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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유니버시아드경기 - 유니버시아드 경기대회

자유와 이성,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전 세계 대학인들의 체육축제가 바로 유니버시아드대회다. 유니버시아드대회는 국제올림픽경기대회, 아시아경기대회와 더불어 한국이 참가하는 3대 국제종합경기대회의 하나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대학스포츠가 국가를 대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니버시아드대회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오리건대학:연희대농구시합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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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오리건대학:연희대농구시합기념촬영

유니버시아드대회는 1923년 5월 프랑스 파리 대학의 학생들이 주최한 국제학생경기대회가 그 기원이며, FISU는 1949년에 공식 창립되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전 세계 대학생들의 체육축전으로 승화된 것은 1959년에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이 주관하여 실시한 이탈리아 토리노 대회 때부터이며, 현재까지 2년마다 한 번씩 개최해오고 있다. 한국은 1959년 8월 27일부터 9월 6일까지 이태리 토리노에서 개최된 대회부터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때는 한국이 국제대학스포츠연맹에 가입되지 않은 상태여서 대한육상경기연맹 산하 한국대학육상경기연맹 소속 선수단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는데, 그 규모는 임원 1명과 선수 5명이었다. 이 대회의 입상 성적은 육상 넓이뛰기에서 서영주 선수가 6위를 한 것이 전부였다.

폐회식선수단입장

CET0059523(3-1) 폐회식선수단입장

정일권국무총리유니버시아드대회선수일행접견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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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권국무총리유니버시아드대회
선수일행접견담소

한국이 이 대회에서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도쿄 유니버시아드대회부터였다. 한국은 1961년 소피아 대회, 1963년 포르트알레그레 대회, 그리고 1965년 부다페스트 대회에 연이어 불참하다가 이웃나라 일본에서 열린 도쿄 대회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대회에 공식적으로 참가하기까지 우리에게는 어려움이 있었다. 한국이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KUSB)를 조직하여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에 가입을 해야 했는데 도쿄유니버시아드대회 직전까지 그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고 있었다. 즉 , 기존의 대하'한국대학스포츠연합(KUSU)'이 있었으나 이를 KOC 소속의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KUSB)와 통합하여 FISU에 정식 가입을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다행히 당시 민관식 대한체육회 회장과 KUSU(KUSB 전신) 회장이었던 김연준 한양대학교 설립자 겸 총장이 협의하여 도쿄 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 직전인 1967년 8월 24일 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극적으로 참가하게 된 도쿄유니버시아드대회 한국선수단은 박신자 선수가 활약한 여자농구 팀에서 금메달 1개, 남자배구와 유도에서 은메달 9개, 남자체조단체전에서 동메달 1개를 따내 종합성적 10위를 기록했다.

1970년 토리노유니버시아드대회에 한국은 육상·농구·배구·펜싱 등 4개 종목 47명의 선수를 출전시켰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는 배구에서만 동메달 하나를 건졌다. 이후 1973년 모스크바유니버시아드대회도 농구와 배구에서 각각 동메달 하나씩을 따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77 소피아대회에서도 남자배구가 동메달 하나를 따냄으로써 겨우 체면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1979년 멕시코대회에서는 남자배구가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1981년 부카레스트 유니버시아드대회에 한국은 수영을 제외한 7종목에 출전했지만 레슬링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3개, 테니스 혼합복식에서 은메달 하나를 더 추가하는데 그쳤다.

스포츠(유니버시아드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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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유니버시아드대회)

일본 고베에서 개최된 ’85 유니버시아드대회에는 106개국 3,947명의 대학생이 참가했다. 8월 24일부터 9월 4일까지 육상·수영·수구·다이빙·체조·유도·축구·농구·배구·테니스·펜싱 등 11개 종목에서 열전이 벌어졌다. 이 대회에 한국은 ’86·’88 양 대회 준비차원에서 11개 전 종목에 152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출전시켰다. 이 대회에서 거둔 한국선수단의 성적은 금메달 3개와 동메달 5개로 종합성적 12위에 멈췄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금메달 3개가 모두 유도 종목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하형주(95kg), 조형수(78kg), 윤용발(65kg) 선수가 모두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강적들을 물리치고 우승함으로써 ’86·’88 대회의 전망을 밝게 해 주었다.

1991년 영국 쉐필드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한국선수단은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 동메달 5개를 획득하여 종합성적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황영조 선수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대회에서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우승한 이후 국제종합경기대회 사상 첫 마라톤 우승을 거두어, 장차 세계적인 마라토너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1995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에 한국은 10개 종목 183명이라는 대회 사상 최대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10개, 은메달 7개, 동메달 10개의 풍성한 성과를 거둬 주최국인 일본을 제치고 종합 5위를 차지했다.

1999년 7월 4일 스페인 팔마에서 11일간의 대학스포츠 축제가 열렸다. 화려한 개막식에 이어 펼쳐진 이 대회는 육상·수영 등 146개 세부종목으로 이루어졌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9개로 종합 13위를 차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베이징유니버시아드대회는 2001년 8월 22일부터 9월 1까지 전 세계 169개국에서 6,9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화려하고 성대하게 펼쳐졌다. 191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한 한국은 금메달 3, 은메달 10, 동메달 14개로 ’99 팔마대회의 부진을 씻고 종합 10위권 달성에 성공했다.

2003 대구유니버시아드에 이어 열린 2005년 유니버시아드대회는 터키 이즈미르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강세종목인 양궁이 금메달 4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확보하는 등 나름대로 선전했고, 애초 목표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금메달을 모두 11개나 따내는 성과를 올렸다. 한편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2007년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15개, 은메달 18개, 동메달 18개를 획득하여 종합 5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