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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기록유산 국가지정기록물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다 제9호 상주 동학교당 기록물

김문기(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생성 배경

동학(東學)은 1860년 4월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에 의하여 창도된 서민적이고 민족적인 신흥종교이다. 처음에는 천주교(서학)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동학’으로 불리었으나 동학이 북접(北接)과 남접(南接)으로 나누어지면서 최시형의 북접은 손병희의 천도교, 김용구의 시천교, 김연국의 상제교 등으로 분파되었고 남접은 경천교, 동학교, 청림교 등으로 갈라서게 되었다.

1890년 최시형이 북접도주가 되자 이에 반발한 김시종이 남접도주라 하고 안동지방에서 포교하기 시작하였고 제자 김낙춘을 거쳐 손제자 김주희(1860~1944)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김시종과 김낙춘은 허구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남접은 실질적으로 당시 동학의 대도를 크게 깨쳤던 김주희에 의하여 주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주희는 동학혁명의 동학군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패배하여 1904년 경에 십승지의 하나로 알려진 경북 상주군 화북면 장암리에서 경천교를 조직하여 교당을 세우고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정수기를 교주로 내세우고 실질적인 교주 역할을 하였으나 정수기가 항일 의병활동을 전개하려고 하자 1907년 경에 결별하였다. 김주희가 떠난 후, 경천교는 일제의 탄압과 더불어 정수기가 1912년 경에 보은 의병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청주 형무소에서 참형을 당하자 해체되었다.

김주희는 속리산에서 수도하면서 체천행도(體天行道)를 크게 깨닫고 안동, 청송 등지로 피신하며 포교하면서 동학교를 설립할 뜻을 가지고 길을 모색하던 중, 김낙세의 경비 주선으로 1915년 6월 은척면 우기리에 터를 닦고 7월에 원채인 북재(北齋) 상량식을, 10월에 서재(西齋) 상량식을 가짐으로써 상주 동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19년 경에 전체 교당 건립이 완성되었고 1922년 5월 29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개교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상주 동학교의 교당이 완성되고 교도가 급격히 불어나게 되자 필사본으로 된 경전과 동학가사로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경전과 가사의 판본 간행사업을 전개하였다. 1928년에는 교도수가 1,500명에 달하였고 이러한 교세는 1931년까지 유지되었다. 이 당시 교세는 상주를 비롯하여 문경, 예천, 안동, 봉화 등 경북 북부지방이 중심이 되었고 충북, 충남은 물론 강원도, 경기도, 전라도까지 퍼졌다.

상주 동학교의 교세가 날로 번창하자 일제 탄압은 더욱 심하여 1936년에는 경찰 당국에 의해 공인취소 및 집회금지 통고를 받게 되었으나 이를 어기고 집회를 하다가 1943년 10월 수운선생 탄신일에 교주, 부교주가 구속되고 경전, 가사 등 동학교 관련 자료를 압수당하는 대탄압을 받게 되었다. 1944년 교주는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병사하였으며 부교주 김낙세는 옥사하였다.

이렇게 교주와 부교주가 동시에 세상을 떠나고 집회가 불법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후계 지도자가 양성되지 못하고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지 못하여 상주 동학교는 급격히 쇠퇴하고 말았다.

주요 기록물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우기 1길 64에 소재하는 상주 동학교당(지방문화재 민속자료 120호)에는 동학 경전을 비롯한 각종 전적, 동학경서, 동학가사를 목판에 새겨 놓은 책판 등 상주 동학관련 기록물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서 지방문화재 민속자료 111호로 지정되었고, 2013년 12월에는 국가지정기록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

상주 동학의 전적, 책판 등의 기록물은 일제시기에 압수당하기도 하고 검열 과정에서 유실되거나 회수하지 못한 자료가 다수 있기는 하나 비교적 잘 보존, 유지되어 있다.

