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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대건축

영상소개

  • 분야

    문화

  • 생산연도

    1957

  • 감독

    김광이

  • 생산기관

    공보실 선전국 영화과

  • 관리번호

    CEN0002060

  • 재생시간

    19분 14초

영상해설

  • 한국의 고대건축예술의 아름다움과 의의를 설명하는 영상기록이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궁궐, 부석사, 수덕사, 해인사 등 사찰, 다보탑, 석가탑, 익산 미륵사탑 등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상자막

  • (00:01)딸 : 아버지, 이상해요 저 상다리 모양이 어떻게 보면 버선코 같아요.
    아버지 : 어, 좋은데 착안(着眼)했다. 옛 사람들의 고운 솜씨는 아직도 우리들 곁에 많이 남아있지.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잘 조화된 우아한 곡선 같은 것은 옛사람들의 훌륭한 솜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단다.
    아들 : 그럼 이러한 것을 만든 목수들은 집도 잘 지었겠군요.
    아버지 : 암 집도 잘 지었지.
    딸 : 그럼 옛날 사람들이 지은 집들이 지금도 남아있나요?
    아버지 : 음 아주 옛날 것은 불에 타 버리고 썩고 해서 이제는 찾아 볼 길이 없다.
    어머니 : 그래도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역사적 유물 같은 것은 많이 남아 있잖아요?
    아버지 : 남아있지. 책을 보고 설명하지. 
    
    (01:19)아버지 : 수천 년 전의 것은 없고 있다는 것은 평양부근의 고적들이 있는데 이 낙랑문화를 이어받은 삼국시대의 것은 우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적들이란다. 자 그럼 먼저 낙랑시대의 유물을 볼까? 이것은 평안남도 용강군에 있는 고분 쌍영총이란다. 내부의 구조가 아주 웅대하고 그 속 벽에는 당시의 풍속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훌륭한 벽화가 그려져 있단다. 그 중에도 강서군 우현리에 있는 고분 중에서 대묘 속 돌벽에 그려져 있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신수(神獸)의 그림이 으뜸가는 것으로서 그때의 예술가들의 높은 기상과 넘쳐나는 박력을 느낄 수 있단다. 
    
    (02:19)그러나 신라나 백제의 것은 잘 조화가 되어서 부드러운 온화한 멋을 주는데 이 삼국시대의 건물들은 임진왜란 같은 병란을 겪는 동안에 모두 다 불타 없어졌고 지금 남은 것은 석조 건물들이 있을 뿐이다. 그 중에서 오래 된 것으로는 약 1500년 전에 건립한 전라북도 익산에 미륵사탑인데 지금은 거의 무너지고 일각만 남아 있어 옛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을 뿐이란다. 
    
    (02:56)이 백제탑은 부여 정림사 옛 자리에 있는 5층 석탑인데 약 1300년 전에 건립된 것으로 단 위에 첩첩이 쌓아 올린 지붕 위에 날아갈 듯 한 경쾌한 선과 균형으로 이름난 것이야. 이때 우리나라 건축 양식이 불교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이 자랑하는 비조시대의 건축문화의 기반은 바로 백제 사람들의 손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03:25)그 후 삼국을 통일한 신라시대의 많은 누각들이 건조되었는데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동양 최초의 천문대인 첨성대란다. 이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때에 건립된 것으로서 높이가 약 30척이나 되는 이 석조물 위에서 당시의 천문학자들이 밤하늘의 별을 관측했단다. 이것은 경주에 있는 분황사 모전탑인데 역시 선덕여왕 3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부 전(塼)모양의 소안산암재(小安山岩材)로 쌓아서 아홉 층이었던 것이 지금은 삼 층만 남아있는데 아래층 사면의 소리 없이 열리는 돌문 좌우에는 인왕상이 조각되어 있고 단상 네귀에는 옹위(擁衛)한 돌사자가 자리잡고 있지.
    
    (04:27)통일 이후에 신라는 멀리 서양의 희랍(希臘), 인도 그리고 당나라 예술의 영향을 받았으나 정치적 독립에 의한 강렬한 자주성에 따라 이 외래의 양식을 잘 소화해서 신라 독특한 예술을 더욱 살찌게 하고 빛나게 해서 조형 예술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던 것이란다. 
    신라시대 당시의 서울인 경주를 중심으로 각지에 빽빽이 들어섰던 건물들은 거의 다 없어졌지만 임해전이 있었다는 안압지, 그리고 곡수의 연을 베풀었던 포석정 이러한 옛 자리에서 신라전성기에 호화롭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다.
    
