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청사(광화문)치안시설·전매시설

경성부 경찰서

한국에서 경찰서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것은 1907년 7월 27일 칙령 제1호로 <경무청관제(警務廳官制)> 개편하여, 경무청을 경시청(警視廳)으로 개칭하고, 경무서(警務署)는 경찰서로, 파출소는 순사주재소로 개칭하면서부터이다. 이에 따라, 12월 17일 내부령 제4호로 경찰서, 경찰분서 및 순사주재소의 명칭, 위치, 관할구역을 정하여 1908년 1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1894년 경무청이 설립되면서 근대적 경찰 제도가 운영되기 시작한 이후, 여러 차례의 조직개편을 통해 치안 시설이 운영되었는데, 1910년 6월 24일 ‘한국의 경찰사무위탁에 관한 각서’에 의해 일제가 경찰권을 장악하면서 한국의 치안 업무는 통감부가 <통감부경찰서관제(統監府警察署官制)>를 통해 경무총감부(警務摠監部)를 정점으로 운영되었다. 8월 5일 통감부는 경무부 및 경찰관서 명칭 및 위치, 관할 구역을 결정하여 공포하였다. 대한제국기에 운영되던 기존의 중부·동부·서부 경찰서는 폐지되었고, 동부 및 서무 경찰분서와 광화문 근처에 수문동분서가 새로 설치되었다. 경찰서로는 남부경찰서·북부경찰서·용산경찰서(1909년 1월 분서에서 승격)만이 존속하였고, 새로 창덕궁경찰서가 창덕궁 앞에 설치되었다. 이는 1910년 10월 조선총독부의 외국으로 설치된 경무총감부 산하 조직으로 그대로 계승되어 운영되다가, 1914년과 1915년에 다시 대대적인 명칭 및 위치·관할 구역에 대한 개편이 진행되었다. 1914년에는 동현분서가 황금정(黃金町)분서로 개편되었으며, 수문동분서는 폐지되었으며, 덕수궁분서가 신설되었다. 1915년 3월에는 남부경찰서가 본정(本町)경찰서로, 북부경찰서가 종로경찰서로 개칭되었고, 동대문과 서대문분서가 각각 동대문, 서대문경찰서로 승격되었다. 1919년 8월에는 총독부의 정책 기조가 ‘문화정치(文化政治)’로 변경되면서, 치안제도도 헌병경찰제도에서 보통경찰제도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일선 경찰서의 시설과 운영은 행정 구역의 개편 및 신설로 인한 변화를 제외하고는 큰 변화 없이 1945년까지 유지되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경성부 지역의 경찰서 관련 도면은 모두 4개 시설에 대한 37매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성부 지역의 경찰서 관련 도면
명칭 연도 도면수
본정경찰서 1915~1945 22
서대문경찰서 1915~1945 4
영등포경찰서 1910~1945 2
용산경찰서 1910~1945 9

*연도는 ‘『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職員錄』, 1910~1941’을 참고로 조사하였다. 다만, 직원록이 1941년까지만 확인 가능하므로, 그 이후는 유지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본정경찰서는 1915년 남부경찰서가 개편되면서 운영이 시작되었다. 운영 초기 기존의 경찰서 시설을 그대로 유지하여 사용하였고 지속적으로 부분적인 증개축을 하였다. [도판1]은 본정경찰서의 증축을 위해 작성된 도면이다. 당시 사용된 청사는 남부경찰서 청사를 일부 증축하여 사용하였으며, 이 계획으로 청사 뒷면에 복도를 추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청사는 정방형에 가까운 오각형 부지 전면 중앙에 배치되었다. 도면의 내용을 살펴보면, 청사 동쪽으로 형사실(刑事室), 서쪽에는 탕비장(湯沸場)과 변소, 뒤로는 연와창고와 격검장(擊劍場) 등이 있는데, 이들을 이축·정리하고 새로운 건물을 추가로 신설하려 하였다. 청사의 자세한 구성은 자료가 남지 않아 확인하기 어려우나, [도판2]에서 윤곽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도면은 청사 뒷면의 복도 증축과 연와창고 이축을 위해 작성된 것이다. 여기에 청사 평면이 일부 작성되었는데, 실의 구획과 계단의 위치, 복도 형태가 이전 남부경찰서 청사와 같았다. 건물 뒤로 복도를 설치하고, 복도의 서쪽 끝과 남쪽 중앙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이 복도는 청사 계단실과 동쪽의 부속 건물로 출입하도록 계획되었다.

