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그리운 운동회의 추억
제25회 어린이날 기념식 행사(어린이운동회)(1954)
우리나라 운동회의 시초는 1896년 5월 2일 영어 학교에서 평양의 삼선평(三仙坪)으로 소풍을 가면서 화류회(花柳會)라는 운동회를 열었던 것이었다. 이 운동회에서는 300, 600, 1,350보 경주와 공 던지기, 대포알 던지기, 멀리뛰기, 높이뛰기, 이인삼각, 당나귀 달리기, 12인조 동아줄 끌기 등을 했다. 운동회는 놀이 중심이었지만, 개인적인 즐거움보다는 단체경기를 통한 협동과 단결 정신을 배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의 운동회는 일제의 침탈에 대한 민족의 울분과 교육구국 의지를 다지는 역할 등을 하였고, 이 때문에 일제는 1912년 학교 연합운동회를 폐지시키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초기 운동회는 광복 이후에도 지역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다지기 위해 계속되어 왔으며, 각 학교별로 단결심을 고취시키는 커다란 행사로 이어져 내려왔다. 이러한 운동회의 발달은 후에 학도체육대회, 소년체육대회, 전국체육대회 등 각종 체육대회로 발전하였다.
학교 운동회는 놀이와 축제가 많지 않던 시절에 학생을 중심으로 온 가족과 마을사람들이 모여 함께 경기를 하면서 화합을 다지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 운동회는 학교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조회대를 중심으로 전교생이 정렬한 개회식에서 국민체조를 한 다음,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응원석으로 이동했다. 학생들은 달리기와 단체경기를 하며 주인공이 되었고, 오랫동안 연습해온 체조, 부채춤, 꼭두각시놀이 등의 공연으로 가족과 동네 사람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받았다. 특히, 학년별 이어달리기를 할 때는 운동장을 찾은 사람들이 전부 일어서 응원을 할 만큼 흥분의 도가니가 되고는 했다. 만국기, 솜사탕이나 아이스크림 상인들, 정성스럽게 준비한 도시락 등 학교운동회는 체력단련의 차원을 넘어 유년시절의 꿈과 낭만 그 자체였다.
1969년 3월 문교부는 어린이들의 정서교육과 체력향상을 위해 초·중·고 학교운동회와 학예회를 적극 권장했다. 또한 운동회 실시를 연 1회 의무화하고 운동회 경비를 문교부에서 지원하였다.
1975년 정부는 학부모의 찬조금으로 인한 폐단이 계속해서 발생하자 초등학교 운동회를 폐지하였으나, 이듬해 운동회 실시를 요구하는 여론에 따라 1976년 9월에 부활시켰다. 1980년대 이후 운동회는 사물놀이, 강강술래, 윷놀이, 씨름, 부채춤, 차전놀이 등 전통놀이 체험이 더해졌다. 1980년대 이후 거의 모든 학교에서 운동회가 실시되었으나, 운동장 공간 등의 문제로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었고, 응원가는 주로 동요, 만화주제가를 개사하여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학교에서의 운동회는 단순한 체육행사의 의미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평소 배운 운동이나 유희 등의 학습결과를 가족과 이웃들 앞에서 연출하여 성장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주성이나 협력심·책임감 등을 익히게 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어린이들의 정서함양이나 체력 단련만이 아니라 학부모들과 지역사회 주민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그 지역의 유대와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계기가 되는 중요한 행사의 하나였다. 미세먼지로 인해 봄철 학교 운동회가 줄어들고 있는 오늘날, 친구, 가족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과거 학창시절 운동회 풍경을 기록을 통해 되살려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