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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산하

영상소개

  • 분야

    정치

  • 생산연도

    1980

  • 감독

    김성인

  • 생산기관

    국립영화제작소

  • 관리번호

    CEN0004981

  • 재생시간

    16분

영상해설

  • 분단국가로서의 현실과 평화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영화

영상자막

  • (00:16)강둑 위에 두 그림자. 손자 손목을 잡은 할아버지. 강바람에 나부끼는 흰 머리카락. 그 옆에 나란한 검은 머리카락.
    
    (00:38)할아버지 고향은 갈 수 없는 곳. 저 하늘 밑 무겁게만 보이는 저 하늘 밑에도 할아버지 못 잊어 하는 고향이 있단다.
    
    (01:03)눈썹까지 희여진 할아버지는 고향 얘길 들려주려 손자 손목 잡고 임진강 맞닿은 곳으로 찾아왔다. 아가야 너만은 믿어야 한다. 뻐꾸기가 울던 산에 머루 다래 있고 장마에는 맑은 내에 고기들이 올랐지. 종이배 띄우던 큰 내에 살얼음 끼고,
    
    (01:38)멀리 다듬이 소리에 해가 기울면 화롯가에 알밤 묻고 옛 얘기 소리에 밤은 깊었지. 마을과 산천에 흰 눈이 내려 덮여도 꿩 사냥, 토끼 사냥 즐겁기만 했단다.
    
    (02:00)그땐 저 너머에도 꿈이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02:08)회오리가 몰렸다. 먹구름이 끼었다. 폭풍이 불었다. 콩 튀듯한 총소리에 짐승들도 놀랐다.
    
    (02:24)이고 지고 고향을 떠났다. 고향을 버리는 길도 멀어서 사흘 밤, 사흘 낮을 눈 속에서 걸었지. 입김에 손 녹이며 마주 잡고 걸었지.
    
    (02:39)눈 속에 쓰러진 이 얼마나 보았던가. 그래도 살길 찾아 걷고 걸었지. 아가야 너만은 알아야 한다. 할아버지처럼 고향을 그리지 않게. 언 강을 건너서 건너오지 않도록.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도록. 이렇게 빈 강뚝 위에 앉아서 강 건너 먼 산을 바라보지 않도록. 미움과 그리움이 섞이지 않도록. 아가야, 너만은 알아야 한다.
    
    (03:17)밀리고 걸어서, 양지바른 산기슭에 터를 잡았지.
    
    (03:24)외 엮고 진흙 발라 오두막을 짓고,
    
    (03:28)밭 갈고 곡식 심어 세월 보내며 두고 온 고향을 잊으려 했단다.
    
    (03:46)그러나 네가 자라서 이렇게 크도록 하루도 고향을 잊은 날이 없단다. 사람에게 고향이란 뭐란 말인가.
    
    (07:28)너의 삼촌 흙이 되어 저기쯤, 여기쯤 강기슭에 누웠단다. 민들레 몇 송이 금빛으로 피어서 젊은 몸이 흙이 되어 못다 한 말 피어서, 너의 삼촌 목소리 강기슭을 달리지.
    
    (08:05)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08:20)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08:40)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대.
    
    (08:50)내 머리엔 깨지지 않는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혼이 소리쳐 달리었노라.
    
    (09:14)산과 골짜기. 무덤과 가시숲을 강감찬과 같이, 을지문덕과 같이, 이순신과 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가며 싸웠노라.
    
    (09:41)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더 머나먼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 같이 뻗어가고 싶었노라. 
    
    (09:54)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10:17)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10:45)내게는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11:18)내 청춘은 봉오리 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나니.
    
    (11:39)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날으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11:57)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12:07)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하늘 아래서 내 소녀를 만나거든 내 마음을 일러다오.
    
    (12:24)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오.
    
    (12:40)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12:54)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다오.
    
    (13:06)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질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13:25)삼촌은 고향에서 동그랗고 하얀 차돌 한 개를 늘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렸다.
    
    (13:44)동글고 하얗고 차가웠으나 삼촌의 따스한 주먹 안에선 숨결이 피 돌듯 스며들었지. 삼촌 마음이 말갛게 배어들었지. 그게 삼촌에게 왜 소중한지를 아무도, 아무도 알 수 없었지. 누가 그것을 건네준 것인지. 그건 삼촌 혼자만이 알던 비밀.
    
    (15:15)아가야, 너만은 알아야 한다. 할아버지처럼 고향을 그리지 않게 언 강을 건너서 건너오지 않도록.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도록. 미움과 그리움이 섞이지 않도록. 아가야, 너만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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