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재개발

올림픽은 도시를 바꾼다. 1981년 서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순간, 서울이라는 도시는 '보여지는 도시'로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미쳐 완벽하지 않았던 이 도시는 준비 과정에서 보여지는 도시에는 동시에 숨겨야 할 것들도 생겨났다. 1960년 244만 명에 불과했던 서울의 인구는 1970년 550만 명, 1980년에는 850만 명 수준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 과정에서 유휴지와 하천부지, 산기슭을 중심으로 무허가 불량주택이 대거 들어선 상태였다.

서울 지구 무허가 건물 철거 대상지

서울 지구 무허가 건물 철거 대상지

철로연변 무허가 건축 철거 현장(수색 지역)

철로연변 무허가 건축 철거 현장(수색 지역)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시는 도심부 재개발과 청계천 복개, 시민아파트 건설 등을 추진했고 1970년대에도 집단 이주 정착지 사업과 광주대단지 조성 등 불량지구 정비가 이어졌지만 성과는 미미했으며, 도리어 새로운 판자촌이 형성되고 확산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광주대단지사업종합계획

광주대단지사업종합계획

광주대단지 지역개발

광주대단지 지역개발

광주대단지 항공사진

광주대단지 항공사진

시민아파트 건설 현장

시민아파트 건설 현장

금화시민아파트 준공식

금화시민아파트 준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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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서울올림픽 유치 이후 불량 지구의 정비는 서울시가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로 부상하였다. 당시 서울은 인구 규모로는 세계적인 대도시였으나, 종로·을지로·퇴계로 등 중심 시가지에는 노후 건물이 많았고 변두리 산기슭에는 무허가 건물이 밀집해 있었다. 올림픽 유치 직후 언론에서는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서울의 도시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국제도시·선진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춘다는 목적 아래 도심재개발사업, 불량주택재개발사업, 한강종합개발사업 등 대규모 정비 사업을 전개하였다. 도심재개발과 불량주택재개발의 완료 지구 통계를 보면, 올림픽 유치 이후의 정비 사업은 1970년대와 비교해 규모와 속도 면에서 크게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전역의 모든 불량 지구를 정비하는 것은 한정된 시간과 재원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정비의 우선순위를 정하였고, 올림픽 대회 기간 동안 외국인 방문객에게 자주 노출되는 지역을 우선 정비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이른바 '올림픽 가시권(可視圈)'이다. 이 가시권에는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과 주변 지역뿐만 아니라, 대회 기간 TV를 통해 전 세계에 노출되는 성화 봉송로와 마라톤 코스, 그리고 외국인 방문객들이 자주 머물고 들르게 될 도심부와 주요 간선도로변까지 포함되었다. 도시를 바라보는 카메라와 외국인의 시선이 곧 도시계획의 기준선이 된 것이다. 이것이 '올림픽 가시권'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이를 중심으로 도시의 변화는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올림픽 가시권 내 도시개조 사업

올림픽 가시권 내 도시개조 사업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88서울올림픽, 서울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2017.