남대문로에 위치하였던 본정경찰서는 1923년 부지를 옮겨 영락정(榮樂町) 2정목(현재의 중부경찰서 부지)으로 신축 이전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청사는 1924년 7월 15일 완공되었다. 관련 계획은 [도판3]에 기재되었다. 동서로 긴 장방형의 부지에 동쪽에 있는 대로에 면하여 청사를 배치하였다. 부지는 서쪽이 높아 두 단으로 나누어 정지하여 사용하였다. 동쪽 하단의 청사는 좌우로 전면이 긴 ㄴ자 평면에 뒤로 부속건물이 연결된 평면을 하였으나 구체적인 계획도가 남지 않아 더 이상 내용은 알 수 없다. 연무장(演武場)·욕실·창고 등 다른 부속 건물은 상단 부지 주변으로 배치되었다.

서대문경찰서도 관련 도면이 거의 남지 않아, 전체 모습은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경찰서로 승격된 이후 1921년 6월 25일 새로운 청사를 낙성하였는데, 이 신축 청사에 대한 계획도가 확인된다. 구체적인 청사 모습은 [도판4]에서 확인된다. 청사는 양식 목조의 부분 2층 건물로 트러스를 사용하여 경사 지붕을 구성하였고, 외벽은 모르타르 바름 방식으로 마감되었다.([도판5] 참조) 앞뒤로 긴 일자형 평면에 뒤로 갈수록 폭과 높이가 조금씩 줄어드는 형태를 취하였다. 현관을 들어서면 복도를 따라 창구가 설치된 사무실이 위치하였고 그 뒤로 이층과 연결된 계단이 있다. 그 뒤로 연결된 복도를 따라 양쪽으로 사법실(司法室)·소사실(小使室)·탕비장(湯沸場)·변소·형사실(刑事室)·숙직실 등의 각 실이 배치되었다. 이층에는 훈시실(訓示室)·무기실·회계실 등이 계획되었다.

영등포경찰서 관련 도면은 2매가 남았는데, 모두 배치도로 각 건물의 구체적인 모습은 확인되지 않는다.([도판6], [도판7] 참조) 삼면이 도로에 접한 부지 북서쪽에 군청사(郡廳舍) 건물이 표시되 시흥군청 건물에 이웃하여 경찰서가 위치한 것을 알 수 있다. 청사 입구는 부지 남서쪽 모퉁이로 하고, 부지 중앙에는 청사를 배치하였다. 청사는 형태가 3등 경찰서의 공통 계획과 비슷하여 공통도면을 사용하여 신축한 것으로 같다.

용산경찰서 역시 적은 수의 도면이 남아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다. [도판8]은 1920년 원정(元町) 1정목(丁目)으로 이전하기 위해 작성된 배치도이다. 부지 남서쪽에는 상공과 분실이 위치하고, 남동쪽으로 도로와 면하는 부정형의 부지 중앙에 청사를 신축하였다. 영등포경찰서와 마찬가지로 3등 경찰서의 공통 계획을 활용하였다. [도판9]는 이전하기 전 한강통(漢江通)에 있던 용산경찰서 청사의 증축 도면이다. 당시 청사는 양식 목조 단층 건물로 앞뒤로 긴 평면으로 계획되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사무실과 연결된 창구 영역이 있고, 오른쪽에는 서장실이 위치하였다. 사무실 뒤로 숙직 영역과 감방 영역이 구성되었다.

[참고도판]

  • 도판1. 본정경찰서청사기타모양체수선공사배치도 / 14, 1916~23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2. 본정경찰서청사모양체급동부속연와창고이전공사설계도 / 10, 1916~23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3. 경성본정경찰서부지설계평면도 / 토류석단구조도 / 횡단면도, 1923 상세보기
  • 도판4. 서대문경찰서신축공사설계도 / 1, 1920~21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5. 서대문경찰서신축공사설계도 / 정면상세도 / 2, 1920~21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6. 영등포경찰서예정부지실측도, 1910~20년대 추정 상세보기
  • 도판7. 영등포경찰서부지평균급배수공사지도 / 2, 1910~20년대 추정 상세보기
  • 도판8. 용산경찰서청사기타배치도 / 3, 1919~20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9. 용산경찰서모양체기타증축공사설계도 / 2, 1910~12년 추정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