를 융합한 교리로써, 지상천국을 이상으로 1860년에 시작됐다. 교조 최수운은 유학자 가문에서 태어나 당시의 어두운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에서 재래의 모든 종교들을 연구한 뒤 천도를 깨닫고 이를 일반에 전파한 것이다.
    
    (00:11:01)당시에 세태에 항거해 일어났던 동학란은 천도교의 신도들이 중심이 됐으며, 한국이 근대화에 눈뜨는 계기가 됐다. 또한, 3대 교주 손병희를 맞은 천도교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항거에서 독립을 선언한 1919년 3·1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민족 종교로서의 의식을 지니면서 꾸준히 교세를 확장해온 천도교는 현재 82만 명의 신도가 있다.
    
    (00:11:54)이슬람교가 처음 한국에 들어온 것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터키 부대의 한 종군 목사의 포교로부터 시작됐다. 한국인 기술자들의 중동 지방 진출을 계기로 교세의 확충이 눈에 띄는 한국 이슬람교는 현재 활발한 전교 활동을 펴고 있다.
    
    (00:12:31)기독교가 처음 한국에 들어온 것은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그라몽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귀국을 한 데서 시작됐다. 이 천주교는 선조에 대한 한국인들의 제사 관습을 우상숭배라 해서 금지했기 때문에 첫 수난을 받게 된다.
    
    (00:12:55)1896년 서교(西敎) 금압령(禁壓令)이 거두어지고 신교의 자유가 공포될 때까지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을 비롯해 많은 외국 선교사들이 순교했고, 수많은 신도들이 죽음을 당했다.
    
    (00:13:28)서울의 명동대성당에서 베풀어지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의 성성식이다. 교구장인 추기경을 보좌해서 서울대교구를 실질적으로 이끌어나갈 보좌주교가 새로 로마 교황으로부터 임명받아 그 성성식을 갖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에는 이날 식을 주례한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서 대주교가 세 분이 있다.
    
    (00:14:29)전국에 걸쳐 14개의 교구에 2,300개의 성당을 가지고 있는 천주교는 선교 초기부터 자선사업과 사회봉사 활동에 힘을 기울인 결과 폭넓은 신도들을 가지게 되어 현재 그 수가 1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00:15:07)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각국의 종교단체들이 선교사를 파견해서 활발한 전교 활동을 개시한 19세기 말부터였다.
    
    (00:15:40)1885년 한국 감리교의 개척자인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목사 부부와 한국 장로교를 개척한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목사가 처음으로 들어왔고, 그 뒤를 이어 호주 장로교회, 침례교, 미국 남장로 교회, 캐나다 장로회, 안식교, 성결교 등의 선교사들이 계속 한국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폈다.
    
    (00:16:08)1950년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 개신교는 현재 59개의 교단에 18,000여 개의 교회와 500만 명의 신도를 가지고 있어 한국에서 불교 다음으로 가장 큰 교세를 이루고 있다.
    
    (00:16:38)최전방에서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장병들이지만 그들의 불같은 신앙심은 군의 정신전력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그 밖에도 외롭고 병든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구원의 대상이고 안식처가 됐다.
    
    (00:16:57)한국의 기독교는 단지 교회 확대에만 힘쓴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 이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이 나라 젊은이들을 위해서 학교부터 세웠다. 여성 교육을 위해 건립된 많은 여학교들은 한국 여성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에 크게 공헌을 했다.
    
    (00:17:45)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성탄절을 맞이하는 한국의 교인들은 1년 중 가장 큰 기쁨 속에 축제의 기분에 쌓인다. 온통 사랑으로 충만된 거리는 신도가 사람들로 더욱 붐비며 그들은 가족과 벗들에게 선물을 하고 불우한 이웃에겐 사랑의 온정을 보낸다.
    
    (00:18:19)1977년 3월,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는 교파를 초월한 전 기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기원하는 나라를 위한 특별기도회가 열렸다. 한국의 종교는 국가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나, 특히 종교 말살을 획책하고 있는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대결에서는 모두 한마음이 되어 구국의 대열에 혼연히 참여한다.
    
    (00:18:49)나라를 위한 특별 기도회. 여기에 한국 종교에 거는 한국인들의 이상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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