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속의 사람들

서울올림픽은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세계가 주목하는 거대한 행사이자 축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대표적으로, 약 2만 7천여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가 있다. 물자관리, 시설 운영, 등록, 안전관리, 관중 편익, 시상, 의전, 수송 운영, 의료지원 등 자원봉사자들은 1988서울올림픽, 그리고 1986아시안게임의 운영에 있어 전방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전체 필요 인력의 약 58%를 자원봉사 요원들이 담당할 정도로, 그 비중은 컸다.

올림픽자원봉사단모집(대한뉴스 제1561호)

올림픽자원봉사단모집(대한뉴스 제1561호)

바로 당신이 필요합니다(올림픽 자원봉사)

바로 당신이 필요합니다(올림픽 자원봉사)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자원봉사요원 모집 중간결과 분석 및 대책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자원봉사요원 모집 중간결과 분석 및 대책

1 / 3

1985년 10월 2일부터 31일까지 약 한 달로 예정된 자원봉사 요원 모집은 10월 말에 이르자 지원자가 쇄도하여 지원서 접수가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로 인해 조직위원회는 10일간 접수 기간을 연장했다. 그렇게 해서 모집된 자원봉사 요원에 응모한 이는 10만 명을 넘었고 경쟁률은 약 6대 1에 달했다. 그렇게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자원봉사자의 수는 86아시안게임 17,411명, 88서울올림픽 27,221명이었다. 유니폼, 식사, 교통비 정도를 지급 받고 노력한 자원봉사자들은 서울올림픽 성공적 개최의 숨은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 다양한 국제적 행사에서의 자원봉사 문화에 기초를 놓은 것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자원봉사요원 접수창구 현장(1)

자원봉사요원 접수창구 현장(1)

자원봉사요원 접수창구 현장(2)

자원봉사요원 접수창구 현장(2)

자원봉사요원 접수창구 현장(3)

자원봉사요원 접수창구 현장(3)

자원봉사요원 접수창구 현장(4)

자원봉사요원 접수창구 현장(4)

자원봉사요원 접수창구 현장(5)

자원봉사요원 접수창구 현장(5)

자원봉사요원 접수창구 현장(6)

자원봉사요원 접수창구 현장(6)

자원봉사요원접수창구 현장(7)

자원봉사요원접수창구 현장(7)

1 / 7

서울올림픽은 스포츠의 제전이었지만, 한국 국민들에게는 스포츠만 아니라 문화를 아우르는 거대한 축제였다. 올림픽공원에 조각 작품을 설치하는 국제 야외 조각 심포지움을 비롯하여 국제현대회화전, 한국현대미술전, 서울미술대전 등 다양한 미술전시가 이어졌고, “후기 산업사회의 세계 가족”이라는 주제로 1988년 8월 21일부터 9월 8일 사이 155명의 국내 학자와 87명의 해외 학자가 참가한 대규모 학술대회도 있었다.

국제현대회화전 추진 계획

국제현대회화전 추진 계획

국제학술회의 기획

국제학술회의 기획

올림픽미술제전이 열린 현대미술관(1)

올림픽미술제전이 열린 현대미술관(1)

올림픽미술제전이 열린 현대미술관(2)

올림픽미술제전이 열린 현대미술관(2)

올림픽미술제전이 열린 현대미술관(3)

올림픽미술제전이 열린 현대미술관(3)

올림픽미술제전이 열린 현대미술관(4)

올림픽미술제전이 열린 현대미술관(4)

1 / 6

그러나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1988년 8월 15일부터 시작된 음악 축제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스칼라 오페라단이 무대장치를 직접 가져와 공연한 오페라 『투란도트』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지만, 그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은 금단의 땅이었던 소련의 예술가들이었다. 볼쇼이 발레단과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전 세계적으로 이름난 예술가들이 한국에서 공연을 하게 되자 이에 대한 관심과 반응은 급상승하게 된다. 그 열기는 ‘소련 바람’, ‘볼쇼이 열풍’ 등의 제목으로 표현될 정도였다.

문화예술축전 볼쇼이 발레단 공연

문화예술축전 볼쇼이 발레단 공연

노태우 대통령 볼쇼이 발레단 관계자 접견

노태우 대통령 볼쇼이 발레단 관계자 접견

노태우대통령 투란도트 공연관람 후 연기자 악수

노태우대통령 투란도트 공연관람 후 연기자 악수

1 / 3

여기에 1988년 3월 맥도날드 1호점의 개장과 아카데미 영화제 음악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음악가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가 작곡한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 또한 많은 국민들에게는 서구와 한국 사이의 문화적 거리를 줄이는 경험으로 다가왔다.

서울올림픽대회 주제가 제작 계획

서울올림픽대회 주제가 제작 계획

손에 손잡고(국방뉴스 제1097호)

손에 손잡고(국방뉴스 제1097호)

이와 같이 거대한 축제의 장이 열리면서, 특히 금단의 땅으로 여겨졌던 사회주의권 국가들에서 스포츠 선수들만 아니라 미술가, 학자, 음악가, 무용수들이 한국을 찾아오고 서구를 상징하는 문화 상품들이 직수입되면서, 많은 국민들은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한국과 세계 사이의 심리적 거리가 한층 가까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서울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이벤트와 더불어 개최된 많은 부대 행사들로 인해 한국의 국민들은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라는 표어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 김동인, 「부랑인복지정책의 전개과정에 관한 연구」, 경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
  • 김원, 「부마항쟁과 도시하층민」, 『정신문화연구』 29(2). 2006.
  • 박해남, 「서울올림픽과 1980년대의 사회정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학위논문, 2018.
  • 범민족올림픽추진중앙협의회,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국민참여운동백서』, 1988.
  • 사회정화위원회, 『사회정화운동사』, 1988.
  •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1989,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공식보고서』, 1989.
  • 최상오, 「대기업 성장과 정부-기업관계」, 『역사비평』 84, 2008.
  • 윤충로, 「새마을운동 이후의 새마을운동-1980년대를 중심으로」, 『사회와 역사』109, 2016.
  • 이행원, 「스포츠 자원봉사의 성공적 활용사례 분석」, 『한국사회체육학회지』 43, 2011.
  •  
  • 내무부, 『새마을운동』, 1982; 1983; 1984.
  • 『경향신문』, 1984년 3월 3일, 11면.
  • 『중앙일보』, 1980년 8월 4일, 1면; 1981년 12월 16일, 1면.
  • 『동아일보』, 1981년 10월 3일, 3면; 1988년 8월 20일, 3면; 1988년 9월 13일, 18면.
  • 『매일경제』, 1981년 11월 21일, 11면; 1988년 9월 1일, 3면; 1982년 1월 22일, 11면.
  • 『조선일보』, 1985년 10월 31일, 9면; 1986년 3월 13일, 9면; 1988년 10월 2일, 19면.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기록콘텐츠 우표와 포스터 중 포스터 컬렉션, 198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