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2
일제의 강제동원에 조선인은 끊임없이 저항했다!
국가기록원 노영종 학예연구관은 지난 4일 국사편찬위원회·동북아역사재단·한국학 중앙연구원 등 교육부 산하 3개 역사 관련 기관이 주관한 「일제 식민지 피해 실태와 과제」 공동 심포지엄에서 ‘강제동원 현황과 거부투쟁’을 주제로 발표하였다.
이번 학술회의는 불법적․반인도적 일본 식민지배 피해 실상, 특히 ‘전쟁을 위해 강제동원 한 노동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살펴보고, 한국대법원 판결의 의미까지 짚어보고자 마련되었다.
노영종 연구관은 이번 심포지엄에서 ‘강제모집’, ‘관주도’, 징용 등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 방식과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노동환경 실태를 조명하면서, 탈출, 징용 거부투쟁, 노동쟁의 등 조선인의 다양한 투쟁사례를 밝혔다.
일제는 노무(국민)동원계획 수립 단계부터 조선인의 인력동원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수립하였고, 일제와 조선총독부의 허가나 승인 없이는 동원이 불가능하였으며, 동원 대상자의 선정·인솔 등 모든 절차와 과정에 일제와 조선총독부가 주도하고 개입했다. 동원지에 도착한 이후 통제와 민족차별의 삶 또한 동일하였다. 결국 조선인 강제동원은 일제와 조선총독부의 공권력이 계획적이고 체계적․조직적으로 그리고 강제적으로 수행된 것이었다.
강제동원 조선인들의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하였다. 숙식, 임금, 노동시간, 담당업무 등 모든 면에서 일본인 노동자와 차별이 있었고, 구타와 폭력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정해진 월급을 지급받지 못했으며, 식사의 질과 양이 형편없어 배고픔으로 인한 고통도 상당했다. 조선인들은 탄광이나 광산 등 사업장에서 낙반(落盤), 가스중독, 추락, 사고 등 노동재해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가운데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민족차별을 겪으면서 점점 반일주의자가 되어 갔다.
일제의 강제동원에 대해 조선인들이 순순히 응했던 것은 아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탈출하거나 읍면 직원·경찰에게 보복하기도 했으며, 조직적 차원으로는 집단탈출 또는 비밀결사를 통한 징용 거부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파업·태업·무력항행 등 노동쟁의를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였다. 특히 초기에는 노동운동 성격의 노동쟁의를 벌였으나 점차 독립만이 민족 차별과 식민지 모순의 해결책임을 깨달아 민족운동 성격의 노동쟁의로 발전하였다.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은 ‘경제적 수탈과 민족말살정책’이라는 일관된 식민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수행된 반인륜적 인력 수탈정책이자 조선민족 말살정책으로서, 식민정책의 죄종착지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조선인 강제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있다.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은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은 강제동원 기록물을 정리하여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강제동원자명부는 일부 병력(病歷)․군위안부 포함된 사항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공개되고 있으며, 비공개 기록이라도 학술 연구를 위해서 제공하고 있다. 특히, 2003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강제동원 사실을 검색․조회(중복자를 포함하여 약 105만 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가기록원은 앞으로도 강제동원 기록물을 수집·정리하여 일반 국민과 학술 연구를 위해 적극적으로 서비스할 예정이다. 아울러 유관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공동 심포지엄 개최, 강제동원 기록의 통합 DB 구축 등 강제동원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공동 심포지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공동 심포지엄 발표 및 토론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