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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지

1960년대 경제개발과 국토개발은 국가적 현안이었다. 국토개발 가운데 고속도로 건설은 물류수송 뿐만 아니라 인적 교류와 지역개발을 위해서도 절실하였다. 고속도로 연표는 1960년대부터 2005년까지 고속도로 관련 주요 내용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고속도로 건설, 준공, 확장 등의 내용을 시대별로 파악할 수 있다.

  1. 5·3 대통령선거 서울유세 (일부)  1967. 4.29
  2. 제6대 대통령 취임사  1967. 7. 1
  3. 연두기자회견 (일부)  1968. 1.15
  4. 서울-수원간 고속도로 기공식 치사  1968. 2. 1
  5. 경인·경수간 고속도로 준공식 치사  1968.12.21
  6. 연두기자회견 (일부)  1969. 1.10
  7. 호남고속도로 기공식 치사  1970. 4.15
  8.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치사  1970. 7. 7
  9. 뻗어가는 고속도로  1975. 1. 1
  10. 고속도로 건설사업의 추진경위  1970.
  11. 경부간 고속도로 개통의 의의  1970.

경부간 고속도로 개통의 의의

제목
경부간 고속도로 개통의 의의
간행물명
지방행정 19-201
연도
1970
면수
6면
생산기관
대한지방행정협회
집필자
김원기(건설부 차관)
● 사업개요

서울-부산간 고속도로는 조국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민족번영 간선대동맥이다. 1968년 2월 1일 착공하여 총공사비 42,973백만 원을 투입하여 만 2년 5개월만인 1970년 6월 30일에 완공하여 7월 7일에 개통하였다. 동 사업에 대하여는 박대통령께서 1967년 4월 29일 대국토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공약한 바에 따라 동년 12월 15일에 국가기간 고속도로 건설계획 조사단을 설치하여 건설계획과 설계를 심의 결정하였다. 이어 1968년 2월 1일 서울에서 기공식을 거행한 후 약 11개월에 서울-오산간 46km를 개통하였고 1969년 9월 29일에 오산-천안간 37km를 개통하였으며 동년 12월 10일에는 천안-대전간 69km를, 12월 29일에는 대구~부산간 123km를 각각 개통, 가장 난공구인 대전-대구간 152km는 1969년 말까지 고속도로 축조공사 만을 완료하고 1970년 6월 말까지 터널 및 장대교 등의 구조물 공사와 포장 공사를 완료함으로써 전 구간 428km를 완성하였다. 이를 일정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경부간 고속도로 일정별 표
연도 날짜 내용
1967 4.29 박대통령께서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 구상발표
11.7 박대통령께서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을 지시
12.7 서울-수원간 도상노선 선정, 실지측량 시작
12.15 국가기간 고속도로 건설계획 조사단 설치
1968 1.15 고속도로 표준설계 확정(도로폭 22.4m, 4차선)
1.29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건설 공사 사무소 설치
2.1 서울 영등포구 원지동에서 서울-수원간(32.2km) 착공
2.1 수원-오산간(14.2km) 연장
4.3 오산-대전간 공구(106.6km) 착공
9.11 대구-부산간(123km) 착공
12.21 서울-수원간(32.2km) 개통
12.30 수원-오산간(14.2km) 개통
1969 1.13 대전-대구간(152km) 착공
9.29 오산-천안간(37.4km) 개통
12.10 천안-대전간(69.2km) 개통
12.29 대구-부산간(123km) 개통
1970 6.30 대전-대구간(152km) 완공으로 전 구간 준공

한강, 금강, 낙동강의 3대강을 넘고 험준한 추풍령을 뚫고 뻗은 428km의 동 고속도로는 폭 22.4m의 4차선으로 축조되었으며 그 가운데서 800m의 낙동강교를 비롯한 29개소의 장대교(100m 이상) 총연장 7,858m와 550m의 당재터널을 비롯한 6개소의 터널 총연장 2,004m가 포함되었다.
공사 개요를 살펴보면 성토 34,555천㎥, 절토 25,901천㎥, 농로 465개소, 암거 394개소, 일반교 281개소(8,984m), 인터체인지 18개소로 되어 있으며, 연인원 8,928천인과 장비 165만대가 투입되었다.

