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83
김항원
국립영화제작소
CEN0005793
18분 23초
(00:18)두 사람의 장사가 모래판 위에 어우러진다. 모래를 딛고 선 다리는 고목의 뿌리처럼 우람하고 샅바를 거머쥔 손과 팔에서는 힘줄이 펄떡인다. (00:33)널찍한 등판에서는 땀이 솟아 흐르고 푸짐한 뱃집은 가쁜 숨을 고르느라 펄럭인다. 육중한 두 몸이 밀착된 채, 잠시 정중동의 시각이 흐른다. (00:57)두 몸이 비호처럼 요동치는 순간 고목의 뿌리가 뽑히듯 모래를 차올린다. (01:13)이윽고 한 쪽이 넘어진다. 씨름의 승부는 이렇게 가름 난다. (01:37)씨름. 한국 사람들에게 이 소리만큼 옛 고향의 정취를 물씬 풍겨주는 말도 드물다. (01:48)한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소년 시절 강가 모래사장이나 언덕의 풀밭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씨름을 하고 논 추억이 있다. (02:10)힘과 기를 겨루는 씨름. 이 씨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옛 그림이나 문헌에 따르면 4세기경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02:37)한국의 명절인 단오나 추석에는 고을마다 씨름판이 열려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즐기고 화합하는 한마당이 되어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그러기에 씨름은 민중의 얼과 애환이 살아 숨 쉬는 한국 고유의 문화며 찬란한 전통인 것이다. (03:00)씨름 경기에는 샅바라는 4미터(m)정도의 광목천이 필요하며 이것은 청색과 홍색으로 상대를 구분해 준다. (03:14)두 선수가 무릎을 꿇고 앉아 상대방의 샅바를 잡는데 허리샅바는 늑골 측면, 다리샅바는 대퇴부 측면을 잡는다. (03:28)씨름의 기술은 약 45가지가 있으나 크게 나누어 허리기술, 다리기술, 손기술, 연결 동작을 구사하는 연합기술, 역습에 되치기 기술 등 5가지로 요약된다. (03:55)현재 한국에는 50여 개 씨름단체에 1,000여 명에 이르는 씨름선수들이 있다. (04:15)시합을 앞둔 씨름인들에게는 피나는 훈련이 있을 뿐이다. (04:24)단체마다 훈련 방법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체력과 기술, 불굴의 투지와 정확한 판단력을 기르고 신체의 조화 있는 발달을 이룩해서 우승의 영광을 안으려는 뜻은 다를 바 없다. (05:02)천하장사의 꿈을 실현하고 그 명예를 지키는 길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뿐이다. (05:44)뼈를 깎는 육체적 훈련에서 오는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장사는 참선에 든다. 정은 동을 낳는 근본이기에, 보다 더한 힘을 마음의 평정에서 얻기 위함이다. (06:11)아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합장이 경건하다. (06:37)해마다 봄가을 두 번에 걸쳐 한국 제일의 씨름인을 가리는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열린다. (06:49)씨름에 대한 열기와 흥겨움이 장내에 가득하고 국민들의 관심 또한 씨름판에 집중된다. (07:01)화려한 입장식에 이은 농악과 사자놀이가 경기장 분위기를 한층 화려하게 장식한다. (07:20)지름 9미터(m)의 둥근 씨름판. 여기에는 두께 50센티미터(cm) 이상의 모래가 깔려있으며 주심 1명, 부심 2명이 경기를 운영한다. (07:38)씨름의 체급은 한국 명산의 이름을 딴 태백, 금강, 한라, 백두 등 4체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체급별 대전은 3판 2승제이며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08:05)이것은 체중 75킬로그램(kg) 이하의 태백장사 결승전 실황이다. (08:31)75.1킬로그램(kg)에서 85킬로그램(kg)까지의 금강장사급의 결승전. 어느 체급을 막론하고 숱한 난적을 물리치고 올라온 장사들이다. (09:19)85.1킬로그램(kg)에서 95킬로그램(kg)까지의 한라장사 결승전. 기록은 언제나 깨지기 마련이며 정상은 언젠가는 빼앗기기 마련이다. (09:22)3연패 영광을 누렸던 최욱진 선수가 약관 20세 이만기 선수에게 타이틀을 넘겨주고 말았다. (09:54)최중량급 95.1킬로그램(kg)이상의 백두장사급 결승전이다. (10:27)백두장사 타이틀을 3번이나 지켜온 이준희 장사가 또 승리함으로써 4연패의 영광을 안았다. (10:40)체급별 우승자가 가려졌다. 늠름한 장사들에 시위에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온다. 말 그대로 즐거움과 화합의 한 장면이다. (11:02)씨름대회 꽃은 천하장사의 탄생이다. 천사장사는 제일의 씨름인을 말한다. 체급에 관계없이 승부를 결정짓는다. (11:17)이 역시 3판 2승제. 내로라하는 장사들이 준결승에서 만났다. 여기서 이기는 자가 결승전에 오른다. 단신의 주옥진 장사와 거구 홍현욱 장사의 대결. (11:51)서로의 거친 숨결이 어깨에 와닿고 심장이 고동이 서로의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진다. (12:04)2:0으로 홍현욱 장사가 승리, 결승전의 출전권을 따냈다. (12:20)이어 장신 이준희 장사와 춘계대회 천하장사 이만기 장사의 대결이다. (13:27)1대 1의 전적에서 누가 결승전에 진출할 것인가.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이다. (13:55)국내 명창들이 승자에게 축가를 보낸다. (14:06)드디어 결승전. 26세의 홍현욱 장사. (14:24)약관 20세의 이만기 장사. (14:34)천하장사 결승전은 5판 3승제. 먼저 3판을 따내야 한다. (14:45)긴장과 흥분의 순간이 흐른다. (15:15)첫 판과 둘째 판은 이만기 장사의 승리. 2패의 기록을 안은 홍현욱 장사는 셋째 판을 질 수 없다. (15:39)홍현욱 장사는 일단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16:00)2승 1패. 동률이 되느냐 천하장사가 결정되느냐의 순간이다. (17:03)이만기 장사는 춘계대회에 이어 또 우승, 천하장사의 명예를 지켰다. 감격 또 감격. 승리를 쟁취한 감격의 눈물이 씨름인의 얼굴을 적신다. (17:24)먼저 넘어지면 지는 너무나 단조로운 이 경기에 모두가 매료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씨름에 승패에는 군말이 없다. 흥분하되 과격함도 없다. 둔해 보이면서도 순간에 쏟는 씨름인의 지략과 변화무쌍한 기술. 소박하면서도 믿음직스러운 씨름인의 기상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씨름은 태권도와 더불어 한국민의 마음속에 깊숙이 뿌리내려온 전통적인 스포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