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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민족의 자주독립을 온 세계에 선언한 날 「3.1절」

3.1 운동은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일본의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일어난 항일만세운동으로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다. 3.1 운동과 정신을 기념하는 3.1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때부터 국경일로 지정하여 기념하였으며, 일제강점기 동안 항일운동의 중심축이 되었다.

  • 3.1 운동 당시 사진

  • 3.1운동 당시 광경

일반적으로 3.1절 기념행사는 정부요인 등이 참석하는 공식행사와 순국선열의 유족 및 애국운동가들로 결성된 광복회 회원이 주축이 되는 추념행사로 구분된다. 추념식은 탑골공원(파고다공원)에서 거행되는데 이곳이 1919년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3.1운동의 발상지이기 때문이다. 당시 민족대표 33인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로 하였으나 일제의 무력진압을 염려하여 인사동 태화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시각 탑골공원에 모여 있던 학생과 시민들은 자체적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종로, 서울역, 정동, 이화학당, 서대문 등으로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는데, 이것이 전국으로 확대된 3.1만세운동의 시작이었다. 이후 만세운동은 해외로도 확대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무자비하게 탄압되었다.

  • [대한뉴스 제53호] 제36회 3.1절 경축(1955)

3.1 운동은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폭넓게 참여한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으로써 나라 안팎에 민족의 독립의지와 저력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이를 계기로 같은 해 4월 11일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독립운동을 체계화, 조직화, 활성화할 수 있었다.

01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선언일’ 기념으로 민족의 힘을 모으다

임시정부는 1919년 12월부터 국무회의와 임시의정원의 논의를 거쳐 1920년 3.1절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국경일 명칭은 ‘독립선언일’로 정하였다. 다음 해에 3.1 독립선언 1주년 기념식이 상해 올림픽대극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는데, 국무원과 임시의정원 의원 등이 참석한 기념식과 상해민단이 주최한 대축하식, 자동차 만세시위 운동으로 진행되었다. 당일 이른 아침부터 상해 곳곳의 한인들은 상점에 태극기를 걸어 ‘독립기념일’을 기념하고 축하하였다.
이후에도 3월 1일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자들과 광복을 열망하는 온 민족의 가장 큰 기념일이었으며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미주 등 해외동포들도 다양한 행사를 통해 이 날을 기념하며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였다. ‘독립선언일’, ‘3.1절’이라 부르며 기미년 3월 1일을 기념하는 전통은 1945년 광복을 맞이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02 3월 1일, 대한민국의 국경일 3.1절이 되다

광복 후 처음으로 맞이한 3월 1일은 미군정 때였다. 미군정은 1946년 2월 21일 군정법률 제2호 「경축일 공포의 관한 건」을 공포하여 이날을 경축일로 지정하였다. 이 경축일은 일본의 압박과 지배를 기쁘게 벗어나 대한독립을 최초로 선언한 제17회 기념일로써 대한독립의 대의를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애국열사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으로 의미를 제한하였다. 또, 행정명령 13호 「3.1일(독립일) 기념축하식 거행에 관한 건」을 공포하여 지정된 장소 이외의 축하식을 제한함으로써 광복이후 첫 3.1절 기념행사의 규모를 축소시켰다.
정부수립 이후 1949년 10월 1일 법률 제53호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는데 이 법에서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이 4대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이로써 3.1절은 임시정부로부터 내려온 국경일의 전통을 계승하게 되었다.

  • 3월1일(독립일) 기념축하식 거행에 관한 건(1948)

03 노래로 기억하는 그날, ‘독립군가’에서 ‘3.1절 노래’로

  • 제11회 민족대표33인중 고인 합동 추념식 광경(1962)

  • 제60주년 3.1절 기념식(1979)

1920년 3월 4일자 《독립신문》에는 첫 번째 상해의 3.1절 축하식 행사기록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임시정부 및 의정원의 축하식은 ‘애국가 제창, 총리의 식사, 의장의 축사, 학생일동의 독립군가(“누가나가 싸호려난가”) 합창, 대한민국 만세삼창’으로 진행되었다. 3.1절 축하노래로 ‘독립군가’가 불려졌다.

이 노래 가사에는 3.1 운동 이후 점점 교묘해지는 일제의 탄압과 회유에 맞서 기미년 삼월일일의 감동을 기억하면서 독립운동의 결속을 바랐던 애국지사들의 마음이 녹아있는 듯하다.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3.1절 노래는 1946년 위당 정인보 선생이 작사하고, 박태현 선생이 작곡한 창작곡이다. 아마도 미군정시기 3.1절 기념축하식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1950년 2월 25일 총무처 장관은 이 ‘3.1절 노래’를 입법, 사법, 행정부에 송부하였는데 이를 통해 3.1절 공식기념행사 노래로 지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삼일절 경축식 행사에 관한 건(1950)

당초 총무처는 3.1절 노래 등 국경일 제정을 기념하여 국경일 노래 가사를 현상공모하였는데, 공식 국경일 행사에서 통일적인 노래가 불려져야 한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기존의 정인보 선생 작사의 3.1절 노래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3.1 운동 103주년이 되는 해이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다치는 전쟁이 세계 곳곳에서 아직 벌어지고 있는 지금 100년 전 민족의 독립을 열망하며 비폭력 저항 운동을 벌였던 우리 선조들의 정신이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