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메뉴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내용 바로가기

하단정보 바로가기

졸업 : 헤어짐의 슬픔이 사라져가는 ‘졸업식’

‘졸업’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콧잔등이 시큰해오던 때가 있었다. 선생님, 친구들, 정든 교정 모두를 떠나는 이별의 아픔과 더불어 진학률이 높지 않았던 때는 학교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더욱 슬픈 졸업식이었다. 개근상, 우등상 등 상장을 받는 학생들의 이름이 차례로 불려지고, 재학생 대표의 ‘송사’와 졸업생 대표의 ‘답사’를 들을 때면 졸업생들의 흐느낌이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졸업식 노래’를 부를 때쯤은 다들 목이 반쯤 잠긴 상태가 되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 한아름 선사합니다......”로 시작하는 눈물과 함께 부르던 ‘졸업식 노래’는 윤석중 작사·정순철 작곡으로 1946년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졸업식은 많이 간소해졌다. 재학생과 졸업생의 보내는 정과 떠나는 정이 담긴 송사·답사도 생략되는 경우가 많고, 날씨가 춥다는 핑계로 운동장이 아닌 교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졸업식을 치르기도 한다. 졸업식 후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학생들도 줄었다. 헤어지기 아쉬워 선생님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던 졸업식 풍경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제3회 교통부 효창유치원 졸업식 썸네일 이미지
제3회 교통부 효창유치원 졸업식(1958)
제10회 교통고등학교 졸업식 썸네일 이미지
제10회 교통고등학교 졸업식(1961)
남산 국악예술학교 제6회 졸업식 썸네일 이미지
남산 국악예술학교 제6회 졸업식(1968)

‘대학의 학위복은 1908년 제중원 졸업식에서 시작

우리나라는 미국의 영향을 받아 졸업식에서 학위복을 입게 되었는데, 1899년 문을 연 최초의 현대식 고등교육기관이자 의(醫)학교인 제중원(濟衆院)의 제1회 졸업식(1908년)때 처음으로 학위복을 입었다. 당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유학생들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학위복은 흰 바지와 저고리에 흰 두루마기를 입어 정장차림을 하고 그 위에 검은 가운을 입은 형태였다. 머리에는 검은색 술이 달린 검은 사각모도 썼는데, 검정색의 단정한 학위복과 네모진 학사모는 중세 수도사들의 예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후 1914년 이화학당 제1회 졸업식 때도 학위복을 입었으며, 1945년 광복 후에도 기존에 착용해 온 학위복을 모방하여 사용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대학에서 졸업식 때 학위복을 입고 있다.

[대한뉴스 제611호] 빛나는 졸업
[대한뉴스 제611호] 빛나는 졸업(1967)

졸업식과 교복, 그리고 밀가루

중·고등학교 졸업식 때에는 어김없이 밀가루가 등장했다. 졸업생들은 이날을 기다렸다는 듯 밀가루를 검은 교복에 뒤집어썼다. 일종의 교복 화형식이었다. 자유분방하고 혈기왕성한 나이에 통제와 억압의 대명사였던 교복을 훼손함으로써 그동안 억눌렸던 마음을 해소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밀가루를 택한 것은 ‘새하얀 가루’로 새출발을 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교복이 검은색이었기에 가장 효과적으로 백지화시킬 재료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분필가루가 뿌려졌는데, 학교에서 분필가루 단속을 하자, 1970년대부터 밀가루로 바뀌었다. 1983년 교복 자율화 조치로 학생들이 사복을 입으면서 졸업식에서의 ‘밀가루 세례’는 잠깐 사라졌다가, 1986년 교복이 부활하면서 다시 등장하였다. 이후 밀가루와 달걀을 던지고 괴성까지 질러대는 학생들의 졸업 뒤풀이 풍속은 점점 과격하게 변질되어 교사와 경찰이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이제 졸업식 당일 중·고등학교 교문 앞에서는 생활지도부 교사가 학생들의 가방을 열어 밀가루나 계란, 케첩 등 이른바 ‘뒤풀이 용품’이 들어 있는지 검사를 하고, 경찰관들이 학교주변을 맴돌며 예방활동에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에는 졸업식에서 교복을 찢는 대신 후배들에게 ‘교복 물려주기’를 하는 학교도 있으며, 담임교사와 졸업생이 서로 편지를 읽어주거나 연주회를 여는 등 건전한 졸업식을 내세우며 학교 마다 개성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제8회 성심여자고등학교 졸업식 썸네일 이미지
제8회 성심여자고등학교 졸업식(1969)
경기국민학교 제6회 졸업식 썸네일 이미지
경기국민학교 제6회 졸업식(1970)
방송통신대학 제1회 졸업식 썸네일 이미지
방송통신대학 제1회 졸업식(1974)

