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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시설 본관의 일반적 특성

일본에서 근대의료시설의 변천과정은 크게 5개시기로 구분되는데, 대략 제4기(1893-1920)와 제5기(1921-1945)가 일제강점기에 해당한다. 제4기는 독일의학의 테두리에서 점차 벗어나는 시기로서, 각 진료과마다 독립적인 외래진료실, 연구실, 병동이 계획되기 시작하였으며 수술실과 함께 X선 촬영장치가 사용된 시기였다. 제5기는 일본의학의 자립기로서 각 진료과목 별로 외래부, 진료부 및 병동까지 독립적으로 계획되면서 종합진료소나 연구동 등이 계획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특히, 제 5기에는 관동 대지진으로 내진설계의 중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의료시설의 계획에 점차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채용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일본의 의료시설 건축계획은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에 이식되어 한국 근대 병원건축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과 식민지 조선 간의 거리에서 비롯되는 기술 전달의 지연, 식민통치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의료행정의 성장과 변화라는 특수성에 기인하여 일제강점기 조선에서의 의료시설의 발달은 일본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었다.

현재 국기기록원에 소장 중인 의료시설의 본관건축 계획안을 도면 작성 시기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대략 3개시기로 구분해볼 수 있다. 제1기는 자혜의원 설치의 근간이 되는 「자혜의원관제(慈惠醫院官制)」가 공포되는 융희9년(1909)부터 191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로서 전국적으로 단층 목조의 자혜의원이 근대의료시설의 초기적 형태로서 계획되는 시기이다. 제2기는 외래부와 부속진료부가 체계화되면서 중층 이상의 본관계획안이 등장하는 193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이다. 제3기는 진료과 계획이 세분화되고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사용되면서 4층의 계획안들이 등장하는 1930~40년대의 시기이다.

<표> 의료시설 본관계획안 주요목록
No. 명칭 개원일 도면계획년도 층수 구조 비고
1 대한의원 1907 (추정)1906 2층 벽돌조
2 청주자혜의원(1) 1909.12 (추정)1909 단층 목조  
3 공주자혜의원(1) 1910.9 (추정)1910 단층 목조 수술실 별도 증축
4 공주자혜의원(2) 1910.9 (추정)1911~22 단층 목조 본관증축
5 춘천자혜의원(1) 1910.9 (추정)1910~21 단층 목조
6 안동자혜의원 1912.1 (추정)1912 단층 목조
7 제주자혜의원 1912.1 (추정)1912,13 단층 목조 안동자혜의원대칭
8 초산자혜의원 1912.1 (추정)1912 단층 목조  
9 강릉자혜의원(1) 1912.8 (추정)1912 단층 목조  
10 평양자혜의원 1910.9 (추정)1913 단층 목조 풍경궁
11 대구자혜의원(1) 1910.9 (추정)1915~17 부분2층 목조  
12 회령자혜의원 1912.8 1919 단층 벽돌조
13 수원자혜의원(1) 1910.9 (추정)1919 단층 목조 화성행궁
14 나남자혜의원 1910.9 1919 부분2층 벽돌조  
15 함흥자혜의원 1910.1 (추정)1919~25 부분2층 벽돌조  
16 광주자혜의원 1910.9 1922 2층 벽돌조
17 전주자혜의원 1909.12 1922 부분2층, 지하1층 벽돌+RC 미실현 계획안
18 군산자혜의원 1922.2 (추정)1922 2층, 지하1층 벽돌조 진주자혜의원 공통
19 진주자혜의원 1910.9 (추정)1922,23 2층, 지하1층 벽돌조 군산자혜의원공통
20 순천자혜의원 1922.2 (추정)1921 3층, 지하1층 벽돌조  
21 성진자혜의원 1923.8 (추정)1912~22 2층, 지하1층 벽돌조 순천자혜의원공통
22 혜산진자혜의원 1923.11 1923 2층, 지하1층 벽돌조 성진자혜의원공통
23 수원자혜의원(2) 1910.9 1923 2층 벽돌조
24 춘천자혜의원(2) 1910.9 1923 2층, 지하1층 벽돌조
25 해주자혜의원 1910.9 1923 2층 벽돌조
26 남원자혜의원 1922.2 1923 단층 벽돌조
27 강원도립철원의원 1931.4 (추정)1931~45 2층 벽돌+RC
28 원산부립병원 - 1933 부분2층 벽돌+RC
29 청주자혜의원(2) 1909.12 1934 2층 벽돌+RC 비대칭 평면
30 강릉자혜의원(2) 1912.8 1934 2층 벽돌+RC 청주자혜의원공통
31 대구자혜의원(2) 1910.9 1935 부분2층 목조 수술실증축
32 일본적십자사 조선병원 1936 1936 4층 RC
33 일본적십자사 청진병원 1943 (추정)1943 층, 부분지하1층 벽돌+RC