상주 동학교당에 소장된 기록물은 총 283종 1,470점인데, 이들 기록물의 현황을 종류별로 보면 동학 관련 전적이 134종 197점, 책판(冊版)이 65종 793점(판), 복식이 8종 39점, 기타 유물이 76종 441점이다. 상주 동학교당에는 이 외에도 2,366점의 비공개 기록물이 보관되어 있어 기록물의 총수는 3,836점이다. 주요 기록물의 내용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오룡기(五龍旗)

오룡기(五龍旗) 무명, 121×88cm
오룡기(五龍旗) 무명, 121×88cm

오룡기는 헌성식(獻誠式) 때 쓰는 실외기(室外旗)로써 중앙에 그려진 용의 색깔에 따라 청룡기, 황룡기, 적룡기, 백룡기, 흑룡기 등 5기를 말한다. 기면의 길이는 3자 9척 3치였다.

중건괘 아래 “진위중건천(震爲重乾天)이라 횡서하고 그 우측에는 “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나니 못에는 고기 있네(魚變成龍潭有魚)”, 좌측에는 “용담의 물이 흘러 사해의 원천되네(龍潭水流四海源)”이라고 종서한 후, 그 아래 용을 그렸다. 이는 비룡이 하늘에 오르매 구름이 일고 비가 내려 세상 만물의 고갈을 해소하였음을 상징화 하였다. 오룡기의 바탕 색깔은 오행(五行) 상생(相生)의 원리에 입각하여 청룡기의 바탕은 흑색, 황룡기의 바탕은 적색, 적룡기의 바탕은 청색, 백룡기의 바탕은 황색, 흑룡기의 바탕은 백색으로 하였다.

2) 연원기(淵源旗)

연원기(淵源旗) 무명, 36×66cm
연원기(淵源旗) 무명, 36×66cm

연원기는 상주 동학이 수운 최제우 선생으로부터 연원되고 그 도통이 승계되었음을 천명하는 깃발이다.

기폭의 가운데는 “천운순환(天運循環) 용담연원(龍潭淵源) 수운대선생주(水雲大先生主) 무극대도대덕(無極大道大德) 무위화기(無爲化氣) 영시포덕(永侍布德) 도통연원(道統淵源) 청림선생주(靑林先生主) 무극대도대덕(無極大道大德) 무위화기(無爲化氣) 영시성경신(永侍誠敬信) 광제포덕(廣濟布德) 천도순행(天道順行) 청포궁을(靑布弓乙) 무궁춘덕(無窮春德) 화만방성경신(化萬方誠敬信)”이라는 교신(敎信)과 도덕군자시중지도(道德君子時中之圖)를 청색으로 도식화 하였다. 기폭 왼쪽에는 봄에 꽃이 피는 모란화를 그려 부귀를 상징하였고, 오른쪽에는 여름에 피는 석류화를 그려 영원한 번영을 기원한 것인데 봄의 모란과 여름의 석류는 선천이 회복되는 ‘춘말하초(春末夏初)’와 ‘영세복록(永世福祿)’을 누리게 되는 선천의 세계상을 표상한 것이다.

3) 오색예복(五色禮服)

황색예복(黃色禮服) 받침복-적(赤), 기장 135cm
황색예복(黃色禮服) 받침복-적(赤), 기장 135cm

오색예복은 받침복 위에 원삼을 덧입고 대를 맨 후 삼층예관을 쓴다.

이러한 예복은 대교주가 먼저 택하게 되는데, 제의 절후에 소속된 색으로 예복을 고르며, 부교주, 성교장, 경교장, 신교장 순으로 선택한다. 이 때 색은 오행(五行) 상생(相生)에 따라 순차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대교주가 청색 받침복에 적색 원삼과 적관을 선택하면 부교주는 적색 받침복에 황색 원삼과 황관을, 성교장은 황색 받침복에 백색 원삼과 백관을, 경교장은 백색 받침복에 흑색 원삼과 흑관을, 신교장은 흑색 받침복에 청색 원삼과 청관을 순차적으로 택하는 것이다.

4) 팔괘인(八卦印)

팔괘인(八卦印) 나무, 13×4cm, 두께 2.3cm
팔괘인(八卦印) 나무, 13×4cm, 두께 2.3cm

팔괘인은 궁을경도(弓乙經圖)를 만들 때 사용하던 12달 24절기의 괘상(卦象)을 나타내는 목인(木印)이다.

