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결의에 따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은 1948년 1월 9일 서울에 입국하여 12일에 첫 회의를 갖고 총선거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임시위원단은 우선 미, 소 양국에 협력을 요청하였으나 소련의 거부로 북한 입북이 거절되어 활동이 실현될 수 없었다. 결국 2월 6일 위원단은 최종적으로 총회 정치위원회의 자문을 구하기로 하였고 남한만의 단독선거도 그 타개책 중에 하나로 포함되었다. 미국도 이에 맞추어 남한만의 총선거를 실시하는 제안을 주창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소련의 반대뿐만 아니라 미국의 우방 국가들로부터도 반대에 부딪쳤다. 찬반 논란 끝에 2월 26일 열린 유엔소총회는 미국이 제출한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안'을 찬성 31, 반대 2, 기권 11로 채택하였다. 총회 결의문의 골자는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한국의 지역에서 결의 제 2호에 서술된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동 위원단의 책임"이라고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임시위원단 위원들은 유엔총회 결의를 실행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정하고, 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서의 선거감시를 공약하였다.
유엔총회에서 남한만의 단독선거 실시가 결정되자 남한 내의 정치ㆍ사회단체들 사이에서 심각한 분열이 일어났으며, 찬성ㆍ반대의 입장에서 갈등이 심화되었다. 그러나 선거계획에 따라 남한 전체에 걸쳐 5월 10일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198명의 제헌의원이 탄생하였다. 임시위원단은 5월 25일 선거의 공정성과 합법성을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국회는 5월 31일 개원되어 제헌작업에 착수, 7월 17일 헌법을 제정, 공포하였고, 7월 20일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