    (05:15)불국사는 지금부터 1300년 전 경덕왕의 재상으로 있던 김대성 씨가 건립한 것인데 이천 간이 넘는 거찰이었으나 목조건물은 임진왜란 때 전부 타 없어지고 현재는 동쪽 자하문으로 올라가는 청운교와 백운교. 이 두 구름다리와 서쪽 안양문 앞에 있는 칠보교 뿐이다. 자하문 동쪽에는 다보탑이 서있고 서쪽에는 석가탑이 마주서 있지. 영수야! 자 이 다보탑을 봐라, 이 다보탑은 경덕왕 10년 그러니까 1200년 전에 건립한 것인데 실로 한국 석탑 중에서 걸출된 것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란다. 돌로 된 이 탑은 마치 나무로 조각한 듯한 우아한 형태와 정교한 솜씨야 말로 변화무쌍한 극치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으니 영숙아! 그러니 천년전의 신라시대의 예술을 높이 평가해야하지 않니? 이 석가탑은 같은 시대의 것으로 무영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수법은 다보탑과 달라서 간소하고 직선적이어서 다보탑이 여성적이라면 이 석가탑은 남성적인 기상을 가졌다고 할까? 이 두 탑이야 말로 신라 건축의 최고봉이라 할 것이다. 
    
    (07:00)자 그럼 이번엔 석굴암을 보자. 불국사 뒷산 기슭에 자리 잡은 석굴암도 역시 재상 김대성의 축조로 화강석의 석굴인데 그 위에 흙을 덮어서 자연의 석굴과 같이 보이지 않니? 네모진 전실과 둥근 후실로 나뉘어져 있는데 후실 돌과 돌이 서로 의지하게 만들어진 둥근 천정아래 석가여래상이 안치되어 있단다. 자 잘들 봐라. 너희들이 보다시피 주위 벽에는 11면의 관음 또 십나한, 천부상들의 모습이 아로새겨져 있고 그리고 네모난 전실에는 좌우 벽에 인왕상이 역시 화강암의 부각으로 조각되어 있고 또 그 옆에 팔부신상과 사천왕상이 배치되어 석굴암 입구를 장식하고 있단다. 이 석굴은 정미하고도 특이한 구조와 하나하나가 교묘한 수법으로 새겨진 불상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시원한 종합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08:23)원숙한 신라의 불교문화를 이어받은 고려의 건축은 여기서도 수많은 웅장한 사찰과 궁궐 등은 볼만한 것이 많았으나 임진, 병자 양난과 이조시대의 배불정책으로 파괴 또는 타버리고 지금 볼 수 있는 목조건물로서는 경상북도 영주군에 있는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조사당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현재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건물이란다. 무량수전은 고려 공민왕 때에 그러니까 약 900년 전에 건조된 것으로 장중한 형태와 특히 구가법(構架法)이 절묘한 내부 천정으로 이름난 것이란다. 그 기둥 하나하나가 밑은 굵으나 위는 가늘고 중간이 부푸는 소위 엔타시스 양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두공의 중첩된 모양도 특색이 있는 것이란다. 이 조사당은 규모는 작으나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에서 이조시대의 건축양식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표본이고 특히 당시의 유일한 벽화를 보존하고 있는 점에서 한층 더 귀중한 것이다. 
    
    (09:37)이 수덕사의 대웅전도 고려말엽에 건립된 것으로서 수차 수리하여 지금에 이르렀단다. 말집모양의 외형으로 무량수전과는 좋은 대상이 되지. 이 건물의 기둥도 역시 엔타시스 양식이고 두공은 고려시대에 흔히 사용되었던 접시받침의 모양을 하고 있단다. 그리고 내부 구가법은 비교적 간략하지만 독특한 곡선미는 고려조 예술의 특색을 보여주는 것이란다.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중요한 것은 원주에 있던 지광국사탑인데, 고려 중엽에 건조되었던 것이 이번 동란에 파괴되었고 은진미륵은 고려 광종19년에 혜명 승이 만든 것으로 높이가 65척이나 된다. 
    
    (10:51)고려 공양왕으로부터 왕권을 이어받은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개성에서 지금의 서울로 옮기고 토성을 쌓고 궁전을 지어 웅대한 수도의 규모를 잡아 이씨조선의 기반을 확고하게 했단다. 지금 서울에 있는 남대문은 이조 건물 중 가장 오래 된 것으로 태조 6년, 그러니까 약 500년 전에 건립된 숭례문이란 본명을 가진 이 문은 전체적으로 보아 장중하고 견실한 기상이 있어 우리나라 수도의 정문으로서의 위엄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지. 또 수원에 있는 수원성은 정조 18년에 낙성된 것으로 한국에 있어서 제일 발달된 성곽 건축의 양식을 보여주는 것이란다. 동서남북의 문이 있고 도처에 암문, 수문, 적대, 봉대 등이 있어 성곽 건축으로 완비된 것이란다. 특히 수문상에 있는 화홍문과 방화수리정의 형태는 주위의 경치와 잘 조화되어 있단다. 
    