자혜의원이 전국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작은 규모의 본관계획안이 주로 사용되었다. 최초의 자혜의원인 청주자혜의원을 비롯하여 공주자혜의원과 제주자혜의원의 본관계획안을 살펴보면, 모두 단층의 목조 건축물로 계획되었으며, 입면은 비늘판벽으로 마감되었고, 내부에는 한두 개의 진찰실만 계획되어 있어 간략하였다. 현관을 중심으로 진찰실과 대합실의 진료부를 함께 두었고 사무실, 원장실, 약국 등의 관리시설을 반대쪽에 계획하였다. 특별히 수술실과 병리시험실, 변소, 소사실(小使室)을 본관과 별동으로 구성하고 복도로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도판1], [도판2], [도판3] 참조) 즉, 목조 건축물로의 계획에 있어서 수술실, 변소 등의 습식공간이 본채와 분리된 것인데, 이는 1910년대 다른 조선총독부의 시설 계획에서도 확인되는 공통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 도판1. 충청북도자혜의원신축설계도/제1호, 1909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 공주자혜의원신축설계도/2, 191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 제주자혜의원본관기타신축공사설계도/내본관수술실측랑하/1, 1912-1913년 추정상세보기

한편, 평양자혜의원과 대한의원은 통상적인 자혜의원과 구별되는 계획안을 갖고 있었다.([도판4], [도판5] 참조) 1910년에 개원한 평양자혜의원은 대한제국의 궁궐시설인 풍경궁(豐慶宮)을 점용하였기 때문에 전통 목조의 전각(殿閣)을 병원시설로 이용한 사례였으며, 1907년에 대한제국 관영 의료시설의 통합체로 개설된 대한의원의 본관은 그 위상에 맞도록 시계탑을 올린 2층의 벽돌조 본관으로 매우 화려하게 계획되었다.

  • 도판4. 평양자혜의원신영설계도 모양체간취도/12, 1913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5. 제이호/대한의원본관정면도/본2, 1906년 추정상세보기

제2기에는 이전 시기의 본관계획과 달리 구조 재료로 벽돌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형태상으로도 2개층 이상의 계획안들이 설계되기 시작하였다. 입면에서는 벽돌의 미려한 외관을 표현하였고, 내부의 실구성에서도 진료과목별 공간들이 세분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한, 대구자혜의원, 나남자혜의원, 함흥자혜의원의 본관과 같이 전체의 일부분에만 2층을 구성하는(부분2층) 과도기적 형태에서,([도판6], [도판7]참조) 광주자혜의원, 수원자혜의원, 해주자혜의원의 본관과 같이 1층과 2층이 동일한 규모를 갖는 2층 계획안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도판8], [도판9]참조) 다만, 1930년대 초반에 계획된 원산부립병원 본관([도판10] 참조)과, 강원도립철원의원 본관([도판11]참조)의 경우, 각각 부분2층과 2층의 본관으로 계획되었는데, 이러한 점을 볼 때 각 병원에서 필요한 공간에 따라 계획안은 유동적으로 적용되기도 하였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층별 구성을 살펴보면, 부분2층 본관과 2층 본관에서 모두 동일하게 1층에는 각 과별로 구분된 진료실, 수납부 및 대합실이 계획되고, 2층에는 원장실, 의관실 등의 관리부가 계획되어 수직적으로 기능을 구분하려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 도판6. 대구자혜의원청사기타신축설계도/1, 1915-1917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7. 자혜의원청사기타신축설계도/(나남)/2, 1919년상세보기
  • 도판8. 광주자혜의원신축설계도/1, 1922년상세보기
  • 도판9. 해주자혜의원본관신축설계도/1, 1923년상세보기
  • 도판10. 원산부립병원증기난방병증소독장치공사설계도(재래본관난방공사)/재래본관난방공사도/3, 1933년상세보기
  • 도판11. 도립철원의원전기설비공사설계도/배선도 기1, 1931-1945년 추정상세보기

