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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선

영상소개

  • 분야

    사회

  • 생산연도

    1957

  • 감독

    이형표

  • 생산기관

    공보실 선전국 영화과

  • 관리번호

    CEN0002051

  • 재생시간

    13분 10초

영상해설

  • 우편선을 따라가면서 남해 일대를 보여주는 영상기록이다. 남해일대와 항구로 가는 편지를 배달하면서 한산도의 충무사당, 다도해의 등대, 남해일대 어부들의 고기잡이와 농사짓는 모습, 평화선을 지키는 해군 함대, 소록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상자막

  • (00:01)이것은 여러분이 쓴 편지입니다. 이곳 서울 중앙우체국을 통해서 하루에 약 25만장의 편지가 가지각색의 소식을 싣고 국내외로 드나드는 것입니다. 
    이 편지들은 우체국 사람들의 재빠른 솜씨로 각 지역별로 나누어져서 지체 없이 기차편이나 항공편으로 목적지로 발송됩니다. 
    한편 우리나라 남해 일대에 산재하고 있는 섬들과 항구로 가는 편지는 선편을 이용해서 발송됩니다. 매일아침 부산(釜山)부두(埠頭)에는 남해안(南海岸) 다도해(多島海)로 향하는 연락선(連絡船)이 육지(陸地)의 여러 곳에서 모여드는 우편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연락선은 우편물 뿐만 아니라 여객(旅客)과 화물(貨物)도 취급(取扱)합니다만 우편물을 맡아보는 우체부는 이 배를 우편선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01:35)우편낭의 선적이 끝나면 우편선은 부산항(釜山港)을 떠납니다. 
    이 우편선의 항로는 언제나 육지나 섬 사이를 끼고 도는 근해(近海) 항로(航路)입니다만 해수와 강물이 교차되는 낙동강(洛東江) 하류(下流)에 오면 거센 파도로 항해가 위험(危險)할 때도 있습니다. 
    우편선이 부산을 떠난 지 약 4시간 후면 낙동강 하류를 지나서 6.25사변 당시 포로수용소가 있던 거제도를 거쳐서 통영(統營)앞바다로 나섭니다. 
    아담한 섬들이 자리 잡은 이 통영 거제도 사이의 바다일대는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연안(沿岸)의 풍경(風景)을 보여주며 때로는 마치 고요한 호수 위를 달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03:03)이곳은 지금으로부터 약 360년 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께서 거북선을 만들어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던 왜적(倭敵)들을 전멸시킨 유명한 싸움터입니다. 
    지금도 이 한산도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국 정신을 길이 받들기 위한 충무사당이 건립되어 바다를 지키는 이 땅의 상징으로 되어 있습니다. 
    
    (03:40)우편선은 조그마한 어촌에도 귀항합니다. 우편선이 어촌(漁村)앞바다에 들어서면 작은 배가 마중 나옵니다. 매일 찾아오는 이 우편선의 우체부는 그들에게는 반가운 친구의 한사람입니다. 
    이곳에 내려질 우편물을 다 내린 다음에 우편선은 다시 다른 항구와 섬을 향해서 떠나갑니다. 
    우편선이 매일 지나다니는 이 남해바다는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로써 둘러싸여 가는 곳마다 물결은 잔잔하고 해안에는 여기저기 이곳의 독특(獨特)한 고기잡이 망이 놓여 있으며 전복과 해조(海藻)를 따는 해녀들도 보입니다. 
    항구가 가까워지면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섬 위에 등대가 보입니다. 이 다도해를 지나는 선박들에게는 어두운 밤이나 안개가 짙은 날 항로를 알려주는 이 등대들은 고마운 벗입니다. 
    
    (05:04)우편선은 여수(麗水)항에 들어섭니다. 여수는 이 우편선의 큰 귀항지의 하나이며 남해일대의 중심이 되는 큰 항구입니다. 
    남해 연안의 가장 독특한 것은 수만 평에 달하는 간사지입니다. 간만의 차가 많은 이 간사지는 굴과 김의 양식장으로 앞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연간 500만석이 생산되는 김은 막대한 외화를 획득하고 있습니다. 
    수심이 200미터를 넘지 않는 다도해는 이름난 어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 저기 고기잡이배들을 바라보면서 우편선은 다음 귀항지로 향합니다. 
    이곳 남해 일대의 어촌에서는 어로(漁撈)도 하는 한편 농사도 돌보아야 합니다. 
    
