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사람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사회 질서’를 만들기 위해, 또 ‘국민 의식’을 개혁하기 위해 활용된 수단은 캠페인과 교육뿐만이 아니었다. 단속과 수용 역시 올림픽을 준비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1980년 8월부터 시행된 ‘사회악일소조치’와 ‘삼청교육’을 통한 단속과 수용은 일회에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 1981년 초 대통령의 명령 하에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이 시행되어 수천 명이 ‘복지시설’이라는 이름의 수용 시설로 보내진 바가 있었다.

구걸 행위자 보호 대책사업 추진상황 보고

구걸 행위자 보호 대책사업 추진상황 보고

「종점 손님들」

「종점 손님들」

형제복지원 현황

형제복지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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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과 수용은 올림픽 개최 결정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1981년 말 보건사회부는 “88올림픽 등에 대비,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깨끗한 인상을 주고 국민들의 불쾌감을 없애기 위해 이제까지 단속에 치우쳐왔던 부랑인 문제를 복지 차원에서 해결키로 하고 내년에 재활사업을 강력히 추진할 방침”을 발표했다. 올림픽을 생각해 부랑인들을 단속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지시설’에 지속적으로 수용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1982년 초 보건사회부는 “부랑걸식자의 상존이 국가의 성장 면모에 손상을 입히고, 관광객과 국민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를 들며 부랑인 시설 확충계획을 만들었다. 1983년에는 올림픽 준비사업 6개 항목 중 하나로 ‘부랑인 대책’을 선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수용 시설의 확충’(82년 9개소, 83년 2개소), ‘자활갱생 지원’(시설운영비 지원 및 훈련 기자재 보급), 그리고 ‘구걸 행위자 단속 강화’가 1983년의 주요 사업이었다. 1984년 역시 부랑인 대책은 6개 준비사업 항목 중 하나로 등장한다. 이 해도 자활갱생의 적극 지원(시설을 8개에서 11개로 증설 및 시설운영비 지원)과 구걸 지원이 중요한 부랑인 대책이었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1981년 7,156명이던 ‘복지시설’ 수용 부랑인 1987년 15,4378명까지 증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건사회부 1982년도 주요업무계획 - 올림픽 대책

보건사회부 1982년도 주요업무계획 - 올림픽 대책

서울특별시보건사회국, 시립갱생원생활관 신축 계획

서울특별시보건사회국, 시립갱생원생활관 신축 계획

보건사회부, 1983년도 주요업무계획 - 올림픽 대비사업

보건사회부, 1983년도 주요업무계획 - 올림픽 대비사업

보건사회부, 1984년도 주요업무계획 - 특별보고사항

보건사회부, 1984년도 주요업무계획 - 특별보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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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을 하는 이들 역시 지속적인 단속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정부는 이들을 ‘잡상인’이라 불렀다. 1982년 초부터 서울시는 서울역에서 광화문 사이대로, 태평로, 세종로, 퇴계로, 을지로, 강변로, 성수대로, 금호대로 등 외국인들이 방문할 수 있는 지역을 절대 금지 구역으로 정하고, 이곳에서의 노점상 영업을 금지했다. 이듬해 대통령은 “주요 경기장 주변과 대로변 잡상인들은 특정 지역으로 유도”할 것을 지시하였고, 1984년 4월부터는 서울시 전역에서 노점상 단속이 있었으며, 1988년에는 총리실 산하 현장 점검반이 단속을 수행한 기록이 존재한다.

법무부, 1982년도 주요업무계획 - 올림픽지원대책

86아시아.88올림픽 추진 상황 보고시 대통령 각하 지시(1983.4.15)

