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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벗 터키

영상소개

  • 분야

    정치

  • 생산연도

    1958

  • 감독

    양종해

  • 생산기관

    공보실 선전국 영화과

  • 관리번호

    CEN0002145

  • 재생시간

    10분 03초

영상해설

  • 한국전에 참전한 터키군에 대한 영상기록이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터키 군인들의 묘, 이승만 대통령 터키 부대 방문 시 의장대 사열, 터키 군인들의 훈련모습, 한국의 고궁과 박물관을 관람하는 군인들, 한국-터키 국제친선의 밤 행사에서 공연하는 군인들 모습을 담고 있다.

영상자막

  • (00:01)한국의 6.25동란은 분명히 일류의 행복과 번영에 반역하여 자유와 평화를 유린하는 공산주의 만행에 대한 인간의 투쟁이었으며, 자유우방들이 단결한 유엔 십자군의 정의의 진격이었습니다.
    4283년의 6월 25일 새벽. 38선 전역에 걸친 공산도배들의 불법남침.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처참한 포성과 함께 물밀듯이 몰려오는 공산 괴뢰군 앞에 우리 국군들은 적수공권(赤手空拳) 용감히 싸웠으나 수(數)와 장비의 부족으로 부득이 서울을 빼앗기고 수많은 피난민과 함께 남으로 물러나지 않을 수가 없게 됐던 것입니다.
    
    (01:17)이렇게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대통령께서는 공산도배들의 만행을 국제여론에 호소했으며 반공투쟁을 진두지휘하셨습니다. 
    국제여론은 드디어 6월 27일 유엔으로 하여금 북한 공산도배에게 군사제재를 가하게 했으며 용장 맥아더 장군을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던 것입니다. 유엔의 결의가 전 세계에 호소되자 자유우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물심양면의 지대한 성원이 쇄도하였으며 또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우방 16개국이 용약(勇躍) 한국전선에 참전했던 것입니다.
    
    (01:50)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유엔군의 총반격전이 시작되어서 압록강 국경선까지 이르러 조국의 통일을 목전에 둔 순간 뜻하지 않은 중공군이 개입하게 되어 전세는 다시 반전되자 이때 자유우방의 토이기(터키)군 부대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용약 한국동란에 참전했던 것입니다.
    토이기 용사들의 용감한 전투와 혁혁한 공훈을 우리는 잊을 수 없으며 특히 저 유명한 구로리 전투는 한국사상 만이 아니라 세계 반공투쟁사상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02:45)이렇게 유엔군의 총반격이 다시 시작되어 공산도배들이 다시금 전멸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자 가증하게도 공산측은 유엔소련대표 말리크로 하여금 휴전안을 제의케 했습니다. 만 2년 동안 일면회담 일면전쟁의 한국동란은 수백만의 동포와 수많은 우방용사와 수천억의 재산의 손실과 그리고 통일 없는 휴전의 아우성치는 민의를 무시하고 휴전은 성립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03:14)여기 자유의 벗 토이기 영령들이 이억만 리 한국 강산에 수많은 자유우방의 영령들과 함께 잠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훈에 우리들이 보답하는 길은 한 송이의 헌화보다 오로지 영원한 자유와 정의의 승리인 멸공의 길일 것입니다.
    6.25동란을 통해서 더욱 굳은 국교를 맺게 된 한·토 양국. 많은 토이기 장성들이 경무대(景武臺)로 이 대통령을 예방. 대통령께서는 이들을 반가이 맞이하시고 언제나 그들의 공훈과 노고를 치하 격려하셨습니다.
    또한 국방부에서는 토이기 제6여단장 올부제뷔드 준장에게 공로훈장을 수여하는 등 상호의 친선을 더욱 도모했습니다.
    
    (04:09)한편 지난 10월 11일, 초대 주한 토이기대사 카밀 이들 씨의 신임장 제정식이 경무대 관저에서 전 국무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습니다. 이날 이 대통령께서는 한국과 토이기 외교관계 수립은 자유세계에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새로이 주한 제8토이기여단장으로 부임하게 된 라심 아타칸 준장이 이들(카밀 이들) 대사와 김 국방부장관의 안내로 신임 인사차 경무대 관저로 이 대통령을 예방했습니다.
    
    (04:52)이 대통령께서는 주한 토이기부대를 친히 시찰하시고 그들의 공훈을 높이 치하하시는 한편 그들을 위로 격려하셨습니다.
    현재의 주한 토이기부대는 제8토이기여단으로 라심 아타칸 준장을 여단장으로 매일같이 내일의 전투를 위해서 맹렬한 훈련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6.25동란이 일어나던 4283년 10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이래 오늘날까지 토이기군은 8개 여단이 거쳐 갔으며 800명의 귀중한 자유의 영령들을 한국 강산에 묻었습니다.
    지금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있는 이 토이기 용사들은 ‘멸공만이 우리들이 살길이다’는 공동 이념 밑에 언제든지 반공전선에서 우리와 함께 싸울 수 있는 자유의 벗들입니다.
    
    (06:52)훈련이 끝나고 주말이 오면 즐거운 식사보다 이들에게는 한국의 고적(古蹟)과 문화 등 이모저모를 구경하는 것이 더욱 즐거운 것입니다.
    이리하여 매주 주말이 되면 그들은 한국의 이모저모를 찾아 거리로 고궁으로 한국의 풍속 속에 하루를 즐깁니다. 이곳 덕수궁에 찾아온 토이기 용사들은 우아한 건축양식과 여러 가지로 우리나라의 특유(特有)한 문화, 풍속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합니다.
    덕수궁을 거쳐 중앙청을 구경하고 다시 비원을 찾아 발을 옮겼습니다. 조용한 정원이라든지 웅대한 고궁들은 모두 이들에게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비원을 구경하고 난 이들은 반공회관에 들렀습니다. 16개 참전국의 깃발, 맥아더 장군의 동상 등 이들은 반공의식을 다시금 새로이 했습니다. 또한 토이기 용사들은 남산공원에 있는 위대한 반공 지도자 이 대통령의 동상을 참관했습니다.
    
    (08:34)한편 코리아하우스에서는 주한 토이기 용사들을 초대한 가운데 한국의 고전음악과 무용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또한 중앙청 야외음악당에서는 한국과 토이기의 국제적인 친선을 도모하고 상호간의 문화의 교류를 위해서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와 주한 토이기여단의 공동주최로 ‘한국 토이기의 밤’을 개최해서 대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수만 시민이 입추의 여지없이 모여든 가운데 토이기의 용사들은 그들의 민속무용과 민요 등 다채로운 순서로서 한국과 토이기의 친선과 우의를 더욱 굳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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