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원조는 1960년대를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1950년대의 원조가 전쟁에 의한 긴급구조 및 시급한 경제재건, 복구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후에는 이와 달리 경제부흥을 위한 개발원조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국제원조의 중심국가였던 미국이 새로운 원조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1961년 케네디대통령은 그간 경제안정 및 재건을 위한 무상원조 방식에서 경제개발 및 성장을 위한 유상원조 방식으로 원조정책을 전환할 것을 발표하였다. 이는 국제적인 개발협력 및 개발원조 활성화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그들의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던 한국에게도 커다란 정책전환을 요구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국내적으로는 1960년대 초반 경제정책이 정부주도하의 대외지향적 공업화전략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사회간접시설 및 국가 기간산업의 확충을 위한 상당한 투자비용과 기술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의 경제재건 정책에도 불구하고 제반 경제여건은 극히 불안했기 때문에 공업화에 필요한 대부분의 재원을 국제사회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국내외적 환경변화에 따라 적극적인 외자도입 및 기술원조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미국, 일본, 독일(서독) 등과의 양자간 협력 이외에도 유엔 산하의 금융기구 및 전문기구 등을 통한 다자간 협력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세계은행그룹은 국제개발부흥은행(IBRD, 세계은행)을 필두로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개발협회(IDA), 국제금융공사(IFC) 등을 통칭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우리나라는 1962년「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추진과 함께 처음으로 장기 무이자 재원인 국제개발협회 차관을 받기 시작하였다. 1966년에는 경제개발계획추진에 필요한 금융·기술 제공을 위해 국제개발부흥은행이 주관이 되어 미국, 일본, 독일 등 9개 선진국과 국제통화기금, 유엔개발계획 등으로 구성된 차관협의단, 즉 대한경제협의체(IECOK)가 발족되어 국제금융기구로부터 개발자금을 도입하였다. 1967년 이후 효율적인 경제개발계획의 추진으로 차입능력이 향상되고, 대한경제협의체의 지원에 힘입어 국제개발부흥은행, 국제금융공사,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 차관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였다. 한편, 1965년에는 국제수지적자 보전을 위한 중‧단기 자금조달을 위하여, 처음으로 국제통화기금과 협약을 체결하고 1968년부터 재원을 인출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세계은행그룹으로부터의 차관도입은 1988년을 전후하여 상환이 완료되어, 세계은행그룹의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지위가 변하였다. 이후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신청에 의해 다시 한번 지원을 받기도 하였으나 구제금융에 대한 조기상환이 이루어지면서 우리나라는 순공여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유엔 산하의 여러 전문기구에서 이 시기 원조가 이루어졌지만 경제개발과 관련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기구는 유엔개발계획(UNDP)이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1965년 유엔에서 창설한 프로그램으로 개발도상국의 경제 및 사회개발 원조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유엔개발계획은 1972년까지 연도별 사업계획을 수립·시행하다가 1978년부터 5개년 사업계획을 추진, 1996년에 완료하였고 1997년부터 2년 단위의 후속사업을 전개하였다. 유엔개발계획은 2003년까지 총250개의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이중 산업부문 관련 사업이 65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이 기구로부터 지원된 자금은 약 9천5백만 달러였으며, 1960년대 이후 점차 지원규모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꾸준히 지원이 이루어졌다.
유엔개발계획의 사업은 사회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지만, 시기별로 중점사업에는 차이가 있었다. 1960년대에는 주로 농림수산 및 생산성 제고, 보건, 교육 관련 사업이 주를 이루었으며 지원도 가장 활발한 시기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1966년부터 시작된 '낙동강 유역개발 조사' 사업을 비롯하여, 1967년부터 진행된 '산지개발 및 수역관리' 사업, 1964년의 '원양어업훈련소' 사업, 1968년의 '연안어업훈련센터' 건립사업, '중앙직업훈련원' 건립사업 등이 있었다.
1970~80년대에는 산업개발이 사업의 주를 이루었다. 주요 사업으로는 1975년 시작된 '제4, 5, 6차 5개년경제사회개발 계획 수립지원' 사업, 'KIST 기계공업연구소' 지원사업 등과 '조선산업 기술서비스' 지원사업, '농산물 가공센터' 지원사업, 1985년의 '한국전자기술 및 통신연구원' 지원사업, '산업관리 컴퓨터' 지원사업 등이 있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사회개발, 일반개발, 에너지 및 환경 분야의 사업이 중점 추진되었다. 이 시기 주요 사업으로 '종합 해충관리 개발 및 훈련프로그램' 지원사업, '과학기술분야 정부능력확충' 사업, '기술금융정보센터' 설립사업, '한국환경정보 네트워크 시스템' 사업, 'NGO 지속개발네트워크 개념확산' 사업 등이 있었다.
한편 이 시기에는 농업분야에서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 등에 의한 양곡의 도입도 있었다. 이 사업은 1976~1979년 사이 확대되어 약 2천4백만 달러에 달하는 소맥분 약 7만6천여 톤이 제공되었으며 이를 통해 낙후지역의 간이급수시설 약 4천여 개, 위생 우물 5만5천여 개가 설치되었다. 또한 1970년대 들어 본격 추진된 가족계획사업에 발맞추어 유엔인구활동기금(UNFPA)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등 60년대 이후에도 한국은 유엔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고 있었으며 그 분야는 경제개발 뿐만 아니라 사회분야, 인간복지, 에너지, 환경 등 매우 다양하였다.
국제통화기금(IMF) 및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규정 한국가입(1955), CA0002585
주원 건설부장관 IDA
한국 도로조사단 현판식 기념촬영(1968), CET0063025
한국과 UNDP 기본원조 합의 (1978) DTC0000404
유엔특별기금 통신기술훈련소 협정 조인식(1962), CET0038786
부산의 심해어업
훈련센터 (1967) DTC000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