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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고개'를 넘어 증산의꿈을 이루다!'

재배기술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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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까지 벼를 비롯한 식량작물의 재배 기술은 일제시기의 기술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모내기철 벼농사는 주로 손 이앙으로 이루어졌으며, 오랜 세월 계속되었던 물못자리는 조기 육묘가 어렵고 육묘 중 냉해를 입기가 쉬웠기 때문에 1959년부터 새로운 보온못자리 육묘법이 개발되었으나, 보온피복 재료를 유지에 의존하던 당시로서는 보급에 제약이 많았다. 1960년대까지는 대체로 6월 20일경이 모내기 최성기였다. 이는 1970년대 후반 6월 10일경, 1980년대 5월 말, 1990년대 5월 중순에 비하면 대단히 늦은 것이어서 수확량을 높이는데 큰 장애요인이 되었다.

1950년대까지 화학비료부족을 메우기 위해 퇴비생산과 녹비작물 재배를 권장하였다. 퇴비증산을 유도하기위하여 경진대회를 개최하고 모범농가에 대해서는 시상을 하기도 하였다. 퇴비, 인분뇨, 초목, 대두박 등에 의존해 오던 시비기술은 1960년대 들어 크게 발전하였다. 이 때 면서 충주비료공장 등 많은 비료공장을 가동하면서 화학비료가 대대적인 확산되었고, 이를 통해 벼 수확량이 10~20% 증가되는 성과를 올렸다.

정부는 효과적인 생산활동을 위해 1960년대 말부터 벼를 비롯하여 주요 작목별로 집단재배방식을 널리 보급하였다. 모범농민(독농가)을 핵으로 한 농민협동체를 만들어 품종선택, 못자리, 모내기, 병해충 방제 등 모든 작업을 공동으로 실시하는 등 증산기술을 집약적으로 보급하였다. 이는 생산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특히 재배기술의 획득과 평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농촌진흥청에 작물보호계가 생기고 병해충발생 예찰사업의 중요성이 크게 인식되면서 방제기술의 보급과 지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병해충 발생예찰은 기본예찰소가 중심이 되어 수행하였다. 예보는 예보, 주의보, 경보 등 3종으로 구분․발표되었고, 벼에 발생하는 각종 병해충 방제대책에 활용되었다. 이러한 병해충 예찰과 방제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농약의 개발을 가속화시켰고 방제기구 의 동력화, 고성능화를 이루어 농작물의 감수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정부는 1967년 지력증진법을 공포하는 등 토양개량제 공급에 노력을 기울였고, 이를 통해 벼의 내병성·내비성·내재해성 등이 크게 향상되었다. 농토배양을 위한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기초자료를 마련하기 위해서 1964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전 국토에 대한 토지개량조사사업, 토양 비옥도 사업 및 정밀토양 조사사업을 실시하였다. 이를 기초로 심경, 객토, 배수개선, 규산질 비료나 석회 시용에 의한 종합개량방안을 강구하였으며, 특히 집단재배단지를 통한 지력증진사업을 추진하였다.

맥류에 있어서는 파폭률을 50%까지 확대할 수 있는 광폭재배기술을 보급함으로서 보통재배보다 25%정도 증수할 수 있었으며, 쌀 자급이 실현되기 전에 권장하였던 춘파 보리는 활발한 재배법의 개발로 1967년에 재배면적이 8만ha에 달하였기도 하였다.

1970년대 들어 통일벼 품종을 보급하면서 폴리에틸렌 필름을 이용한 보온절충 못자리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통일벼는 특히 저온에 약하기 때문에 보온을 위한 비닐 없이는 우리나라에 재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후 보온 못자리는 산간 고랭지와 중북부 지방부터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일반계 품종까지 보온절충못자리를 선택하였다. 그 결과 1978년에는 전체 벼 재배면적의 90%까지 보온못자리가 확대되었고 전체 농민들이 조기육묘 기술을 습득하였다. 이에 따라 건묘기술이 육성되고 모내기가 한달 가까이 빨라졌다.

