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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의 어제와 오늘

1. 실록과 기록문화유산

실록과 기록문화유산1
실록과 기록문화유산2

국가기록원 소장 태백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의 역대 왕들의 행적을 연대기순으로 정리하여 편찬한 공식적인 국가기록입니다. 제1대 태조부터 제25대 철종까지 472년(1392~1863)간 왕조의 역사가 기록된 실록에는 조선의 정치·경제·외교·군사·법률·산업·예술·종교 등 각 방면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1973년 국보 제151호로 지정된 실록은 1997년 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었습니다. 유네스코는 1995년부터 훼손되거나 사라질 위험에 있는 기록유산의 보존 및 이용을 위해, 세계기록유산의 목록화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2) 이 사업의 목적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기록유산을 보존하고, 지정된 기록유산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것, 그리고 기록유산의 목록화 작업을 장려함으로써 기록유산의 중요성을 세계적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유네스코는 2년마다 국제자문위원회(IAC) 회의에서 세계적인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선정하고 그 목록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등재 기준을 보면 ‘유산의 오래됨이 아닌 특정 시대의 중요한 사회문화적 변화를 보여주는지의 여부, 세계사 및 문화에서 중요한 장소에 대한 주요 정보를 담고 있을 것, 인류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을 것’ 등을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은 2017년 기준으로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한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 1) 통상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은 제1대~제25대까지의 실록을 칭한다.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일제강점기 이후 편찬되었는데, 당시 편찬 주체나 편찬 과정 등이 이전의 실록 편찬 규례에 맞지 않는 점 때문에 구분하고 있다.
  • 2) 기록유산의 예는 다음과 같다. 필사본·도서·신문·포스터 등 기록이 담긴 자료와 플라스틱·양피지·섬유·돌 등 기타재로로 기록이 남아있는 자료, 그림·프린트·지도·음악 등 비문자 자료, 오디오·비디오·원문과 아날로그 또는 디지털 형태의 정지된 이미지 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전자 데이터 등이다(유네스코와 유산, https://heritage.unesco.or.kr).

세계기록유산 등재기준3)

세계기록유산 등재기준 | 등재 기준, 세부 사항으로 구성
등재 기준 세부 사항
주요기준 진정성 유산의 본질과 유래가 정확히 밝혀진 진품일 것
독창성·
대체불가성
특정 시대 및 지역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며,
손실 혹은 훼손될 경우 인류에 심각한 손실을 초래할 만큼 중요한 유산일 것
세계적 가치
  • 시간 : 유산의 오래됨이 아닌, 특정 시대의 중요한 사회문화적 변화를 보여주는지의 여부
  • 장소 : 세계사 및 문화에서 중요한 장소에 대해 주요 정보를 담고 있을 경우
  • 사람 : 인류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을 경우
  • 주제와 테마 : 과학, 사회학, 예술 등의 발전상에 관한 주제를 구현하고 있는 경우
  • 형식과 스타일 : 탁월한 미적, 형식적, 언어적 가치를 지니거나 표현 형식에 있어 중요한 표본이 되는 경우
보조요건
  • 희귀성 : 내용이나 물리적 특성이 희귀한 경우
  • 완전성 : 온전히 하나로서 보존되어 있는 경우
  • 위험성 : 유산의 보존상태가 각종 위험요소에서 안전하거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조치가 이루어지는 경우
  • 관리계획 : 유산의 중요성을 보전 및 활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계획이 이루어지는 경우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기록물은 미래 세대에 물려줄 만한 인류의 자산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472년간 한 왕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실록은 조선시대의 국가기록물 관리 체계, 더 나아가 한국의 기록문화 및 출판문화를 잘 알 수 있는 기록입니다.

