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문화 이야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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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주택

(사진)재건문화주택입주식(1961), CET0067735(16-1)

재건문화주택입주식(1961), CET006773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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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주택들은 많이 파괴되었다. 서울의 경우 전체 주택 중 피해를 입은 주택은 30%에 달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서울로 돌아오면서 서울은 심각한 주택부족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1955년 정부는 대한주택영단을 중심으로 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1957년 대한주택영단에서는 국민주택이라는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국민주택은 단독주택 혹은 연립주택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단독주택의 경우 대지 40평에 건평 15평 규모였으며, 연립주택의 한 개 동에 4세대가 입주하는 2층 규모의 집합주택이었다” (손세관, 2001 : 255).

국민주택은 서구의 건축개념을 도입하여 부엌과 화장실의 수준을 끌어올렸고, 생활공간으로서의 거실이 새롭게 도입되는 등 서구적인 주거생활을 추구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주택은 문화주택으로, 그리고 국민주택이 건설된 지역은 문화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진)문화주택(1957), CET0020682(4-1)

문화주택(1957), CET00206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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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택은 도시의 변두리 지역에 주로 건설 되었는데, 그 결과 도시의 변두리 지역들이 새로운 주거지로 되면서 도시의 주거지가 교외로 확산되는 효과를 초래했다. 1950년대 말에 서울 불광동에 그리고 1960년대 초에 서울 갈현동에 지어진 단지가 대표적인 국민주택 단지이다.(손세관, 2001 : 165~267).

* 출처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보는 생활사, 제16장