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계획 포스터 : 신혼부부 첫 약속은 웃으면서 가족계획(1983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제4회 인구의 날을 맞아, 1960~80년대 인구감소를 위해 추진했던 가족계획사업 관련 기록물을 7월 11일(토)부터 국가기록원 누리집(홈페이지, www.archives.go.kr)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 정부는 인구구조의 불균형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 2011년에 '인구의 날(7월 11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함
* UN이 1987년에 제정한 '세계인구의 날'과 동일한 날짜임
이번에 서비스 하는 기록물은 가족계획을 홍보하는 드라마, 만화영화 등 총 23건(동영상 7, 사진 8, 문서 4, 포스터·우표 4)으로 우리나라가 고도 성장기를 거쳐 OECD 반열에 오르기까지 자녀를 낳는 것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베이비붐 세대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가족계획사업 추진에 관한 종합보고 :
1966년 11월 가족계획사업 추진에 대해 보건사회부에서 경제장관회의에 제출한 문서이다. 문서에는 1971년까지 인구자연증가율을 2.0%로 감축하기 위해 추진 중인 가족계획사업의 계획, 문제점, 대책, 전망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제1차 가족계획 전국대회(1963년)
가족계획 지도요원 수료식(1964년)
가족계획 촉진협의회 회의(1964년)
우리나라는 6.25전쟁 이후 베이비붐의 영향으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고, 1961년부터 정부에서는 출산억제를 위한 가족계획사업을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병행하여 추진했다.
우선 정부는 1962년 가족계획 심의위원회를 구성하였고, 1965년 가족계획 조사·평가반을 설치하는 등 사업추진체계를 정비하였다. 또한 1963년 「가족계획사업 10개년 계획(1962~1971)」을 수립·시행하였다. 동 계획의 주요 내용은 20~44세 부인의 피임 실천율을 45%로 높이며, 3%의 인구증가율을 2%로 낮추는 것이었다.
국립가족계획 연구소 직제 :
1970년 7월 보건사회부장관 소속하에 가족계획사업의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국립가족계획연구소’의 직제를 공포하기 위한 법제처 문서이다. 직제는 전문 11조와 부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술훈련・가족계획사업 및 인구성장에 관한 조사연구와 분석평가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설치목적을 규정하고 있다.
가족계획 우표 : 둘만 낳자(1978년)
가족계획 우표 : 하나낳아 알뜰살뜰(1986년)
1970년대에 들어서는 기존의 피임보급 중심 사업이 한계에 이르자 보상과 규제라는 ‘당근과 채찍’ 정책을 병행하였다. 이러한 사회지원 시책으로는 3자녀 이하까지 종합소득세 인적 공제 제한(1973년), 여성의 상속권을 인정하는 가족법의 개정(1977년), 2자녀 불임 수용가정에 공공주택입주 우선권 부여(1978년) 등이 있었다.
USOM(미국대외원조처) 가족 계획용 이동진료차 기증식(1965년)
산아제한 계몽활동(1977년)
방역 및 가족계획촉진대회(1984년)
1980년대 들어서도 남아선호사상이 여전히 강하여 출생률 감소가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좀 더 강력한 인구억제 정책을 시행하였다. 1981년 발표한 인구증가 억제 방안에서는 ‘1가구 2자녀 이하 갖기’를 목표로 가족계획 사업의 활성화, 소자녀 가정에 대한 사회지원시책 강화, 남아선호 관념의 불식을 위한 각종 제도개선 등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가족계획사업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1980년대 중반에는 합계 출산율이 1.6~1.7명으로 현격히 낮아졌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본격 대두됨에 따라 다양한 출산장려 정책이 시행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어 인구장려정책을 펼치는 현재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지만, 오늘 날의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정부를 믿고 묵묵히 따라 준 기성세대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음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