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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저축의증대방안(안)

금융저축의증대방안(안)
기록물 철 제목 금융개혁위원회안건(제8차-제10차)(2-2) (BA0894245)
기록물 건 제목 금융저축의증대방안(안) (1997)

저축이란 국민소득에서 민간이나 정부가 소비하지 않고 남겨 놓은 돈을 의미한다. 국민경제에서 저축이 중요한 것은, 금융시장에 다양한 형태로 저축된 돈이 투자재원으로 사용되어 국민경제의 자본축적에 기여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연도별 저축률 변화 그래프 : 1960년 이전 5.8%, 1963년 7%, 1970년 14.1%, 1975년 18.6%, 1981년 22.8%, 1985년 28.4%, 1993년 34.9%
연도별 국민저축률 변화

우리나라의 저축률(저축/국민소득)은 극적으로 상승하였다. 1953-60년의 연평균 저축률은 5.8%에 불과하였는데, 경제개발계획이 막 시작된 1963년에도 이 수준은 거의 변하지 않아 7%를 기록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저축률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의 저축률은 14.1%로 그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상승하였고, 1975년에는 18.6%, 1981년에는 22.8%를 기록하여 저축률이 20%를 넘어섰다. 1980년대 후반에도 저축률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1985년의 저축률은 28.4%를 달성하였고, 1993년에는 34.9%로 상승하여 1950년대와 비교해 볼 때 무려 6배 정도 증가하였다.
이와 같이 짧은 기간 동안에 저축률이 빠르게 증가한 것은 경제개발과 함께 국민소득이 증가하여 저축이 늘어난 효과도 작용했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가 자립경제체제의 확립이라는 장기 목표를 세우고 투자재원의 자력 조달을 위해 저축을 적극 장려했기 때문이었다.

1950년대에 저축률이 낮았던 것은 불가피하였다. 6.25전쟁으로 산업시설이 심각히 파괴되었고 생산 활동은 급격히 위축되어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형편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축률을 높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지만 파괴된 일반 주택, 산업시설이나 사회간접자본의 복구·확충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했는데, 국내저축으로는 투자재원을 조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였다. 1950년대에 대부분의 투자재원을 공급한 것은 미국에서 제공한 원조, 즉 해외저축
이었다. 1953년에 총 투자액에서 원조가 차지하는 비율은 41%였는데, 그 이후 원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투자재원에서 원조가 차지하는 비율은 증가하여 1955년에는 59%, 1957년에는 64%, 1960년에는 78%를 기록하였다.

고도성장기(제1차 - 제4차)에는 투자율이 매우 높았다. 1950년대의 투자율은 10% 정도였고, 제1차 계획의 기준연도인 1960년에도 11%에 불과하였다.(1)

그러나 목표 성장률을 높게 책정했던 고도성장기에는 제조업과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해야 했기 때문에 투자율이 높아야 했던 것이다. 제1차 계획 기간 동안의 연평균 투자율은 22.6%여서 그 이전 시기와 비교해 볼 때 두 배 이상의 증가를 계획하였다. 제2차 계획 기간 동안의 연평균 투자율은 19%였고, 제3차 계획 기간 동안의 연평균 투자율은 24.9%였으며, 제4차 계획 기간 동안의 연평균 투자율은 26.2%로 계획하였다. 문제는 이와 같이 높은 투자율을
보장해줄 수 있는 투자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느냐 하는 것인데, 정부는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책개발을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로 고려하였다. 다시 말하면, 정부는 국내저축이 부족하여 해외저축에 의존하는 구조로부터 벗어나 국내저축으로 투자재원을 조달하는 구조 이행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위에서 지적한 저축률 상승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기간 동안 국내저축을 증가시키기 위한 정부 정책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1965년 9월에 취해진 금리현실화 조치는 국민들의 저축을 유인하는 데 아주 중요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 조치가 취해지기 이전의 예금금리는 15%였는데, 이것은 당시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때 마이너스 실질금리에 해당하여 저축의 유인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금리현실화 조치로 예금금리가 30%로 일거에 두 배 인상되었는데, 이 결과 당시의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더라도 실질금리가 22%에 육박하여 저축의 유인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정부의 저축증강정책은 이런 기반 위에서 더욱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1966년에 의결된 <1966년도 저축증강계획> 은 당시 정부가 저축 증가를 위해 얼마나 고심했으며, 저축을 증가시키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계획에 따르면, 1965년에 83억 원으로 책정했던 1966년 저축 증가 목표액을 200억 원으로 증액했으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금융기관에 목표액을 할당했고, 다양한 경제주체에게 저축을 강제하는 방식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가령 3급 이상의 공무원이나 계장급 이상의 정부관리 기업체 직원의 급여를 통장으로 지급하되, 봉급의 10% 이상을 적금에 가입하도록 강제했으며, 공사나 물품 납품 대금을 지급할 때 지불액의 일부를 반드시 저축하도록 한다든가, 각종 인허가나 면허를 조건으로 저축을 의무화하는 등 저축을 강제하였다. 심지어는 학교별 목표를 설정하여 학생들에게 저축을 강제하기도 하였다.

사회발전기(제5차 - 신경제)에도 투자율은 매우 높았다. 제5차 계획 기간 동안의 연평균 투자율은 31.6%였고, 제6차 계획의 최종연도인 1991년의 투자율은 31%였으며, 제7차 계획 기간 동안의 연평균 투자율은 36.4%로 여전히 높은 수준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계속적인 저축증강정책에 힘입어 1980년대 후반에 투자재원을 자력 조달할 수 있는 체제가 확립되었다.

(1)
한국은행(1968),『국민소득연보, 1953-1967』,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