또한, 이 시기에는 군산자혜의원, 진주자혜의원, 춘천자혜의원의 본관과 같이 지하층을 갖는 2층 본관계획안이 나타났다.([도판12] 참조) 1층 진료부에는 각 진료과별로 진찰실과 부속실을 계획하고, 지하층에는 취사장과 식당, X광선실, 세탁장, 창고, 기관실 등의 부속실이 계획되었음을 볼 수 있다. 즉, 지하층이 계획되면서 기존에 본관에 설치되지 못했던 식당, 기관실, 세탁장 등의 공간이 추가되게 된 것이다. 반면, 2층에는 병실과 간호부실이 계획되고 있는데, 기존에 본관과 병동(病棟)을 건물로서 완전하게 구분하던 것과 달리, 병실 일부가 본관의 최상층에도 계획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의사, 간호부, 환자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능적 계획안이라고 볼 수 있다. 순천자혜의원의 경우에는 본관을 3층으로 계획하였는데,([도판13] 참조) 실질적인 구조는 2층이다. 그렇지만 지붕을 높게 들어 올리고 지붕 속 공간을 간호부실과 창고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성진자혜의원과 혜산진자혜의원은 순천자혜의원과 동일한 본관계획안을 적용하면서도 옥탑공간은 반영하지 않은 2층 본관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본관 내부계획은 이전 시기와 구분되는 명확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진료과목별로 진찰실을 세분화하고 부속실을 첨가하여 전문적인 의료행위가 전개되도록 한 것이다. 부인과에는 치실(恥室), 치과에는 기공실(技工室), 내과와 이비인후과에는 암실(暗室), 약국에는 제련실(製鍊室) 등이 조합을 이루도록 하였다. 또한, 수술실을 본관건물 내부로 통합하고 이학요법실(理學療法室)과 X광선실을 덧붙여 당시 의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하였다.

더불어, 특히 본관의 전체적인 공간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졌다는 점은 이 시기 관립병원 본관 계획의 큰 특징이다. 즉, 빈민을 대상으로 의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시료(施療) 공간을 수납환자를 위한 공간과 원천적으로 분리한 것이다.([도판14] 참조) 시료병실을 별도로 조성하는 사례는 1910년의 함흥자혜의원에서도 나타나는 기본적인 구성법이었지만, 1920년대의 본관 계획에서는 출입구, 진찰실, 병실 심지어 변소까지 벽과 동선으로 구분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도판12. 진주자혜의원증기소독장치지도/26, 1922-1923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3. 자혜의원계획설계도/번외1, 192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4. 자혜의원증기난방공사설계도/1, 1923년상세보기

제3기에는 본관의 규모가 대형화․복합화되고 구조재료로 철근콘크리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준방호실(準防護室)과 같은 재해 대비책이 나타났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사례는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외래진료소(1932~33년),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병원(1936년 개원)과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청진병원(1943년 개원)을 들 수 있다.([도판15], [도판16], [도판17]참조)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외래진료소는 3층으로 계획되었는데, 철근콘크리트 기둥을 적극 활용하여 공간의 구성에 따라 유동적으로 구조를 설계하였다. 계단실의 경우 외부 입면을 원호형으로 설계하고, 전체 입면의 창호를 수평방향으로 넓게 설치하는 등 1920년대의 병원 계획과는 다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병원은 4개층의 본관을 계획하면서 철근콘크리트를 적극 적용하여 기둥을 균일하게 배치하고 보와 슬라브로 수평구조체를 계획하였다. 관동대지진 이후 내진설계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결과였다. 4개층의 수직이동 편리성을 고려하여 대형 엘리베이터, 식사운반용 엘리베이터(Dump waiter)를 적용함으로써 당대의 최신건축기술을 적극 반영하고자 한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본관 규모의 확대는 이전 시기보다 좀 더 세분화된 진료실 구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진료과목별로 진찰실과 치료실이 조합되도록 하였고 일부에는 추가적인 부속도 계획되었다. 또한 동시에 3개의 수술실이 동시에 운영될 수 있었으며, 부대진료실로 X광선실과 태양등실 등도 독립적으로 배치되었다. 일제강점기 병원계획안 중에서 가장 늦은 사례인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청진병원(1943)의 본관은 좌우로 긴 2층의 형태의 중앙에 사각의 시계탑을 높이 세우는 혁신적인 외관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에 진료과마다 환자 대합실을 별개의 실로 인접하도록 구성한 점과 과별로 수술실을 별도로 운영하도록 계획한 점은 진료실의 세분화, 계열화 경향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내부계획은 당시 일본에서 외래부, 진료부 및 병동부까지도 과별로 계열화되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준방호실을 각 층마다 계획하여 전쟁에 돌입한 일본의 건축관련 규정을 반영하고 있는 점은 다른 본관 사례와 대별되는 특징이라고 하겠다.

  • 도판15. 경성의학전문학교부속의원외래진료소증축공사설계도/21/지중철근량배치급이계철근량배치기타, 1932 상세보기
  • 도판16.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병원신축공사설계도/본관지부/2계평면도/2, 1936년 상세보기
  • 도판17.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청진병원신축공사설계도/이계평면(본관)/본관3, 1943년 추정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