    (06:26)이른 아침이면 고기잡이 준비로 어촌은 분망(奔忙)해집니다. 어망(漁網)을 싣고 출어준비가 끝난 어선들은 어장을 향해 떠나갑니다. 
    마을에 남은 늙은 어부들은 낡은 어망을 고치면서 고기잡이 나간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한편 어선과 어부가 부족한 우리 어촌에서는 어선을 새로 만들기도 하며 수리하기도 합니다. 고기잡이로 바다에서 밤을 새운 어선들은 이른 아침이면 항구를 찾아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고기잡이배들이 돌아오면 어물시장이 가지각색의 고기와 해산물 등으로 흥성(興盛)댑니다. 
    또한 풍어(豐漁)기가 다가오면 어촌의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은 고기 말리기에 한종일을 보냅니다. 
    아침의 큰일을 치른 어촌이 다시 한가해 지면 낯익은 우체부가 우편선이 싣고 온 소식을 배달하기 시작합니다. 
    
    (08:27)우편선은 갈 길을 서둘면서 다시 바다로 나섭니다. 등대(燈臺)수와 갈매기때 만이 사는 호도를 지나 고기잡이배들이 떠도는 외해(外海)로 나서면 갈치, 준치, 도미, 멸치 등 여러 가지 고기가 많이 잡히는 남해 어장을 통과(通過)하게 됩니다. 
    시절(時節)에 따라 주로 대형(大型)의 기동(機動)선들이 떼를 지어 세계에서도 이름 높은 한국 연안의 어장(漁場)에서 바다의 재화(財貨)를 수확(收穫)합니다. 때마침 갈치 잡이 때라 당겨 올리는 어망 속에는 은빛도 찬란한 갈치 떼가 펄떡입니다. 
    이렇게 갈치의 풍어(豐漁)기(期)를 맞이한 이곳 어장에서는 밤낮의 구별도 없이 갈치 잡이가 한창입니다. 
    
    (10:04)한편 평화선을 지키는 우리의 해군 경비정은 (남해 일대를 순회(巡廻)하면서 우리 어민들을 보호하고  외래의 불법어로를 적발합니다. 바다의 일기는 항상 좋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풍랑이) 심해 선박들의 항해가 곤란(困難)할 때도 있습니다. 
    우편선이 여수를 떠난 지 약 3시간 후이면 고흥(高興)반도(半島)의 남단을 돌아서 녹동항에 도착(倒着)합니다. 이 녹동항은 우리나라 나병 환자 갱생원이 자리 잡고 있는 소록도의 관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소록도로 가는 우편물은 작은 배에 실려서 600미터 바다건너에 있는 소록도 우체국에 배달(配達)됩니다.
    소록도는 총 평수 약 백오십만 평의 섬으로 40년 전 치료(治療)와 격리를 위한 갱생(更生)원이 자리 잡은 곳입니다. 현재 약 6천여 명의 환자(患者)들이 수용(收容)되어 있는데 이곳은 마치 하나의 섬나라 모양(模樣)으로 치료를 위한 병사(病舍)는 물론 공회당, 교회를 비롯해서 환자를 위한 교육시설, 그 밖에도 벽돌공장, 목공 등 각종 수공업의 작업장(作業場)과 보육원 등의 시설이 있어서 자주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불행한 나병으로 호도에서 요양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 가족들이나 친지들로부터 편지를 받는 것은 그지없이 반갑고 행복(幸福)한 때입니다. 
    
    (12:27)이렇게 남해의 섬사람들에게 다 배달되고 나면 우편선의 일과는 끝납니다만 돌아올 때에는 다시 이곳 섬들과 항구의 소식을 싣고 갑니다. 더운 날이나 추운 날이나 한날같이 되풀이되는 우편선의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되돌아가기가 바쁠 무렵이면 어느덧 다도해 수평선 멀리 저녁노을이 붉게 타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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