  • 3) 세계기록유산 보호를 위한 운영지침(2002, 유네스코) ; 한국국학진흥원 기록유산센터,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한국국학진흥원, 2018, 9쪽

2. 실록의 탄생

조선왕조실록은 ‘편찬’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기록입니다. 실록은 왜 편찬되었을까요? 기록을 작성한 주체와 시기, 작성 방식과 절차를 보면 그 기록이 생산된 시기가 어떤 성격을 띠고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실록은 중국 당(唐)·송(宋)시대를 거치며 그 체제가 정비되었습니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등 이전의 역사서들이 개인 혹은 작업에 의해 편찬된 것이었다면 실록은 국가의 정치제도 내에서 이루어진 ‘정사(正史)’의 편찬이었습니다. 방식 또한 개인이 개별로 기록하여 편찬하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이 나누어 공동으로 편찬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습니다.4)
당 태종은 선대의 실록과 재위 기간 중의 실록을 함께 편찬하도록 하였는데, 군주의 재위 기간에 실록을 편찬한 것은 당 중반까지도 지속되었습니다. 이는 편찬 목적이 실록을 동시기에 활용하는 데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위 기간과 같은 시기에 편찬하는 것은 실록에 기록된 인물들이 그 기록을 보거나, 기록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를 사실대로 쓰지 못할 우려가 있었습니다. 군주의 사후에 실록을 편찬하는 것은 송대 이후 정립된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 역시 고려시대 이후 이러한 방식이 관례화 되었습니다.5)
조선왕조실록의 편찬은 규정된 범례에 따라 착수되었습니다. 일정 자격이 있는 자를 사관(史觀)으로 선발하여 사초(史草)를 기록하도록 하고, 실록을 편찬할 때가 되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각 관청에서 작성한 『시정기(時政記)』, 개인 일기와 문집 등 광범위한 자료를 모아 편찬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왕실의 일상과 조정에서 논의된 주요 현안에 대한 발언, 관료의 상소, 자연재해, 외국과의 교류, 각 지방의 생활사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일자별로 기록한 기사(紀事)에 사관의 평가(史論)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록의 편찬과정은 실록청의궤를 작성하여 전 과정을 알 수 있도록 기록하였고, 편찬을 마친 실록은 춘추관(春秋館) 사고와 지방의 외사고에 봉안(奉安)하여 안전하게 보관하였습니다. 실록을 봉안한 뒤에도 책의 습기를 제거하는 포쇄(暴曬) 작업을 통해 각별히 보존하였습니다.
실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편찬된 실록은 왕이라 할지라도 열람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사관의 ‘직필(直筆)’을 보장하여 비교적 사실적인 기록을 가능하게 하였기 때문에 당대의 역사를 세세하게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편찬된 실록이 향후 개정 또는 수정되더라도 그 이전에 편찬된 것을 남겨 특정인에게 유리한 기록만이 아니라 전후 과정을 후대가 비교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실록은 조선시대를 알 수 있는 종합적인 역사서로 후대에 계승해야 할 중요한 기록문화유산입니다. 실록의 편찬에서 보존에 이르는 전반적인 과정은 과거를 재현하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록에 왕에 대한 매일의 보고와 명령, 각 관청과 관료들의 업무 등을 빠짐없이 기록하려고 한 것은 현재의 국가기록관리 측면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이어서 다음 장에서는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태백산사고본 실록을 중심으로 실록의 작성 주체인 사관과 실록에 쓰인 기록들, 그리고 실록을 보관했던 사고에 대해 살펴보고, 현재는 실록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4) 오항녕, 『실록이란 무엇인가』, 역사비평사, 2018, 36쪽
  • 5) 오항녕, 위의 책, 180쪽.
참고문헌 내용펼쳐보기
  • 한국국학진흥원 기록유산센터,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한국국학진흥원, 2018.
  • 오항녕, 『실록이란 무엇인가』, 역사비평사, 2018.
  • 오항녕, 「그런데 왜 실록을 편찬하였을까」, 『내일을 여는 역사』 14, 2003.
  • 유네스코와 유산(https://heritage.unesc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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