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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진 10년 : 교육, 문화, 국방

영상소개

  • 분야

    사회

  • 생산연도

    1958

  • 감독

    강래식

  • 생산기관

    공보실 선전국 영화과

  • 관리번호

    CEN0002130

  • 재생시간

    07분 55초

영상해설

  • 정부수립 10주년을 기하여 제작된 교육, 문화, 국방 분야 관련 영상기록이다. 교육 분야에서는 의무교육완성 6개년계획이 수립되고, 학생 및 학교수가 증가되었다. 문화 분야에서는 종일 방송 실시, 동남아 예술 사절단 파견, 텔레비전 방송국 설립, 극장 시설 향상,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 준공 등의 성과를 이루었다. 국방 분야에서는 정부수립 후 육군 600명으로 발족한 이래, 군사력은 100만 대군으로 자유세계 3위로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되었다.

영상자막

  • (00:01)한편 문교행정을 살피면은 4283년 2월 1일부터 국민학교 6년간의 의무교육을 실시하려 했던바 6.25 사변으로 일시 중단될 위기에 있었으나 우리 겨레의 교육열은 사변 중의 어려운 가운데서도 꾸준히 그것을 발전시켜 오늘날 의무교육 완성 6개년 계획도 최종 단계에 이르러 정부 수립 10년 동안에 해를 따라 향상된 국민, 중등, 고등, 대학의 학생수는 6.25 당시의 배로 증가했으며 지난해인 4290년에는 4,005,600명으로 8.15 해방 당시의 약 삼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정부 수립 당시의 고등교육기관 총 수는 불과 42개 학교에 학생 총 수는 약 24,000명이었던 것이 올해 와서는 78개 대학교에 학생 총수는 90,000명을 초과하는 실로 장족의 발전을 이룩해놓았습니다. 
    
    (01:00)이와 같은 교육의 보급과 국민 생활의 안정은 국민의 예술 창작 활동을 자극해서 정부 수립 이래 10년간의 음악, 미술, 영화 등의 예술계의 성장과 발전은 눈부신 바가 있으니, 해마다 열리는 국전은 갈수록 그 질을 높여서 지금은 국제 수준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외국의 전문가들도 칭찬하고 있습니다. 
    
    (01:27)한편 방송 사업은 근년에 들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중요한 사업의 하납니다. 우리의 방송이 전세계를 향해서 무한히 퍼져나가는 방송 문화의 전당인 방송국이 남산 일각에 건립됐습니다. 중앙공보관을 비롯한 수많은 선전 사업과 더불어 우리의 방송은 나날이 그 모습을 쇄신해서 4290년 6월 1일을 기해 획기적인 종일 방송을 실시하는 동시에 방송 내용을 대폭 개선 확충하고 이중 방송으로서 대외 방송과 중계 방송 등을 실시하여 명실공히 방송 문화 앙양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해서 명랑하고도 건강한 국민 생활을 이룩하는데 많은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02:07)이와 같이 문화 향상을 위한 꾸준한 노력은 드디어 동남아 예술사절단의 파견으로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우리 예술의 사도들은 동남아시아 반공 국가를 순방하면서 한국 고유의 민속 예술을 널리 소개하여 그들을 놀라게 했으며 아울러 국위를 높이 선양했습니다. 이들 일행은 열대 지방의 독특한 풍취를 찾아 야자수 우거진 월남공화국의 수도 사이공에서 공연과 전시를 가졌으며, 이어서 필리핀 수도 마니라(마닐라)로, 그리고 부처님으로 유명한 불교의 나라 태국 수도 방코크(방콕), 동양의 관문이라고 불리우며 중국의 정서가 넘쳐나는 장크의 항구 홍콩으로, 그리고 자유중국, 오키나와를 거쳐서 동남아시아 반공국가 간을 순방하며 우리의 민속예술을 통한 친선을 두 번에 걸쳐서 도모한 바 있습니다. 
    
    (03:16)현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첨단을 가는 시대의 총화 텔레비전 방송이 우리나라에서도 방송되고 있습니다. 70피트의 안테나가 옥상 높이 솟아 있는 텔레비전 방송국이 종로 네거리에 자리잡고 재미있는 텔레비전 방송은 우리들의 손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여기서도 약진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03:51)또한 극장 시설도 나날이 향상되어 연극과 영화로 국민의 문화 수준 향상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공보실에서는 재한 외국인을 위해서 한국의 집을 만들어 그들에게 이용시킴으로써 우리나라 문화를 소개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04:09)부흥 재건은 가는 곳마다 힘찬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한때 폐허화했던 이 나라를 다시 옥토화하고 도심 지대에는 고층 건물의 건설 작업이 나날이 그 수효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관문이며 수만 서울 시민들이 매일 이용하게 되는 한강 인도교도 6.25 동란으로 파괴됐던 것이 총공사비 12억 환으로 복구공사가 활발히 진척돼서 4291년 5월 15일, 파괴된 지 7년 10개월 17일만에 새 모습으로 단장됐습니다. 
    
    (05:08)6.25 동란으로 입은 전화는 이 강토를 초토화 해버렸으나 우방의 열성적인 원조와 관민의 분발로 전란으로 입은 상처는 깨끗하게 완치되어 선진국가의 도심지대를 방불케 할 만큼 아름다운 건물이 즐비하게 복구되고 해방 전 900,000의 서울 인구가 오늘에는 1,600,000으로 증가됐고 거리를 달리는 각종 차량이나 사람들의 옷차림도 다른 선진국과 그것에 손색이 없게 됐습니다.
    
    (05:39)한편 군사 면에 있어서는 4279년 국방경비대로 발족했다가 4281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자 국토방위의 중책을 지니고 육군 600명으로써 국군의 발족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요람으로 해서 다난한 길을 더듬으며 우리 국군은 한 걸음 한 걸음 증강의 길을 걸어 삼팔선의 경비와 국내에서 대한민국의 붕괴를 획책하는 적색 공산분자들의 준동을 진압하고 그 맡은 바 중책을 다하여 국토방위에 이바지했으며 6.25동란 당시는 싸울 무기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하고 맨 주먹으로 공산군과 분투하면서 연마된 우리 국군은 오늘날에 와서는 100만 대군의 위엄을 자랑하며 자유세계 세 번째로 강한 군대로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을 보게 됐습니다.
    
    (07:02)생각하면 탱크 한대 갖지 못했던 6.25 당시 오늘과 같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고사포와 어네스트존 로케트포, 원자포 등 신예무기가 있었던들 우리들의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놈들에게 유린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광복 13주년과 정부수립 10돌을 맞이하면서 지난날 우리들의 생생한 가지가지의 고난과 시련은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벅찬 일들이었으나 위로 위대하신 영도자 이대통령 각하를 모시고 관민일치단결하여 모든 난관과 애로를 극복하여 오늘날 대한국의 공고한 터전을 닦았으니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엔 희망과 광명이 깃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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