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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서울아시아경기대회 - 아시아경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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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유치

88올림픽서울유치결과보고

HA0001887(0001)
88올림픽서울유치결과보고

한국이 아시아경기연맹에 가입한 것은 1954년이었다. 1979년 8월 22일 국민체육진흥심의소위원회에서 신현학 부총리가 "올림픽대회를 위한 시설이 준비되면 아시아경기대회도 같이 유치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이와 같은 소위원회 건의사항에 대하여 전두환 대통령이 재가함으로써 유치방침이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장이 10월 8일 제24회 올림픽대회 유치계획과 함께 제10회 아시아경기 유치계획을 발표함으로써 공식화되었다. ’86서울아시아경기대회 추진은 대회 유치가 확정된 1981년부터 1982년까지의 계획수립단계, ‘83~’84년까지의 사업본격 추진단계, ’85년부터 ’86년 7월까지의 준비사업 마무리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1986년 8월부터는 모든 준비가 현장을 중심으로 추진되어 대회에 임했다.

대회 참가규모 및 운영

86아시아88올림픽대회조직위사무기구통합안

HA0003774(0001)
86아시아88올림픽대회조직위사무기구통합안

’86 서울아시아경기대회는 사상 최대 규모인 27개국 선수단 4,839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로의 기량을 겨루었으며, 세계 주요 스포츠기구의 대표 65개국 947명, 보도진 42개국 4,565명이 참가하여 참가 규모면에서 역대 어느 대회보다도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20개국 1,130명이 참가한 가운데 32종의 문화·예술행사가 개최되었고, 경기와 문화행사를 포함하여 직접 행사 관람 인원만 약 400만 명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의 행사가 되었다. 특히 올림픽대회를 방불케 할 만큼 고도의 첨단 전자시스템이 아시아경기대회에 사용된 것도 서울대회가 처음이었다.

’86 서울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는 1986년 1월에 대회를 본격 운영할 대회운영본부 조직체계를 확정했다. 조직위는 기존의 사무처와 경기장·행사장 운영본부를 합하여 대회운영체제로 전환, 개편했다. 대회운영본부는 본부장 총괄하에 경기장·행사장·운영본부 및 지원부서의 업무를 조정 통제하고 각 본부 부서 간 업무협조 및 조정, 각 사업본부 및 부서로부터 제기된 문제의 해결, 각 장소 간 자원의 재분배 및 조정을 담당했다.

1982년 4월에 대회조직위원회가 발족한 이후 1986년 말까지 대회에 소요된 비용은 616억 원이었다. 한편, 대회로 인한 수입은 632억 원으로 적자 없는 균형예산으로 집행되었다. 특히 632억 원 가운데 1.3%에 불과한 8억 원만 국고에서 지원하여 국민 부담이 거의 없이 대회를 치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86~’88 양 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처를 통합 운영함으로써 ’86 아시아경기대회로서는 인력·물자·시설 등 연계활용이 가능한 부문을 공동 활용하여, 인건비·시설비·기관 운영비 등을 대폭 절감할 수 있었다.

대회진행 및 성과

제10회아시아경기대회개회식태극기입장

CET0075092(3-1)
제10회아시아경기대회개회식태극기입장

서울아시아경기대회백서

C11M21835(1-1)
C11M21913(1-1)
C11M21836(1-1)
서울아시아경기대회백서

아시아인의 ‘영원한 우정과 전진’을 다짐하는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는 1986년 9월 20일 잠실에 자리 잡은 서울종합운동장 종합경기장에서 화려하게 개막되었다. 전두환 대통령과 나카소네 일본 수상을 비롯한 국내·외 귀빈,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장을 비롯한 100여명의 국제스포츠 지도자들과 경기장을 가득 메운 8만여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시아 27개국 4,800여명의 선수들은 저마다 나라의 명예를 걸고 선전을 다짐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개회선언에 이어 공수특전단 단원들이 오색연기를 내뿜으며 헬리콥터에 매달려 축하비행을 한 후 공중 낙하했다. 2,500마리의 비둘기가 상공을 선회하는 가운데 대회기가 게양되었고, 경주 화랑교육원에서 채화된 성화가 육상선수인 장재근·박미선 선수에 의해 성화대에 점화되었다. 이날부터 10월 5일까지 16일간 서울종합운동장을 비롯한 33개 경기장에서 25개 종목 267개의 금메달을 놓고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그동안 쌓아 온 기량을 마음껏 겨루었다.

한국선수단은 복싱의 전 체급 경기에서 금메달 12개를 휩쓸었고, 유도에서도 8체급 중 6체급을 석권함으로써 아시아 최강국임을 확인했다. 대회 마지막 전날까지의 메달 경쟁에서 한국은 중국과 똑 같은 92개의 금메달을 차지해 어깨를 나란히 했다. 4,000만 인구의 한국이 10억 인구의 중국과 대등한 성적을 올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10월 11일 대회 마지막 날 한국은 축구에서 금메달 1개를 추가하는데 그쳤고, 중국은 육상에서 2개의 금메달을 추가함으로써 한국은 결국 1개의 금메달 차이로 2위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경기내용에서 전 종목의 고른 성장 등 중국에 못지않은 성적을 올렸으며, 국민적 성원과 선수들의 불같은 투지가 합해질 경우 우리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소중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