한편, 법무부는 ‘질서’라는 목표를 위해 ‘올림픽 저해사범’이라는 범주를 새로이 만들어냈다. 국위를 손상하고 질서를 침해하는 이를 단속하겠다는 계획이었는데, 매우 추상적인 상기의 죄목은 이후 다음과 같이 구체화된다. 검찰은 1982년 3월 10일 서울올림픽 및 아시아경기대회 준비 세부시행계획을 입안하면서 다음과 같이 단속대상을 정의했다. ① 불순세력 및 국제범죄조직(선수나 관광객을 가장한 공산계열 및 불순세력, 국제테러단 또는 마약 조직, 기타 불법 목적을 가진 단체 및 조직원), ② 관광저해사범(관광객 대상 치기배 및 폭력배, 물품강매, 기타 올림픽 및 관광 저해), ③ 물가 및 가짜 부실사범(가짜 부실 물품의 제조 및 판매, 가짜 문화재 및 모조품 판매, 부정식품 제조·판매, 부당요금 징수, 기타 유통질서 교란), ④ 퇴폐 및 사회정화 저해사범(관광업소 윤락행위, 유흥업소 공연음란, 외설문서·도화·음반 등의 제조·판매, 마약류 밀조·밀매, 고유의 선량한 풍속을 해하는 퇴폐 행위), ⑤ 질서침해사범(교통질서 문란, 공중도덕 문란, 행락질서 문란)이 그것이다.

법무부, 1982년도 주요업무계획 - 올림픽지원대책

법무부, 1982년도 주요업무계획 - 올림픽지원대책

서울올림픽 및 아시아 경기대회 준비 세부시행계획

서울올림픽 및 아시아 경기대회 준비 세부시행계획

위 범주 중 특히 집중적인 단속의 대상이 된 것은 ‘관광저해사범’과 ‘질서침해사범’이었다. 1982년도만 해도 56명의 관광사범과 110,494명의 질서침해사범이 단속되었고,1) 1985년에는 관광 사범 266명과 질서침해 사범 13,077명이 단속되었으며,2) 1986년에도 9,027명이 ‘관광사범’ 이라는 이름으로, 17,706명이 ‘질서침해사범’이라는 이름으로 단속대상이 되었다.

아시안게임저해사범

아시안게임저해사범

아시아경기대회 대비 범죄단속 계획

아시아경기대회 대비 범죄단속 계획

1986년부터 ‘올림픽 저해’라는 집회와 시위 등을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당시 정부가 강조하던 ‘사회안정’을 침해하는 행위를 ‘올림픽저해사범’으로 간주한 것이다. 1986년 초 법무부는 올림픽 주요 업무 계획에서 “대회기간을 전후한 사회안정 저해 사범을 엄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5월 검찰의 “86아시안게임 저해사범 단속” 공문은 중점 단속의 대상 중 사회안정 파괴 사범(불순세력의 사회교란 책동, 시위·농성 등 불법 집단행동, 국외범죄 조직의 국내 잠입)을 맨 앞자리에 두기 시작했다. 아시안게임이 다가오면서 단속은 강화되었다. 법무부는 검찰로 하여금 1986년 3월부터 “올림픽 저해 사범” 단속을 분기별로 보고케 했다가 6월부터는 단속 결과를 매월 보고하고 점검을 받도록 하였다.

86,88 양대회 저해활동 저지 의뢰

86,88 양대회 저해활동 저지 의뢰

86아시안게임 저해사범 단속지침

86아시안게임 저해사범 단속지침

올림픽 저해사범 단속보고 및 외국인 범죄사건 처리

올림픽 저해사범 단속보고 및 외국인 범죄사건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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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과 개헌, 대통령 선거 등을 거친 뒤에도 ‘사회안정’을 내세우고 정부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와 행동을 ‘올림픽 저해’로 보는 시각은 여전했다. 1988년 7월 1일 내무장관은 시도지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올림픽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국론 분열, 그리고 자율화에 편승한 집단행동이 잇따르고 있다”고 상황을 정의하고 “올림픽 저해 요인은 지방행정의 역량을 총동원, 이를 해소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3) 1988년 4월 28일, 제주지방검찰청은 1988년 5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를 서울올림픽대비 범죄단속 기간으로 정했는데, 이때 가장 우선시된 “중점 단속 대상 범죄”는 “불순세력의 사회 교란 행위”와 “시위, 농성 등 불법 집단행동”이었다.

1988서울올림픽 대비 범죄단속 계획(제주도)

1988서울올림픽 대비 범죄단속 계획(제주도)

금요협의, 올림픽 특별점검

금요협의, 올림픽 특별점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