● 역사적 의의

서울-부산간 고속도로는 우리의 기술과 재력으로 건설한 건설사업 가운데 최대규모의 것이다.
우리 민족사상 대규모의 건설사업이라 한다면 고려시대의 천리장성(千里長城)과 이조시대의 한양축성(漢陽築城)을 들 수 있다. 천리장성은 고려 제9대 덕종(德宗) 때 여진족(女眞族)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압록강 하구 의주(義州)로부터 동해안의 정주(도련포)에 이르는 속칭 천리의 장성을 축조하였다 하지만 이는 종전의 여진족 방어선을 보강하는데 불과하였으며, 한양축성은 이태조(李太祖)가 개성(開城)에서 한양(漢陽)으로 천도(遷都)시에 정도전(鄭道傳)으로 하여금 서울의 도성(都城)을 축조하도록 하였지만 기록상에 19만 명의 연인원이 투입함에 불과하였으며 그 후 세종대왕이 보강하였지만 이에 투입된 연인원이 32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일찍이 우리 역사상 이보다 더 큰 건설 사업은 없었다.
일본인에 의하여 건설된 것으로는 경부선 철도와 경의선 철도 등 건설사업이 1901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한국 내에서의 노일간의 관계가 험악해져 밀운불우(密雲不雨)의 국제정세 하에 이 양개노선이 준공 개통되었지만 그 규모와 공사의 질에 있어서 서울-부산간 고속도로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 고속도로는 동양에서는 단일노선으로는 최장의 것이다. 일본의 도메이(東名) 고속도로가 가장 길었다 할지라도 346.4km에 불과하며 메이진(名神) 고속도로는 189.7km밖에 되지 아니한다.
동 고속도로는 국제적인 측면에서 관찰할 때 세계에서 가장 싼 값으로 건설하였을 뿐만 아니라 428km 장거리 고속도로를 29개월 만에 완성하였음은 세계 제1의 기록을 나타냈다.
건설비의 국제비교에 있어서 우리는 1km당 1억원을 투입 건설하였지만 미국의 경우 우리의 2.8배 내지 9.2배, 이탈리아는 3.1배 내지 4배, 프랑스는 5.6배, 일본은 4.5배 내지 7.8배에 이르고 있으며 건설기간에 있어서는 가까운 일본의 경우 도메이 고속도로 346.6km를 10년에 걸쳐 완성하였음을 볼 때 우리의 고속도로가 얼마나 단시일에 완성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건설비용이 싸고 건설기간이 짧기 때문에 날림공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는 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구미각국이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발전 시켜 온 토목공학상의 최신 이론과 공법을 도입 채택하여 건설하였기 때문에 값이 싼 반면 양질의 고속도로를 축조하였음이 또한 우리의 자랑이다.