시대를 대변하는 졸업 선물 변천사

선물은 그 시대의 경제, 사회 상황을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졸업 선물 역시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 1950년대는 6.25전쟁의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선물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도 힘든 때였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어려웠던 경제 사정으로 졸업식에 부모님과 함께 짜장면이나 먹을 수 있으면 다행으로 여겼다. 1960년대 역시 먹고살기에 바빴지만 그럴수록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졸업·입학 선물을 주고받기 시작했는데 졸업 선물로는 졸업장을 소중히 보관할 수 있는 졸업장 보관통이 1순위였다. 졸업장을 둘둘 말아 넣을 수 있는 긴 원통 모양의 보관통 중에서 ‘벨벳 졸업장 보관통’이 단연 최고였다. 학생도 귀하고 졸업장은 더욱 귀하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에는 경제개발계획과 중동건설 붐으로 국민소득이 오르고 국민들의 교육열이 높아갔다. 이때 졸업 선물 1위는 만년필이었는데, 잉크만 갈면 평생 간직할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 사회로 진출하는 졸업생들에게는 구두도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1980년대는 본고사가 없어지고 학력고사 세대를 배출한 시기로, 학생들에게 최고 선물은 손목시계와 통기타였다. 외국의 고가 스포츠 브랜드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고급 운동화도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선물로 떠올랐다. 1990년대 전자산업이 발전하면서 선물도 전자제품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1990년대 초반에는 ‘워크맨’으로 대표되는 휴대용 미니 카세트, 후반에는 CD 플레이어, 전자사전, 삐삐 등이 인기 있는 선물로 등장했다. 2000년대에는 초고속인터넷이 상용화 되면서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 노트북, MP3 플레이어 등이 선물 앞자리를 차지했다. 2010년 이후 현재까지는 졸업·입학 선물로 스마트폰,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이나 PC를 연결하여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기가 우선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졸업은 그동안 열심히 공부한 것을 격려하고 축하해주는 자리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졸업식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좋은 추억의 한 순간이 되도록 졸업식 풍경도 바뀌어가야 할 것이다.

(집필자 : 남애리)

참고자료

  • 네이버 지식백과(http://terms.naver.com)
  • 연합뉴스, 「중학 졸업식 알몸 뒤풀이 사진 인터넷 유포」, 2010.2.13.
  • 강원도민일보, 「졸업·입학 선물 변천사」, 2011.2.7.
  • 문화일보, 「교사는 가방 뒤지고 경찰은 감시… ‘잃어버린 졸업식 추억’」, 2011.2.16.
  • 충청일보, 「대전서 여중생 졸업식 뒤풀이 '물의'」, 2011.2.17.
  • 에듀뉴스, 「경기 수지중, 졸업생 80% 이상 ‘교복 물려주기’」, 2012.2.12.
  • 인천일보, 「밀가루·알몸 뒤풀이 옛 말 … '졸업식 문화' 新풍속도」, 2016.2.3.
  • 헤럴드경제, 「달라진 졸업선물 풍토, 강남성형외과 지방이식 수술 수요 증가」, 2016.2.18.
  • 경남매일, 「이방초, 부모님 발 씻겨 드리며 이색 졸업식」, 2016.2.20.
  • facebook
  • twitter
  • print

주제목록 보기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