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시대, 국민의 일상
캠페인의 시대
1961년 박정희 정부는 출범과 더불어 사회악을 일소하고, 사회를 정화하여, 명랑한 사회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다양한 이들을 검거하고 단속하고 수용한 바 있었다. 그와 더불어 수백만 명의 회원을 가입시켜 ‘재건국민운동’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관제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국민의 ‘의식 개혁’을 가장 시급한 정부의 과제 중 하나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1980년 9월 1일 출범한 전두환 정부도 이러한 판단을 공유했다.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정식으로 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이 문제에 관한 정책을 시행할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1980년 5월 31일 출범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출범 몇 주 만에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무질서를 유발한다 판단되는 다양한 이들을 ‘사회악’이라 칭하며, 이들을 단속하고 수용할 계획을 발표한다. 그것이 1980년 8월 4일 발표된 ‘사회악일소특별조치’라는 이름의 정책이었다. 이는 ‘삼청교육’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문화공보부 위원장의 사회악일소특별조치 발표
사회악 일소(대한뉴스 제1293호)
이어서 정부는 ‘사회정화운동’이라는 관제 캠페인을 시작하였고, 10월 28일에는 이를 국무총리 산하의 국가 기관으로 만들었다. 출범 초부터 550만 명에 달했던 이 기관의 구성원들은 한편으로는 거리 곳곳에서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에게 질서를 요구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 여겨지는 이들을 단속하고 고발할 수 있는 권한을 활용하였다. 여기에 새마을운동을 정부 지원하의 민간 조직으로 재편하고, 농촌 지역 환경 개선에 초점을 두었던 사업도 “정신적 의식구조 및 행동 양식의 변화에 역점을 두는 사업” 위주로 재편한다.
사회정화위원회설치령(안)(제90회)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공포(안)(제103회)
1981년 9월 30일 IOC총회에서 제24회 하계올림픽의 서울 개최를 확정 지은 후, 정부는 서울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이때 ‘국민 의식 개혁’에 관한 계획은 가장 먼저 수립된 계획 중 하나였다. 질서 의식(교통질서, 차례 지키기)에서 출발하여, 환경 의식(오물버리지 말기, 마을 미화, 자연보호), 책임 의식(바가지 요금 없애기, 상품의 질 제고, 신용거래), 민주시민 품성(친절, 인사, 유머, 협동), 국제화 시대의 덕성(외국인에게 친절, 세일즈맨 의식 생활화, 외국어 배우기), 주체 의식(전통문화에 대한 자신과 긍지, 사대 의식 지양)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생활 전반에서 ‘의식’을 개혁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었다.
88 계기 국민의식 개혁 캠페인 계획
사회정화위원회 관련 대통령 지시사항
1982년에 들어서도 정부는 계속해서 ‘의식 개혁’을 위한 계획을 마련했다.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보다 앞서 정부 내에 만들어진 서울올림픽대회 지원위원회는 “선진 시민의식 확립”, “질서 의식 정착”, “상거래 질서 확립”, “예의‧친절‧협동 정신” 등을 1982년의 주요 사업 과제로 정하였다. 정부 부처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내무부는 “국민의식 개혁운동”을 중요한 올림픽 준비 과제로 정하고 그 내용을 “주인 정신, 공동체 의식, 질서, 예의, 친절, 상거래 질서” 등으로 구체화하였다.
이 ‘개혁’을 위해 전두환 정부가 활용한 방법은 ‘사회정화운동’을 포함한 관변 단체들을 활용한 홍보와 캠페인이었다. 사회정화위원회는 거리 및 교통질서 확립, 행락질서 확립, 경기장질서 확립, 상거래질서 확립 등을 목표로 지속적인 캠페인을 전개했다. 새마을운동 또한 올림픽 직후부터 캠페인을 위한 계획을 수립, 1981년 12월 16일에 올림픽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친절, 근검, 정직, 청결, 질서, 품위, 전통, 미풍양속 등을 주제로 대대적인 캠페인을 전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캠페인의 내용은 웃으면서 대화하기, 책 읽는 습관 기르기, 소매치기 없애기, 양치질 자주 하기, 깨끗한 옷 입기, 약속시간 지키기, 면도하고 손톱 깎기, 옷 다려 입기 등 국민들의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100개 이상의 영역이었다. 또한 1970년대 당시 농촌의 환경 개선 사업을 수행했던 노하우를 활용하여 새마을운동의 많은 구성원들이 올림픽을 준비하는 도시 미화 사업에 참여하였다.
올림픽 유치 직후인 1981년 10월 2일 각료회의를 통해 정부는 올림픽을 준비하는 관제 캠페인 조직을 하나 더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단체가 ‘범민족올림픽추진위원회’였다.
1982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조직되기 시작한 이 단체는 후원회로서의 성격을 기본으로 하면서 ‘정신 계도’, ‘교육‧홍보’, ‘정비‧미화’ 등 캠페인과 도시 미화 사업을 병행하는 조직이었다. 그리고 ‘범민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을 넘어 해외 동포들로 하여금 고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후원할 조직을 만들기로 하였다. 이 작업은 매우 빠르게 이루어져 1982년 2월부터 4월 사이에 대부분의 시도에서 발기인 총회와 창립총회가 이루어졌고, 이후 6월부터는 해외 동포들이 가입한 후원회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국가안전기획부, 88년 서울올림픽 부문별 사업 추진 방향
서울올림픽후원회 결성 방안
정부의 방침과 지방 행정 당국의 지원 하에 자리한 민간 조직의 형태로 만들어진 이 조직은, 1985년 이후 내무부의 직접적 지도와 ˙감독 하에 자리하게 되었다. 1988년 기준 회원은 약 26만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