모내기(이앙) 방식은 1930년대에 일제가 정조식을 개발하여 권장하였으나 1950년대까지 산식이 일반화되어 있다가, 1960년대에 들면서 정조식 중 밀식이 가능한 장방형식이 점차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가장 고된 농작업중의 하나인 모내기 작업을 기계화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써 치묘상자 육묘와 동력이앙기기술이 보급되면서 모내기철 일손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1970년대 들어 밭작물의 재배기술면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보리의 경우 깜부기병의 예방을 위해 효과 좋은 종자소독제를 사용하여 깜부기병을 철저히 방제할 수 있었다. 보리는 보통 밭에 재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식량 자급을 위한 강력한 증산정책에 힘입어 논에 보리와 벼를 2모작으로 재배 하기 위한 시책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숙기가 빠른 보리품종의 개발에 노력하는 한편 논보리 확대재배 시범사업을 강력하게 시행하여 1974년부터는 밭보리보다 논보리 재배면적이 더 많아졌다. 그러나 1977년의 논보리 혹한 피해를 계기로, 재배 안정성에 따라 지역별 파종 적기와 파종한계 등을 종합 검토하여 합리적인 지도를 하는 것으로 전환하였다.

동력경운기와 트랙터 등이 1970년대에 이후 본격 보급되면서 심경다비 기술이 실용화되고 시비법도 개선되었다. 즉 비료를 밑거름50%) → 새끼거름20%) → 이삭거름(20%) → 알거름(10%)으로 적절히 나누어줌으로써 시비효율을 극대화하였고, 다비, 밀식, 이삭거름 시용, 물관리, 조기재배, 병해충방제 기술 등 재배기술상 많은 발전을 이루어 벼농사에 관한 한 우리나라 농민들의 기술이 세계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또한 1974년 국립종자공급소의 발족 이후, 소독 종자를 보급하고 손쉽게 약제 소독토록 함으로써 병해충을 사전에 방제하게 되었다. 특히 제초제가 1970년대 말부터 속속 개발 공급됨으로써 벼농사, 밭농사 할 것 없이 가장 어려운 작업인 김매기 작업으로부터 농민들을 해방시키는 재배법의 혁신을 가져왔다.

1990년대 들어 국제화․개방화 시대에 대응한 벼농사의 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생력재배기술과 품질향상에 역점을 두고 기술개발과 농가보급사업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어린모기계이앙 기술보급을 위하여 기계이앙과 동시 측조시비, 건답직파 기술을 보급하였다. 생력화를 위하여 어린모 공동육묘 시범, 생력협업시범포지, 어린모기계모내기 선도단지를 설치 운영하였고, 미질향상을 위하여 품종비교 시범포, 고도양질 생산유통 시범포, 지역별 명미 생산포장 직거래 시범포를 설치 운영하여 지도하였다. 1993년에는 어린모 기계이앙 기술이 완전 정착되어 식부대비 55%인 97,107ha를 보급하였고 직파재배도 308ha를 보급하여 생력재배기술 개발과 보급에 노력을 하였고 벼 무논골뿌림 재배를 처음으로 시도하여 농가실증에 성공하였다. 한편 콤바인을 이용한 벼수확 작업의 기계화율은 1986년 28.6%에서 1994년에는 98.5%로 높아지는 등, 볏짚을 사용하기 위해 인력으로 벼를 베는 농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농가들이 기계수확 작업을 하기에 이르렀다.

  • 심농식 벼 다수확법 시험결과보고(제30호)(1965),BA0177289(35-1)

    심농식 벼 다수확법 시험결과
    보고(제30호)(1965),
    BA0177289(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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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벼종자 매수 및 보급계획(제287호)(1971),BA0139285(18-1)

    벼종자 매수 및 보급계획
    (제287호)(1971),
    BA0139285(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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