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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금융실명제 17년,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정의 실현의 시작

난 12일은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지 17년이 되는 날이다. 1993년 8월 12일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우리 현대 금융과 경제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e-기록 속으로」 8월호는 ‘금융실명제 실시 17주년’을 기획특집으로 준비했다.

금융실명제 실시(1993)

금융실명제란 금융기관을 통한 예금 등 금융자산거래를 “실지명의”에 의하도록 「특별법」에 의하여 의무화한 것이다. 영·미 등 서구에서는 계약시 서명하는 관행에 의해 금융실명제가 정착되었으며, 스웨덴·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세법」에 실명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1982년 금융실명제에 대해 처음 논의가 시작된 이후 10여 년 만에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로 보아 얼마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단행된 정책이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금융실명제 도입 이전에는 1961년에 제정된 「예금·적금 등의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융기관에 예입 또는 기탁된 예금·적금 등에 관해서는 비밀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여 비실명거래가 공식적으로 허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1982년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을 계기로 사채 등 지하경제가 만연하고 가명·차명 계좌를 허용했던 기존 금융경제질서에 변화가 요구되었다.

1982년 12월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법률」제정으로 주민등록표상 실지명의의 금융거래는 의무화되었으나, 전산화 등의 준비기간을 고려하여 1986년 1월 1일 이후 대통령령이 정하는 날 시행하는 것으로 유보함으로써 실질적인 금융실명화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또한 1988년 10월 정부는 「경제의 안정성장과 선진화합경제추진대책」을 통해 1991년 1월 1일 금융실명제를 전면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가, 이것 역시 무기한 유보하였다. 유보의 불가피성에 대하여 정부는 「금융실명제 실시유보의 배경과 현재의 상황」이라는 당시 기록에서 “우리경제가 86~88년 고도성장 뒤에 오는 순환적 경기조정과 구조적 어려움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1989년 이후 급격한 경기둔화, 국제수지의 적자반전, 물가불안 등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어,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경우 경제전반에 불확실성을 증폭시킴으로써 자금이 대규모로 금융시장을 이탈하여 부동산 투기의 확산, 기업자금조달의 애로 및 경제운용상의 혼란을 초래하고 가계와 기업의 저축 및 생산적인 투자의욕을 감퇴시키는 등 각 경제주체의 ‘경제하려는 의지’가 약화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1993년 정부는 다시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긴급명령을 단행하였다. 이것은 흐트러진 금융관행을 바로잡고 공평과세의 기초를 확립함으로써 경제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정부의 의지표명이었다. 당시 동향보고 기록을 살펴보면, 긴급명령 시행 후 실명전환 의무기간 동안 금융거래자의 81.3%가 실명확인의 절차를 밟았고, 가명 또는 차명계좌의 6조 2,379억원이 실명계좌로 전환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IMF사태로 인하여 개혁입법은 위기를 맞아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정부는 1997년 12월 26일 긴급명령을 대체하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지만,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무기한 유보되어 향후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았다.

  • 김영삼 대통령 금융실명제 관련 특별담화문 발표(1993)

김영삼 대통령 금융실명제 관련 특별담화문 발표(1993)

갑작스럽게 발표된 금융실명제에 대한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일부 국민들은 헌법재판소로 달려가 금융실명제가 위헌적인 제도라고 주장했다. 3년에 가까운 심리 과정을 통해 헌법재판소는 “이른바 통치행위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작용은 국민의 기본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한계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고,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사명으로 하는 국가기관이므로 비록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작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밝히며 헌법재판소가 금융실명제에 대해 최종 판단을 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해서는 가급적 사법적 판단을 자제해왔던 헌법재판소였기에 당시 결정은 다소 이목을 끌었다.

※통치행위란 고도의 정치성을 가지는 국가기관의 행위로, 법적구속을 받지 않으며, 법원의 사법심사가 제한되는 행위를 말한다.

“금융실명제는 기본권 침해 아니야”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기존 금융실명법으로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하여도 참다운 의미와 실효성을 반감시킨다고 하고 있는바, 그렇다면 대통령은 기존의 금융실명법으로는 앞서 본 바와 같은 재정·경제상의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긴급명령을 발한 것임을 알 수 있고, 대통령의 그와 같은 판단이 현저히 비합리적이고 자의적인 것이라고 인정되지 않으므로 이는 존중되어야 한다”며 금융실명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이후 현재까지도 우리는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 금융실명제 실시

  • 이처럼 정부의 금융실명제 추진은 평탄하지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탈루세원을 포착하고 지하거래를 위축시키는 등 큰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앞으로도 금융실명제가 금융거래를 투명화하고 더 나아가 소득계층간 불균형을 해소하여 분배의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