    (12:12)이조시대에 이르러서 불교는 급속히 쇠퇴되고 조정에서 장려하는 유교가 왕성하여 문묘나 향교가 경향각지에 세워졌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이 서울의 문묘 대성전이다. 이 대성전은 약 350년 전에 건립된 것이다. 
    충청북도 보은에 있는 법주사의 팔상전도 인조 3년 즉 단기 3957년경에 재건된 것이란다. 높이 70척의 5층 건물로 이조 중엽의 건축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이 불국사의 대웅전도 임진왜란 때 타 없어진 것을 그 후 재건한 이조 중엽의 건물이란다. 
    
    (13:26)자 이것은 해인사인데 경상남도 가야산록에 있는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인데 수차의 병화로 소실하였던 것을 약 200년 전에 이조 궁궐양식으로 재건한 건물이란다. 그 해인사 안에 팔만대장경판고라는 이조 초기의 건물이 있지. 고려 고종 때에 만든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팔만대장경판의 영구보관을 위해서 환기, 방습 등에 대한 특별한 고려 하에 건조된 것인데 당시의 과학수준의 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란다. 이 팔만일천이백오십팔매의 목각판은 이 경고에서 과거 500여 년간 곱게 보존되어 왔단다. 
    
    (14:13)이조시대 석탑으로는 서울 중앙에 있는 원각사의 13층 석탑이 유명하지. 지금 탑 공원 내에 있는 백 대리석으로 된 이 탑은 세조 12년 그러니까 500년 전에 만든 것으로 3층의 기단 위에 10층의 탑신을 세우고 각 층 탑신에 빈틈없이 불상, 보살, 천부, 인물, 화초 등을 아로새겨 놓은 듯이 지금도 선명하지 않니? 너희들도 파고다 공원에 가서 잘 봤지 않니?
    
    (14:52)그리고 경복궁은 이태조가 처음 세운 것인데 임진왜란 때 황폐했던 것을 대원군이 재건한 이조 궁궐 중 제일 웅대한 것이란다. 정전인 근정전은 이성 석축기단 위에 세운 5간5면의 대 건축으로 기단의 사면에는 교묘한 돌난간을 둘러 세우고 봉황과 구름무늬를 조각한 돌층계가 정면에 놓여있지. 삼수선의 기공양식과 잡상을 세운 지붕은 한층 풍치를 더하고 섬세한 솜씨로 된 천정은 참으로 찬란하지 않니? 
    
    (15:47)지금 중앙청 뒤에 있는 경회루는 태종이 창건한 것으로 이것 역시 임진왜란 때 전소하여 석조만 남아있던 것을 대원군이 재건한 것이란다. 연못 한가운데 자리 잡은 누각은 15척이나 되는 3척4방의 돌기둥 48개 위에 올려 세워져서 장대한 규모와 웅장하고도 기발한 착상으로 이조 말엽의 대표작의 하나가 되어 있다. 
    
    (16:18)그리고 돈화문은 태종 4년에 건조한 창덕궁의 정문인데 임진왜란 때 불타지 않은 것으로 장중한 균형과 웅건한 수법으로 이름이 높단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도 이성 단상에 있는 중층 건물로서 경복궁의 근정전과 흡사한 양식의 건물이지. 여기서 고려 건물과 이조 건물을 비교하여 보면 고려 건물은 소박하고 간략하면서도 장중한 위엄을 보여주고 있고, 이조 건물은 복잡하고 섬세하지만 전체적으로 웅장한 것을 알 수 있지. 이 대조전은 창덕궁의 내전으로 임금과 황후가 기거하시던 침전이었으므로 용마루를 없이 한 유일한 건물이란다. 
    
    (17:32)그리고 인정전 동남쪽에 낙선재 일부가 있는데 이 건물들은 이조 말엽의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것들이며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민가의 건축양식과 근사(近似)한 점이 많단다. 특히 연경당은 중종28년 그러니까 130년 전이구나, 그때의 서민들이 살던 집의 양식을 모방해서 지은 것으로 이곳에서 임금은 서민생활에 있는 그대로를 몸소 겪으셨던 것이란다. 
    
    (18:13)창덕궁의 후원인 비원은 한국식 정원의 독특한 풍채를 보여주는 것으로 산재한 연못과 정자들은 이름 그대로 신비로운 정적을 간직하고 있단다. 자 너희들 창경원에 가 보았지? 그것이 비원 동쪽에 자리 잡은 창경궁이야. 성종대왕이 단기 3821년 그러니까 400여 년 전에 건립한 것인데 정문인 홍화문과 명정문, 명정전은 임진왜란 때 조금도 파괴되지 않고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독보적인 건물들이란다. 자 잘들 보았지? 오늘날 우리들 생활 속에 깃들인 아름다움은 이와 같이 대대로 물려온 우리들 조상의 유일한 유산들인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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