● 경제적 의의

서울-부산간 고속도로는 한강, 금강, 낙동강의 삼대 유역권을 연결시킴으로써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63%, 공업생산액의 81%, 자동차 보유대수 81%의 세력권을 갖고 있으며 우리나라 핵심적인 2대 경제권역의 철도 및 기존도로와 병행하여 수송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첫째로 이 고속도로의 개통은 우리 경제 사상 수송구조의 개혁이라 특기할 수 있다. 국민경제는 제1차 및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적인 수행으로 2차 산업부문에서 급격한 진전을 보았으나 수송부문에 애로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수송상의 애로를 철도의 힘 만에 의하여 해결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며 따라서 철도와 병행하여 대량 고속의 수송이 절실히 요청되어 동 고속도로의 건설 개통을 보게 되었다.
68년 말 완성된 서울-인천간 및 69년에 완성된 언양-울산과 더불어 우리 국토 상에는 475km의 고속도로가 전개되었다.
현재 건설 중인 호남선 고속도로, 71년에 착공될 영동선 고속도로를 비롯하여 남해선 등 기타 중요 경제 권역 간에 고속도를 계속 건설하여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종료되는 76년까지는 1,800km를 완성할 계획이다.
둘째로 생산과 소비의 신속한 연결과 생산품의 판로 확대라 하겠다. 농산품이 소비시장인 도시에신속하게 공급되어 판로가 광범하여 짐으로써 고속도로 주변의 낙공과 특용작물의 재배를 가능하게 하며 공장에서 생산된 각종 제품이 소비지인 농어촌에 신속하고 저렴한 수송비로 대량공급이 가능함으로써 농어민의 생활개선에 도움을 주는 일반 공장에서는 제품의 소비시장과의 신속한 연결로서 확대재생산이 가능케 됨으로써 국민경제의 성장에 이바지 하게 된다.

● 사회적 의의

첫째로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일일 생활권이 확대되었다.
서울에서 부산간의 육로 길을 걸을 때에는 15일간, 아무리 빨라도 3주야는 걸리는 아득한 천릿길이었다. 1905년 1월 총연장 450.5km의 경부간 철도가 부설 개통된 후 1936년 4월부터 운행된 특급열차는 6시간 50분이 걸렸고 현재는 초특급 관광호가 4시간 50분간에 경부간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서울-부산간 고속도로가 건설됨으로써 거리는 더욱 단축되었다. 부산 부두에서 화물을 실으면 서울까지 4시간 30분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떠나면 부산에서 점심을 먹게 되는 고속도로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서울-부산간을 일반국도로 달릴 경우에는 현행 도로관계법상 규정된 최고속도의 시속 60km로 달리면 8시간 53분이 걸리며, 시속 30km로 달리면 17시간 47분이나 소요되나 고속도로로 달리면 시속 80km로 5시간 21분, 시속 100km로 4시간 17분밖에 안 걸려 시간 절약의 편익이 지대한 것이다.
둘째로 고속도로의 개통은 지역격차를 해소한다.
생산품의 소비시장과의 신속한 연결과 공급범위의 확대로 농어민의 소득증대와 생활개선에 기여함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를 완화하게 되고 대도시의 인구집중과 과대화를 방지하게 되며, 고속도로와 기히 제정 시행중인 지방공업 개발법에 의한 지방공업 유치, 장려지구의 지정 및 개발지원제도가 복합하여 공업의 지방 분산을 촉진한다. 공업의 지방 분산은 각각 지역적인 특징을 감안하여 산업입지조건에 적합한 공장건설이 가능케 되어 지역적으로 소득액이 상승함은 물론 농어촌의 유휴 노동력 및 잠재 실업을 완전 고용하게 되어 개인소득도 불어나게 되며 결과적으로 도시와 농촌 생산지와 소비자의 생활환경이 비슷하게 되는 것이다.

● 맺는말

조국의 산하를 남북으로 뚫고 뻗은 장장 천릿길, 서울-부산간 고속도로는 우리의 재력과 기술로 완성한 역사적인 과업이었다. 오늘의 이러한 빛나는 성과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감에 입각한 박대통령각하의 착상과 집념의 결정이며 아울러 우리 온 겨레의 억센 의지의 점철이요 승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여운이 있다면 북녘 땅까지 고속도로를 관통시켜 한반도의 전역과 배달민족 전부가 이 영광을 함께 갖지 못한 점이다. 통일의 지름길은 우리가 잘 사는데 있으며 잘 살 수 있는 민족중흥의 상징이 이 고속도로라 생각할 때 북녘 땅에도 고속도로를 건설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이 고속도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문제다. 고속도로 건설도 중요하지만 이의 적정한 관리로 사업의 성과를 십분 거양(擧揚)하여야 하겠다. 이 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쏟은 우리 겨레의 정성을 이 관리 면에도 아울러 쏟아 줄 것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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