서울올림픽대회 성화봉송 기본계획

서울올림픽대회 성화봉송 기본계획

올림픽 성화봉송도로 및 주변 환경정비 실태 점검결과

올림픽 성화봉송도로 및 주변 환경정비 실태 점검결과

조직위 간부 봉송로 현지답사 결과보고

조직위 간부 봉송로 현지답사 결과보고

마라톤코스에 대한 서울특별시 의견

마라톤코스에 대한 서울특별시 의견

‘86‧’88 서울올림픽대회 마라톤코스도

‘86‧’88 서울올림픽대회 마라톤코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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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올림픽 대비를 위해 시행한 도시 개조의 대표적인 수단은 도심재개발과 불량주택재개발이었다. 도심 재개발사업의 경우 1984년부터 ‘올림픽 가시권’의 중요 축인 마포 귀빈로를 포함하여 태평로, 을지로, 한강로 등 주요 간선도로변과 종로·중구 등 도심 중요 지역에 역점을 두어 집중 정비가 실시되었다. 주요 간선도로변 40개 지구와 도심 중요 지역 53개 지구, 총 93개 지구가 정비 목표로 설정되었다. 마포로의 사례는 가시권 정비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마포대교에서 아현삼거리에 이르는 이 간선도로는 1966년 존슨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이래 외국 귀빈들이 김포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할 때마다 지나는 길목이었고, 1979년에는 아예 '귀빈로'라는 이름이 붙어 대대적인 정비 대상이 되었다. 1980년대의 재개발을 거치며 마포로에는 10년간 약 20여 개의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여기서 도심재개발이란 광화문과 종로·을지로, 서울역과 서대문 등 도심부의 노후·불량 지구를 정비하고 그 자리에 현대적인 시가지를 재건하는 사업을, 불량주택재개발이란 오늘날의 주택 재개발과 같은 개념으로 불량주택 밀집 지역을 헐고 새로 짓는 사업을 말한다. 통계로 확인해 보아도 올림픽 유치 이후부터 개최까지의 기간에 완료된 도심재개발 지구 수와 불량주택재개발 실적은 1970년대와 비교할 수 없는 규모였다. 올림픽이라는 시한이 도시 개조의 속도를 결정한 것이다.

도심건축물 고도규제합리화

도심건축물 고도규제합리화

재개발 구역 현황

재개발 구역 현황

불량주택 재개발사업은 1983년 9월부터 시행된 합동재개발 방식이 활성화되면서 급격히 속도를 냈다. 주민(조합)과 건설업체가 손잡고 사업을 추진하는 이 방식이 도입된 이후 재개발의 결과물은 대부분 고층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1985년 9월 서울시는 올림픽 대비를 위한 우선 사업 구역을 9개에서 32개로 대폭 확대하였다. 가락·오금 등 경기장 시설 주변과 옥수·금호·흑석 등 행사 관련 노선 가시권 지역이 '필수사업 구역'으로, 하왕십리·아현 등 주요 간선 가시권과 신당·구로·대림 등 지하철·호텔 주변, 천호·사당 등 주거환경이 극히 불량한 지역이 '중점사업 구역'으로 지정되어 우선순위에 따라 사업이 추진되었다. 1980년대의 재개발사업 구역 지도를 성화봉송로·마라톤코스와 겹쳐 보면 양자가 뚜렷하게 포개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이 시기의 재개발이 얼마나 철저히 '보여지는 서울'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올림픽 가시권 내 도시개조 사업

올림픽 가시권 내 도시개조 사업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88서울올림픽, 서울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2017.

88 서울올림픽대회 성화봉송

88 서울올림픽대회 성화봉송

가락동 시영아파트 건설 현장

가락동 시영아파트 건설 현장

올림픽경기장 주변 정비를 위한 토지구획정리 사업지구 개발 현황(개포.가락.강동)

올림픽경기장 주변 정비를 위한 토지구획정리 사업지구 개발 현황(개포.가락.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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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가시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각종 개발·재개발 사업의 결과, 서울 시내 주요 지역에는 고층 업무빌딩과 고층아파트 등 이전에 없던 고층빌딩들이 건설되었다. 1980년대의 경제 성장과 유례없는 호황은 이 흐름에 힘을 실었다. 급격한 경제 성장이 폭발적인 업무공간 수요를 창출했고, 이것이 다시 재개발사업을 촉진해 고층빌딩 건설로 이어진 것이다. 정부와 서울시도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1979년까지 4대문 안에서 15층으로 제한되던 건물 높이는 1981년 지역에 따라 20~25층으로 완화되었고 1983년에는 아예 높이 제한이 해제되었다. 각종 세금 감면과 공사 자재 부가세 환불 같은 특혜도 제공되었다. 동시에 시멘트벽에 페인트칠로 끝나던 건물 외벽을 타일과 벽돌, 대리석 등으로 미화하고 건물 외부에 조각·회화 등 미술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미관 규정도 마련되어, 도시 풍경의 질적 향상이 함께 도모되었다.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목표 아래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이 맞물리면서, 민간 기업들도 앞다투어 고층빌딩 신축에 뛰어들었다.