11월은 지뢰복괘(地雷復卦), 12월은 지택임괘(地澤臨卦), 1월은 지천태괘(地天泰卦), 2월은 뢰지예괘(雷地豫卦), 3월은 택천쾌괘(澤天夬卦), 4월은 중천건괘(重天乾卦), 5월은 천풍구괘(天風姤卦), 6월은 천산둔괘(天山遯卦), 7월은 천지비괘(天地丕卦), 8월은 풍지관괘(風地觀卦), 9월은 산지박괘(山地剝卦), 10월은 중지곤괘(重地坤卦)로 나타내었다. 각 상괘와 하괘 사이에 아자(亞字) 주(籌)를 새겨 놓았는데, 인간(印刊)할 때는 채색을 하여 사용하였다. 아자 주는 11월과 12월 및 1~4월은 청색으로 하였고 5~10월은 적색으로 하였으며 괘상의 색은 각 달의 특징에 따라 청색이나 적색을 선택적으로 칠하여 인간(印刊)하였다.

5) 궁을경(弓乙經)

궁을경(弓乙經) 필사본,33×20.5cm
궁을경(弓乙經) 필사본, 33×20.5cm

동학경서로는 『동경대전』, 『궁을경』, 『천도궁을경』, 『통운역대』, 『도원경』, 『도화경』, 『교정경』, 『도정경』, 『도수경』, 『성경』, 『축식』 등이 있다.

『궁을경』은 30장본 필사본 1종과 32장본 필사본 1종, 『동경대전』과 합부되어 전하는 목판본이 현존하고 있다.

『궁을경』은 상주 동학교주인 김주희 신사가 궁을(弓乙)과 동학의 의미, 천도(天道) 회복의 원리, 유도와의 관계, 포덕천하(布德天下) 보국안민(輔國安民) 등에 대해 문답식으로 풀이한 동학교의 경전이다.

6) 축식(祝式)

축식(祝式) 목활자본,31×20cm
축식(祝式) 목활자본, 31×20cm

『축식』은 목판본 단권인데 헌성, 혼례, 상례, 제례 및 회갑, 상량 등의 행사를 거행할 때 쓰는 축문 및 서식을 적어 놓은 의례서(儀禮書)이다.

제1 헌성편에는 분향축, 참회축, 치성축, 시식축, 제세축, 전수축, 예장전수축, 신호전수축, 예첩전수축, 개교헌성축, 대교주헌성축, 지부교당설립축, 지부개교축, 원일헌성축, 천지합덕축 등의 축문이 실려 있고, 제2 혼례편에는 관례축, 초례축, 우례축 등의 축문이, 제3 상례편에는 발인축, 평토축, 반혼축, 가토축 등이, 제4 제례편에는 제일헌성축, 명절차사축, 첨원제일축 등이, 제5 잡기편에는 갑일헌성축, 개기축, 상량축, 예첩식 등의 서식이 실려 있다.

7) 동학교적(東學敎籍)

동학교적(東學敎籍)필사본,29.2×20cm
동학교적(東學敎籍)필사본, 29.2×20cm

『동학교적』은 상주 동학교 교인의 신상명세를 기록한 책으로 원래는 6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경에 압수되어 광복 후, 상주 경찰서에서 회수하였는데 4권은 분실되어 2권만 찾아오게 되었다.

이 교적에는 교인들의 성명, 본관, 생년월일, 수교 날짜, 도호, 종위, 주소, 천주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현전하는 『동학교적』 제 1, 2권에는 교주, 부교주를 비롯한 1,258명의 교인이 등재되어 있다.

8) 동학교서(東學敎書)

동학교서(東學敎書) 필사본,30.2×20.5cm(1931년)
동학교서(東學敎書) 필사본,
30.2×20.5cm(1931년)

『동학교서』는 동학가사 필사본이다.

이 『동학교서』 에는 경탄가, 도성가, 륙십화갑자가, 년월가, 지지가, 팔괘변역가, 근농가, 경세가, 원시가, 시호가, 천리순수개명가, 택선수덕가, 시세가, 청운거사문동요시호가, 송구영신가, 몽경시화가, 운산시호가, 송구연신가, 신실시행가, 지시수덕가, 궁을십승가, 천지부부도덕가, 지시명찰가, 지시개명가, 궁을가, 안심가 등 27편이 필사되어 있다.

