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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고개'를 넘어 증산의꿈을 이루다!'

농업기계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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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량농기구작업 농촌풍경3(1963), CET0043757(3-1)

    개량농기구작업
    농촌풍경3 (1963),
    CET00437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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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남도 부여군 군수리 새마을농민작업모습(1975), CET0070037(13-1)

    충청남도 부여군 군수리
    새마을농민작업모습
    (1975), CET0070037(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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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콤바인으로 탈곡(1979),CET0041737(3-1)

    콤바인으로 탈곡(1979),
    CET00417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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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전반기까지는 도시화·산업화가 안되어 농촌에 여유노동력이 충분하였기 때문에 농업기계화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그래서 농기구는 주로 삽, 괭이, 호미, 쟁기 등 인력이나 축력용 소농기구가 주류를 이루었다. 1961년부터 동력경운기, 동력탈곡기, 동력분무기 등이 일부 공급되기 시작하였으나 재원부족과 수요가 많지 않아 보급실적이 미미하였다. 그러다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1966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 농촌인력의 이농이 시작되면서 농업기계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1967년부터 재해대책기종인 양수기 및 동력분무기를 중심으로 많은 수의 동력농기계를 농촌에 공급하였다.

특히 경운작업의 기계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동력경운기는 경운정지 작업은 물론 파종, 시비, 운반 작업과 양수, 탈곡, 방제작업 등의 동력원으로도 널리 활용되었다. 일부 초보적인 농업기계화의 결과 농민들의 호응이 크고 주곡자급을 위해서는 농업기계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1970년대에 관련법이 제정되고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되었다.

1972년에 최초로 수립된 농업기계화 5개년계획에 따라 농업기계화 기술 개발을 위한 본격적 연구개발 사업이 시작되고 생산업체의 정비도 이루어졌다. 한편 이 기간에 노동생산성을 증대시키고, 농업노동력의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 농업기계화를 강력히 추진한 결과 동력경운기와 농약 분무기, 양수기, 탈곡기 등이 대량으로 보급되었다. 시비작업의 기계화는 1970년대 후반 동력경운기 부착형 퇴비살포기 및 경운기용 석회살포기를 개발․보급하여 토양 개량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농촌일손부족 현상이 심화되자 정부는 1977년부터 이앙과 수확작업의 기계화를 촉진하고, 트랙터 등 대형농기계의 보급을 추진함에 따라 벼농사의 일관 기계화작업 체계를 확립하기 시작하였다. 농업기계화촉진법을 1980년부터 운용하면서 1982년에는 제3차 농업기계화 기본계획 5개년계획을 수립․시행하고 1980년 3월에는 국제농업기계전시회도 여의도에서 개최하였다. 1981년부터는 새마을기계화영농단을 확대 조성하였고 1986년 초부터는 농업기계용 유류를 면세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벼농사 일관 기계화 작업에 착수한 이래 10년 만에 주요작업의 상당부분이 기계화되는 성과를 올렸다.

1960년대 말까지 벼탈곡 작업은 대부분 족답식 탈곡기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1965년 반자동 탈곡기를 개량한 자동탈곡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1970년대 중반에는 모두 자동탈곡기로 전환하였다. 1984년에는 트랙터 부착형으로 포장내를 이동해 가면서 탈곡할 수 있는 주행형 탈곡기를 개발 보급하였다. 예취, 결속, 탈곡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벼 수확작업은 1970년대 초부터 여러 형식의 예취기를 도입, 적응성 시험을 거쳐 2조 바인더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벼 수확작업의 기계화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 농업기계화계획(제77호)
										(1971), BA0139607(24-1)

    농업기계화계획(제77호)
    (1971), BA0139607(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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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촌기계화계획(1973), EA0005589(1)

    농촌기계화계획(1973), EA00055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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