도심건축물 고도규제합리화

도심건축물 고도규제합리화

재개발 구역 현황

재개발 구역 현황

그 결과 도심의 교보빌딩과 롯데호텔, 프레스센터, 여의도 63빌딩(1985년 완공)과 럭키금성 트윈타워(현 LG트윈타워, 1987년 완공), 강남의 54층 트레이드타워(한국무역센터)까지, 오늘날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구성하는 고층빌딩의 상당수가 이 시기에 지어졌다. "이미 2백여 채의 빌딩이 들어선 수중도시 여의도는 최근 들어 50여 채의 고층빌딩이 신축 붐을 이뤄 서울의 맨해튼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는 당시 신문 기사나, "도시엔 우뚝 솟은 빌딩들"을 노래한 1984년의 대중가요 <아! 대한민국>의 가사는, 빌딩 숲이야말로 당시 우리가 세계에 보여주고자 했던 '선진도시'의 이미지였음을 말해준다.

1980년대 신축된 서울시내 고층빌딩들

1980년대 신축된 서울시내 고층빌딩들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88서울올림픽, 서울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2017.

1988년 9월 17일 서울시청을 출발해 잠실 주경기장으로 향하던 성화봉송 행렬의 배경에는 도심재개발로 들어선 빌딩들이 서 있었고, 폐막일의 마라톤 중계 화면에는 63빌딩과 한강변의 아파트들이 담겼다. 대회 기간 중인 1988년 9월 29일부터 대회 직후인 10월5일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한 외국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서울이 '현대화·선진화된 도시'라는 긍정적 평가가 다수를 차지했다.

88 서울올림픽대회 성화봉송

88 서울올림픽대회 성화봉송

88 서울올림픽대회 마라톤 경기

88 서울올림픽대회 마라톤 경기

남대문과 고층빌딩

남대문과 고층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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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선진도시'의 이면에는 가시권 정비라는 명목 아래 삶의 터전을 잃고 밀려나야 했던 수많은 철거민들의 아픔이 존재하였다. 불량주택재개발이 고층아파트 단지를 만들어내는 동안, 기존 거주민들 특히 세입자들은 적절한 보상이나 대체 주거 없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세입자와 조합원의 갈등이 격화되자 서울시는 1987년 가시권 사업 구역을 주민 개발 의욕이 높고 민원이 없는 24개 지역으로 축소해야 했을 정도였다.

앞서 살펴본 올림픽 선수·기자촌 아파트 부지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총 보상대상자 1,144명 중 보상 협의에 응한 333명에게만 특별 분양권이 지급되었다. 토지소유자 322명 중 특별 분양권을 받은 이는 단 1명이었고, 건물 소유자 822명 중에서는 332명만이 분양권을 받았다. 부지 안에 살던 다수의 주민이 충분한 보상이나 대체 주거 마련 없이 밀려났다. 세계인의 축제를 위해 지어진 아파트의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돌아갈 수 없는 옛 삶터였던 것이다. 올림픽을 향한 압축 성장의 그림자는 이처럼 개발의 혜택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국립경기장등 추진 계획 보고

국립경기장등 추진 계획 보고

86.88 주요시설 확보 관련 철거민 대책

86.88 주요시설 확보 관련 철거민 대책

86아시아88올림픽필사업을 위한 아파트 분양(특별분양) 요청

86아시아88올림픽필사업을 위한 아파트 분양(특별분양) 요청

서울특별시,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특별분양 계획

서울특별시,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특별분양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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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역사박물관, 『88서울올림픽, 서울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