이 책은 1930년 12월 9일~1931년 1월 7일에 필사되었으며 상주 동학교의 교서(敎書)로 쓰였다.

9) 수상록(收桑錄)

수상록(收桑錄)필사본,28.5×19.4cm(1927~1933년)
수상록(收桑錄)필사본,
28.5×19.4cm(1927~1933년)

『수상록』은 부교주 김낙세가 1927년 4월 1일~1933년 7월 9일에 쓴 동학일기이다. 상주 동학교당에 소장되어 있는 동학일기는 부교주 김낙세가 1890년 10월~1943년 10월에 쓴 일기로써 필사본 17권으로 되어 있다.

이 동학일기는 일록제일(日錄第一, 1890. 10. 26.~1891. 11. 21.), 일록제이(日錄第二, 1891. 11. 22.~1982. 12. 29.), 정매록제삼(征邁錄第三, 1893. 1. 1.~1893. 12. 30.), 시심편(矢心篇, 1894. 1. 1.~1894. 12. 30.), 보총록(補聰錄, 1895. 1. 1.~1895. 12. 30.), 병신일기(병신일기, 1896. 1. 1.~1897. 12. 6.), 기미일기(己未日記, 1916. 12. 25~1919. 2. 30), 경신일기(庚申日記, 1919. 3. 1.~1920. 6. 20.), 임술일기(壬戌日記, 1922.7.1.~1924. 9. 12.), 화개록(花開錄, 1924. 9. 13~1927. 3. 29.), 수상록일(收桑錄一, 1927. 4. 1~1929. 4. 28.), 수상록이(收桑錄二, 1929. 5. 1.~1932. 2. 24.), 수상록삼(收桑錄三, 1932. 2. 25.~1933. 7. 9.), 일신편일(日新篇一, 1933. 7. 10~1934. 11. 29.), 일신편이(日新篇二, 1934. 12. 1.~1936. 5. 8.), 일신편삼(日新篇三, 1942. 3. 1.~1943. 10. 6.) 등 17권이다.

이 일기에는 상주 동학교의 설립 경위와 경전 및 동학가사의 필사, 판각, 간행 과정 및 보급, 교당의 행사와 포교활동, 일경(日警)의 감시와 탄압 등을 비롯하여 상주 동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국내외 사건들이 한문 해서체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0) 동학책판

동학 책판(冊版) 29.6×45.5cm,국한혼용 23판(1929~1932년)
동학 책판(冊版) 29.6×45.5cm,
국한혼용 23판(1929~1932년)

상주 동학교당에는 793판의 책판(冊版)이 소장되어 있다. 경전책판은 8종 82판, 가사책판은 39종 701판이 소장되어 있으며, 기타 책판으로 신장과 예장 및 취지서 2판이 전하고 있다. 경전책판은 모두 한자로 새겨져 있으며, 가사책판은 국문책판이 27종 355판이 있고, 국한문혼용책판이 29종 354판이 있다.

가사 국문책판과 가사 국한문혼용책판은 21종이 서로 같은 노래이며, 서로 다른 노래는 국문책판 6종과 국한문혼용책판 8종이 있다. 판목으로 사용된 나무는 주로 참죽나무, 소나무, 배나무이며, 책판의 간행 시기는 1925년에 인출한 『챵덕가(昌德歌)』와 1951년에 인출한 『시경가(時景歌)』를 제외하고, 그 외 모든 책판은 1929~1932년에 인가를 받아 공식적으로 인간(印刊)되었다.

기록물의 가치

상주 동학교당 기록물은 세계인이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지닌 동학사상을 몸소 실천, 궁행했던 동학도들의 유물로서 상주 동학교당에만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희귀성과 독창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동학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기록물이다.

그 중에서 상주 동학교당 기록물은 동학사상은 물론 동학도들의 반일 운동 양상과 역할을 규명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국문학 특히, 가사문학 연구 자료의 보고(寶庫)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상주 동학교당에는 793판의 동학경전 및 동학가사 책판을 위시하여 수많은 한자(漢字) 대·중·소활자와 한글 대·중·소활자 및 각종 인쇄 용구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상주 동학교당 기록물은 한국 인쇄문화 연구에도 꼭 필요한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기록물 소장처 : 상주 동학교당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